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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참수형에서 살아남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인 조반(趙胖)은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얼마 후 참수형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왕조의 태조인 이성계(李成桂)는 원래 공민왕의 신하로서 공이 큰 장군이었으나,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잡은 뒤 결국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이렇게 되자 나라 이름을 ‘고려’로 계속 이어갈 수 없었으므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임금 마음대로 지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당시 중국에는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새로 들어서 그 세력이 지극히 강대하였다. 
그리고 우리 조정은 중요한 일에 대해 명나라 조정의 허가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새 이름을 짓기 위해 이 태조는 여러 차례 사신을 보냈으나 모두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자기네 허락 없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강대국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난관을 무릅쓰고라도 새 이름을 지어야 하는 것이 이 태조의 입장이었기에 이번에는 조반(趙胖)을 임명하였다. 
이미 몇 사람의 사신이 죽음을 당했으므로 대신들마다 서로 중국에 가지 않으려 발뺌하는 처지였다.  
 이번에는 예전에 수차례 중국에 내왕하여 명나라와도 친분이 많은 조반을 특별히 사신으로 지명한 것이었다. 
조반은 참으로 난감한 일을 맞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왕명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바에는 일단 명나라에 가서 사정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출발했다. 
조반의 집안은 원래부터 불교를 돈독히 신앙하던 집안이었으므로 가족들은 단골로 다니던 절에 올라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다녀오라며 길을 떠났다.  
 어느 날 객주집에서 잠을 자는데 몽중에 사미승 한 사람이 나타나 “대감님, 열심히 기도와 불사를 하십시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좋은 방도가 있을까요?”라고 말하였다. 
“예, 있습니다. 
이 집 뒷골짜기로 오리(五里)쯤 올라가면 옛 절터가 있는데, 그곳에 세 분의 부처님이 풍우를 가리지 못하고 서 계십니다. 
대감께서 절을 지어 그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대감님의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명을 받아 바삐 길을 가야 하는데, 어느 새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실 수 있단 말인가?”  
“대감의 힘으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황해도 감사에게 부탁만 하시면 될 줄로 압니다.”  
“하긴 그렇군!”  
사미승들이 합장을 하고 사라지자, 퍼뜩 눈을 떠보니 잠시 조는 중에 꾼 꿈이었다.  
 조반도 평소 즐겨 읽던 <관음경>을 독송하며 장도에 올랐던 것이다. 
믿는 것은 오직 부처님뿐이었다. 
천근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며 길을 가던 일행들과 황해도 서흥군의 어느 주막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러나 조반은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다가 다시 염주를 굴리며 염불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중 비몽사몽간에 꾼 꿈이었다. 
“대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이미 대감의 입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불안한 마음 상태로는 큰일을 이룰 수 없사오니 마음을 굳고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이것은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꾼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뚜렷이 가슴에 남는 꿈이어서 아무래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조반은 날이 밝기도 전에 뒷골짜기로 올라가 보았다. 
과연 폐사된 절터가 나왔으며, 흙에 묻힌 돌부처님 세 분이 풍우에 노출되어 있었다. 
조반은 부처님을 향해 합장 배례하며 “제가 세 분 부처님께 오늘 합장하게 된 인연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님을 믿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련한 저를 도와주시고자 현몽하셨음을 믿사오니, 원하옵건대 저의 공양을 받아주시고 아무쪼록 크나큰 가피력을 베풀어 주옵소서. 제가 직접 동참은 못하오나 황해 감사를 시켜 즉시 세 분 부처님을 여법한 법당에 봉안토록 하겠습니다.”  
하고 다시 절을 올렸다. 
조반은 날이 밝는 즉시 황해도 감사를 불러 사찰 중건을 명령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비록 꿈속의 일이었을망정 부처님이 보살펴 주신다는 확신이 생겨 한결 마음이 든든하였다.  
조반은 무사히 명나라 궁전에 도착하였으나, 명나라 임금은 대뜸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며 참수형을 명하였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조반은 순순히 형장에 끌려갔다. 
그는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불할 뿐이었다. 
참수대에 오르자 고국의 국왕과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황해도 서흥 산중의 세 부처님께 인사를 올렸다.  
“제가 일을 마치면 꼭 부처님 가람이 중건된 곳을 참배하여 세 분 부처님께 직접 공양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부득하여 일을 마치기 전에 죽게 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숨이 넘어간 후에도 서방정토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자 원하옵니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막난이는 시퍼런 칼날을 번쩍이며 칼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눈앞을 휙휙 지나가는 칼바람에 간장이 녹아내릴 듯하였으나, 조반은 지그시 눈을 감고 다만 염불 삼매에 들고자 하였다. 
이윽고 막난이의 청룡도가 조반의 목에 내리찍혔다. 
그러나 사람의 목이 베어진 것이 아니라 칼이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막난이는 다시 칼을 가져와 목을 쳤다. 
그러나 역시 칼만 부러지고 사람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이 괴상한 일에 깜짝 놀란 막난이는 다시 튼튼한 칼을 가져와 젖 먹던 힘을 다해 목을 쳤으나, 역시 칼만 두 동강이 나버렸다. 
기가 질린 막난이는 비지땀을 흘리며 주저앉아버렸고, 옆에서 지켜보던 명나라 대신은 허겁지겁 궁중에 달려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였다.  
“아무리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칼만 부러지니, 그 사람은 필시 보통 사람이 아닌가 보옵니다. 
아무래도 사형을 중지해야 하겠습니다.”   
신하의 말을 들은 명나라 왕은 놀란 나머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즉시 명을 내려 조반을 정중하게 궁궐로 모시도록 하였다.  
“짐이 하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였도다. 
그대 같은 사람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벌을 주려 해서 미안하도다. 
너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비단과 황금을 내릴 것이고, 네 나라의 국호를 ‘조선’이라 재가하노라. 앞으로 두 나라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희망하노라.”   
조반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죽음의 길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부처님의 위신력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임을 믿어, 부지런히 황해도 서흥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서흥 땅에 이르자 많은 백성들이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묻자, “예, 대감님께서 명령하셨던 절의 중건이 끝나 오늘 회향식을 올리는 날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도 그 식에 참례하리라.”   
산뜻하게 중건된 사찰에는 오색 단청이 찬란히 입혀져 있었고, 소슬바람을 따라 풍경이 은은히 울렸다.  
“아, 이제 세 분 부처님께서 편안히 계시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법당에 들어가 막 절을 하려던 조반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아니, 이게 어쩐 일인가?”   
부처님 목에 큰 칼 자국이 나 있으니 대체 무슨 일인가? 
“저희도 참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삼일 전에 부처님을 이곳으로 옮겨 모셨는데, 갑자기 쨍그렁 소리가 나길래 쳐다보니 부처님 목에 칼 자국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수근거리고 있었는데, 또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옆 부처님 목에 칼 자국이 났습니다. 
그리곤 한참 있다가 또 소리가 나더니 세 번째 부처님 목에도 칼 자국이 생겼습니다.”   
“아! 참으로 신령스러운 일이로다. 
그날은 바로 내가 참수형을 받던 때인데…”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살아나게 된 증거를 뚜렷이 본 조반은 그 자리에서 수없이 감사의 절을 올리고, 이태조에게도 그 사실을 아뢰었다. 
이태조 역시 깊이 감동하여 조반에게 큰 상을 내리고, 그 절 이름을 ‘속명사(續命寺)’라고 지어 주었다.  
‘목숨을 이었다’는 뜻의 ‘속명사’는 그때 이름 붙여진 것으로, 바로 황해도 서흥군 오운리 오운산에 있는 절이다.  


이 이야기는 불교설화 영험록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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