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1919년 기미년 5월 2일의 일로, 불교종단에서 발행한 월간 『불교』 28호의 ‘불사의(不思意)’란에 해인사 환경 스님이 기고한 내용이며, 산승들이 환경 스님 생전에 확인한 사실이다.
23. 개로 환생한 어머니를 아들의 효성으로 이고득락(離苦得樂)시키다.
1919년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기미년(己未年)이다.
그해 5월 2일이었다.
임환경(林幻鏡, 1887-1983) 스님은 해인사 영자전(海印寺 影子殿), 지금의 홍제암 감원으로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상주가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해인사에 왔는데, 그 강아지가 법당이며 대청이며 가리지 않고 사방을 쫓아다니며 온통 해인사를 어지럽히고 절을 더럽혔다.
이를 보다 못한 환경 스님께서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상주에게 개를 단속하라고 명령하자, 상주는 스님께 용서를 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강아지는 비록 개이지만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경북 금릉군(현재 김천시) 지래면 옴팡리라는 마을에 사는 김재선(金在善)입니다.
저 개는 비록 개일망정 불효자의 어머니이십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왔는데, 지난해 5월 7일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넉 달 만에 저희 집에서 키우던 개가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 강아지가 너무 복스럽고 좋아서 이웃 사람들이 달라고 하거나 팔라고 하였고, 사냥개로 만들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초순에 개의 귀를 째고 꼬리를 잘랐더니, 그날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시길, ‘내가 박복하여 일찍 남편을 잃고 어린 남매를 키우려고 남들이 잠잘 때도 잠자지 않고 길쌈과 남의 싹바느질을 하며, 낮에는 빨래와 밭일을 도맡아 하였다.
너는 밥만 먹고 살게 하였으나, 간난할 적에 시집보낸 딸이 너무 가난하여 너 몰래 쌀이나 베를 돌려주었다는 죄로 그 빚을 갚기 위해 네 집에 개로 태어났다.
이 몹쓸 놈아, 네가 내 귀를 칼로 째고 꼬리를 잘라서 아파 견딜 수 없구나.’ 하시며 손을 들어 뺨을 때리셨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래서 저 개가 분명히 어머니의 후신임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그릇을 깨끗이 하고 음식을 갖추어 저 개 앞에 놓고 하루 종일 ‘알지 못하고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내외가 엎드려 빌었습니다.
그날 밤 내외 꿈에 또다시 어머니가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길, ‘내 평생 기차 한 번 못 타보고 해인사 장경각이 좋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가는데 돈이 아까워서 못 가봤으니 죽어도 그 두 가지가 한이다.
지금이라도 이 두 가지를 구경시켜 달라.’ 하셨습니다.
이에 3일 전 김천역에 가서 하행선 기차를 타고 아포까지 갔다가 내려서 다시 상행선을 타고 김천에 와서 내려 집으로 돌아왔고, 오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을 참배시키려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때 참견한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일이라며 찬탄하였고, 임환경 스님이 장경각과 법당 등을 안내하였더니 강아지는 여기저기 꼬리를 흔들며 기뻐하는 표정으로 구경하였다.
상주는 임환경 스님에게 “강아지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 빨리 고통 없이 개 몸을 벗을 수 있게 해달라.”며 그때 돈 200원을 드렸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그 돈으로 장을 봐서 해인사 전체 대중에게 산중공양을 베푸셨다.
대중 스님들은 효성스러운 상주의 공양을 받고 그냥 헤어질 수 없어 대적광전에 올라가 금강경 한 편을 독송한 뒤 헤어졌다.
다음날 상주가 집으로 돌아가려 강아지를 찾았으나 개가 없어 사방으로 찾다가 영자전 마루 밑에서 자는 듯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여 환경 스님께 알렸다.
스님과 함께 다비를 잘 모시고, 그날도 날이 늦어 해인사에서 자는데, 집에 있는 며느리와 절에서 자는 아들, 그리고 금강경을 독송한 스님들에게 강아지가 나타나 한없이 치하하고 청의동자로 변해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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