이 글은 1944년 일본인 이천오중(伊泉伍重) 저, 『조선의 전설 중』에서 발췌함
25. 대동강 홍수에 구제받은 뱀과 노루의 보은
어느 때 관북 지방에 큰 비가 내려 평양 대동강에 누런 황토물이 흘러내렸다.
집채만 한 나무들이 떠내려가고, 사람과 가축들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집 지붕 위에 앉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살려 달라고 고함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강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이고, 저걸 어쩌나”
하며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구해낼 사람은 없었다.
그때 한 사공이 용기를 내어 눈덩이 같은 파도를 헤치고 강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도 잡아 실고, 짐승도 닥치는 대로 잡아 실어 언덕에 내려두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건져내어 사람과 짐승을 많이 구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홍수도 조금 빠져 떠내려오는 것은 없었다.
건진 사람들은 모두 구호를 받아 동네 사람들을 따라갔다.
언덕을 둘러보니 노루 한 마리가 있었다.
“너도 살아났구나. 목숨이 있으니 저 산으로 들어가 잘 살아라.”
하고 손짓으로 산으로 보내주었다.
뱃전에는 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너도 내 배에서 살아났으니 저 풀 속으로 들어가 살아라.”
하며 손짓으로 쫓아버렸다.
노루는 멀리 산 밑까지 가서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 어서 가거라. 잘못하면 사람에게 잡힌다.”
하며 손짓으로 가라는 시늉을 하여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평소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럭저럭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노루 한 마리가 나루터까지 와서 옷깃을 물어당기며 가자는 시늉을 했다.
뒤를 따라가니 앞서 가다가 기다리고, 돌아보다가 또 어디쯤 가면 기다리고 하며 한참 산으로 올라갔다.
어떤 큰 바위 밑에 이르러서는 발로 땅을 파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손으로 파다가 나무 꼬치를 구해 파보니 조그마한 궤짝이 나왔다.
열어보니 웬일인가?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을 팔아 한 집안 살림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살려준 어떤 심술궂은 사람이 관청에 밀고하여, 뱃사공으로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별안간 벼락부자가 되었으니 도적질하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며 관에 고발하였다.
결국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감옥에서 억울한 고생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앉아서 졸고 있을 때 무엇인가가 발등을 꽉 물어 깜짝 놀랐다.
펄쩍 눈을 뜨니 뱀이 와서 물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게 무슨 꼴이냐”
하며 주물렀더니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발등이 퉁퉁 부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녁 무렵 잠시 졸고 있는데 발등이 간질간질해 눈을 뜨고 내려다보니 뱀이 풀잎을 물어와 붙여놓고 갔다.
이상하여 그대로 두고 보니 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차차 부기가 빠졌다.
그날 밤을 자고 나니 씻은 듯이 나았다.
“아, 참 이상한 뱀이로구나. 물고 또 약을 주다니. 사람이 사람 같지 않으니 뱀도 제멋대로 노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원에서는 원님의 부인이 뱀에 물려 별별 약을 다 써보아도 낫지 않자 죄수들에게 혹시 뱀에 물린 데 좋은 약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간수를 시켜 물어보았다.
그 뱀에 물렸던 죄수가 나중에라도 그 풀잎을 찾아보기 위해 종이에 싸 둔 것을 보내며 “혹시 이것이라도 붙여보라”
하였다.
그것을 붙이자 물이 줄줄 흐르며 밤사이에 완쾌되어 거짓말처럼 나았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원님은 “자네가 무슨 죄로 옥에 들어왔으며, 또 그 풀잎은 무슨 풀잎인가?”
하고 사연을 물었다.
죄수는 대동강 홍수 때부터 이야기를 차근차근 하였다.
원님은 “아, 고마운 사람이네. 자네 같은 양민이 모함을 받아 옥살이를 하다니 몹쓸 놈들이다.
은혜를 베풀어 생명을 구해주니 짐승도 그 은덕을 갚는데, 인두겁 쓴 사람은 얼토당토않은 일로 남을 모함하여 이런 고생을 시키다니.”
하며 두텁게 상을 주고 옥관을 불러 무죄한 이 양민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려 놓아 주었다.
적선의 씨를 심어 두면 언제나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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