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재수 없는 한의사에게 독성님이 환자를 소개해 주다.
왜정 시대에 서울 시내 효제동에 김수익이라는 한방 의생이 있었다.
그는 약을 정밀하게 잘 지어 준다는 소문이 났으나, 동시에 약값이 다른 한약방보다 비싸다는 소문도 함께 퍼져서인지 재수가 막혀 시세가 없었다.
어떤 때는 석 달 내내 손님이 없고 파리를 날리기도 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차에 삼성암 독성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친척 집에서 돈을 꾸어 가지고 삼성암에 올라가 독성님께 삼일기도(三日祈禱)를 정성껏 올리고, 또 신중님께도 기도를 올리고 내려왔다.
그런데 며칠 후 일본 사람인 등정 효차랑과 그의 아내 화자(花子)가 자동차를 타고 찾아왔다.
“여기가 김수익 씨 한약방입니까?”
하고 묻자, “그렇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저의 처가 십 년 동안 자궁병으로 고통받아 안 써본 약이 없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였는데, 요새 연삼일 동안 몽중에 어떤 노인이 찾아와 약을 쓰려거든 효제동에 있는 한의사 김 씨를 찾아가라고 하기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병을 진찰하고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진맥을 한 후 처방을 내려 첩약 60첩을 세재(洗劑)로 지어 주고, 한국인 식모를 시켜 잘 달여 먹으라고 부탁하였다.
물론 약값도 고가로 비싸게 받았다.
그런데 그 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 일본 사람의 부인은 그 약을 먹고 병이 씻은 듯이 쾌차하였으며, 옥동자까지 낳았다고 한다.
김 약국은 다행으로만 여기고 있었는데, 그 후 2~3년이 지나 그 일본 사람 내외가 찾아와 치사를 하며 막대한 금전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 약국은 당시 이미 고가로 약값을 받았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돌아가더니 의정부에 큰 과수원을 사서 등기된 문권을 갖다 주며 억지로 받으라고 하여, 할 수 없이 받아 부인이 과수원을 경영하게 하였다.
김 약국은 의업에 종사하였는데, 그 이후부터 약국이 잘 되었고, 그 소문이 서울 장안 원근에 퍼져 환자가 장사진을 이루며 몰려들어 불과 몇 년 만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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