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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의사 김명여(金明如) 씨의 벼락부자 이야기  


 함경도 함흥 출신인 김명여(金明如)라는 한의원은 의술만으로는 지방에서 넉넉하지 못하여 서울로 가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방 한 칸을 얻어 개업하였다. 
그러나 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고, 병을 보러 오는 환자도 없었다. 
같은 한의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약정가>도 모르는 의원이라며 멸시를 받았다.  
김명여 씨는 당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선바위> 또는 <중바위>, 혹은 <관음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바위에 기도와 정성을 드렸다. 
김명여 씨도 백일기도를 정성껏 올렸다. 
백일기도를 마친 후부터 환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무슨 약을 지어주면 백발백중으로 병이 나았다고 하여 매일 70~80명의 환자로 붐볐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는 벼락부자가 되어 수십 칸의 저택을 장만하고, 시골에 땅을 사서 곡식 700여 석을 추수할 수 있는 좋은 전답도 구입하였다. 
이에 같은 한의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돌팔이가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것이지, 그 사람이 의술이 뛰어나 병을 잘 고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빈정대는 한의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명여 씨는 면허가 없는 한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선바위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백일기도 이후로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새벽 일찍 목욕하고 꼭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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