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도효자(都孝子)의 효성에 범이 감동하다.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도효자로(2016년 전까지는 상리면 용두리)에는 도시복(都始復, 1817~1891)이라는 이름 높은 효자(孝子)가 있었다.
도효자(都孝子)는 조선 제25대 철종(哲宗, 1850~1864)과 고종(高宗, 1864~1897) 시대에 걸쳐 양대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128년 전의 근세 인물이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숯을 구워 팔고 나무를 해다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장날마다 나무를 팔아 고기 반찬을 사다가 한 끼 동안 반찬을 이어가곤 했다고 하니, 그의 지극한 효성은 당시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본받을 만한 효행이었다.
어느 날, 나무를 지고 예천장에 나무를 팔러 갔으나 빨리 팔리지 않아 늦게야 팔았다.
반찬거리를 빨리 사서 집에 가야 저녁 반찬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늦어져서 안타까워하며 생선 꾸러미를 지게 꼭대기에 달고 서둘러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걸어도 이미 늦었음을 알았다.
어머니도 기다리실 텐데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산골길을 종종걸음으로 걷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휙 하고 머리 위를 지나가더니 지게 꼭대기에 달아 두었던 생선 꾸러미를 덜컥 차서 휙 날아가 버렸다.
“아이고, 이 몹쓸 짐승아! 우리 어머니 반찬할 것인데 이걸 어쩌라고!”
하며 장으로 다시 가서 사자고 했으나 이미 장이 파했고 돈도 없어져 빈손으로 집에 가야 했다.
한참 서서 머뭇거리며 생각해 보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기운 없이 집으로 돌아와 지게를 마당가에 턱 벗어던지고 뜰에 벌컥 주저앉아 “아이고, 어머니...”
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인이 부엌에서 쫓아나오며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셨나요?”
하고 묻자, 그는 “오늘은 헛장에를 갔다 왔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기 지진 냄새가 났다.
부인에게 물으니 솔갱이가 마당 위로 날아가다가 떨어뜨려서 주워다가 지졌다고 했다.
이상하게 여겨 고기 꾸러미와 고기를 보니, 자신이 사 가지고 오던 생선 꾸러미였다.
“아, 고마운 놈! 내가 늦을 것 같으니 그 놈이 일찌감치 갔다 주었구나.”
효성이 지극하니 새 짐승도 효심을 알았다는 기특한 일이었다.
또 어느 해 여름, 어머니께서 무거운 병에 걸려 오래 신음하시는데, 하루는 감홍시(紅柿)가 먹고 싶다고 청하셨다.
그러나 여름에 어떻게 감홍시를 구할 도리가 없어 천지신명께 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감나무 밑에 엎드려 밤이 새도록 빌었으나 감이 열리지 않았다.
이튿날 밤에도 다시 빌었다.
밤이 깊어지자 큰 호랑이가 곁에 와서 찝적대며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업히라는 시늉을 하였다.
두려움을 잊고 업혀 보니 호랑이 등에 업혀 자꾸 내달리더니 어느 산촌에 도착했다.
밤은 깊었으나 불빛이 환한 집 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그 집에 들어가 자고 가기를 청하였고, 사랑방으로 안내받아 한참 있다가 제사를 모셨다며 음식을 차려냈다.
떡과 각종 과실이 있었고, 오뉴월임에도 감홍시가 있었다.
너무 반가워 자신이 밤에 그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니, 그 집 주인 역시 자기 부친 제사였는데 생전에 감홍시를 좋아하셔서 여름 제사에 홍시를 쓰려고 깊은 굴을 파고 한 백 개쯤 두었으나 불과 칠팔 개 정도만 성한 것이었는데, 올해는 사십 개가 생생했다고 하며 있는 대로 가져가라 하였다.
그는 기뻐서 감홍시를 싸 가지고 밤에 밖으로 나오니 호랑이가 길가에 또 나타났다.
호랑이 등에 업혀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감홍시를 드렸고, 어머니는 달게 잡수시며 병이 나아 더 오래 사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명심보감』 말미 효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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