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삼막사 수각(水閣)의 인연담
관악산 삼막사 요사채 앞에는 커다란 돌 수각이 있다.
돌 거북이의 등을 파서 물을 담아 놓은 수각에는 ‘수각시주(水閣施主) 김풍연(金豊淵)’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김풍연이라는 분은 1916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안국동 뒤쪽 옛 경기고등학교 뒷고개에서 살던 분으로, 삼막사에 늘 참배하며 선업을 닦은 독실한 염불인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돌아가신 후 경북 영양(英陽) 땅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난 집은 이씨 가문이었는데, 그 집에는 아직 아들이 없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관음 주력을 하였다.
얼마 후 득남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씨의 나이가 48세로 상당히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아기의 등에 ‘삼막사 수각시주 김풍연(三幕寺 水閣施主 金豊淵)’이라는 한문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기의 등에 글씨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 내용이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분명했다.
하지만 영양 땅에 사는 이씨가 ‘삼막사’나 ‘김풍연’을 알 리가 없었다.
이에 여러 스님들께 물어 ‘삼막사’가 관악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씨는 아들의 등에 적힌 수수께끼를 풀고자 긴 나그네 길에 올랐다.
나귀를 타고 천천히 과천에 이르러 자세한 길을 물어 삼막사를 찾아갔다.
당시 삼막사의 주지 스님은 지계화(池桂華) 스님이었다.
주지 스님의 안내로 수각을 찾아가니 분명히 ‘삼막사 수각시주 김풍연’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글씨를 확인한 이씨는 주지 스님에게 삼막사를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하고, ‘김풍연’이라는 수각시주가 사는 곳을 물었다.
마침내 김풍연의 집에 이른 이씨는 지나가는 나그네로 자처하며 묵었다.
집 안을 살펴보니 아직 상중이었고, 식구들이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주인을 뵙기를 청하고 누구의 상인지 물었더니 ‘가친(家親)의 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그 성함을 묻자 ‘김풍연’이었다.
이씨는 자기 아들이 틀림없이 김풍연의 후손임을 확신하고 집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반신반의하던 김씨 가족은 아기의 전신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에 김씨의 가장은 이씨와 함께 경북 영양으로 길을 떠났다.
드디어 이씨 집에 도착하자, 아기가 엉금엉금 기어가 김씨의 무릎에 기대었다.
김씨가 살며시 아기의 옷을 걷어내고 등을 보니 ‘삼막사 수각시주 김풍연’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를 본 김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의관을 정제한 후 아기 앞에 정중히 큰절을 올렸다.
생전에 유달리 절을 좋아하시고 염불을 많이 하시던 분이 다시 사람으로 인연 따라 이씨 집에 태어난 사실에 김씨는 서로 남남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촌수를 붙여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집은 마치 동기간처럼 왕래하며 상부상조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두 집의 인연은 관세음보살님의 덕분이라 여기며 더욱 염불하고 불심을 돈독히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산승이 입적하신 서울 상도동 극락사 몽월 스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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