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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입사행론

대체로 도에 들어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이치로 들어가는 것(理入)이요, 둘째는 실천으로 들어가는 것(行入)이다.

1) 이입(理入)

 이치로 들어가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의해 종지를 깨달아 일체 중생의 진성(眞性)이 동일함을 깊이 믿는 것이다. 다만, 망상과 객진번뇌에 덮여 분명히 나타나지 못할 뿐, 망념을 버리고 진성으로 돌아와 마음을 응집하여 벽관(壁觀)하면 나도 없고 남도 없어 범부와 성인이 평등해진다. 그리하여 마음이 굳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다시 문자의 가르침을 쫓아 다니지 않으면서도 이치와 부합하여 분별이 없고 고요하고 무위(無爲)하니, 이를 이입(理入)이라 한다. 

2) 사행(四行)

실천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른바 네 가지 수행을 말하니, 그 밖에 여러 가지 수행이 모두 이 행 가운데 포함된다.  
네 가지는 어떤 것인가? 
 첫째는 원수를 갚는 행이요, 둘째는 인연을 따르는 행이며, 셋째는 구하는 바가 없는 행이요, 넷째는 법에 맞는 행이다.

 ① 보원행(報怨行)

  첫째, 보원행은 무엇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오랜 옛날 무수겁 동안 근본을 등지고 지말을 따르면서 갖가지 사건에 흘러다니면서 많은 원망과 증워심을 일으켜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죄를 짓지 않았을 지라도 이는 숙세의 재앙이며 악업의 과보가 성숙한 것이지 하늘이 준것도 아니고 남이 준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참고 받아들여 전혀 원망하거나 갚으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경전에 말씀하신다. 
“고통을 당해도 근심하지 말라.” 
왜냐하면 고난이 닥친 인과를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낼 때 진리와 상응하여 원망의 본체를 깨달아 도에 나아가니 그러므로 보원행이라 한다.

 ② 수연행(隨緣行)

 둘째, 수연행이란 중생에게는 ‘나(我)’가 없으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업의 변화는 모두 인연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설령 수승한 과보나 영광이나 명예 등의 일을 얻더라도 이는 과거세에 지은 업으로 감응한 것이다.  지금 그것을 얻었지만 인연이 다하면 다시 없어지니, 어찌 기뻐할 것이 있겠는가. 이익과 손해도 인연에 맡겨 마음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기쁨의 바람에도 동요하지 않고 가만히 도에 수순하니, 그러므로 수연행이라 한다.

③ 무소구행(無所求行)

셋째, 무소구행이란 세상 사람들이 오랫동안 미혹된 채 곳곳에서 탐하고 집착하는 데, 이를 ‘구(求)한다’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서 세속적인 마음을 되돌려 무위에 마음을 두고, 몸은 흐름에 맡긴다.  모든 것은 공하여, 원하거나 즐거워 하는 것이 없다. 공덕천과 흑암녀는 항상 서로를 따른다.
삼계에서 오래 머무는 것은 마치 불난 집과 같아서 육신이 있는 한 고통이 있는지라 누가 여기서 편안 할 수 있겠는가?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생각을 쉬고 구함이 없다.
경전에서 말씀하신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요, 구하는 것이 없으면 즐거움이다.” 하였으니, 
구함이 없는 것이 참으로 도행인 줄 확실히 알 것이다.
 

④ 칭법행(稱法行)

넷째, 칭법행이란, 자성 청정의 이치를 ‘법’이라 하는데, 이 이치는 모든 형상이 공하여 오염되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이것이 없고 저것도 없는 것이다.  
경전에서 말씀하신다.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이라는 때를 벗었기 때문이요, 법에는 ‘나’가 없으니 ‘나’라는 때를 벗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만약 이러한 이치를 믿고 이해할 수 있으면 응당 법에 계합하는 수행을 하게 된다.  법체는 아낌이 없어서 몸과 목숨과 보시를 행하면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고, 삼공(三公)을 요달했기 때문에 의지할 것도 집착할 것도 없다.  그저 번뇌를 제거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상(相)을 취하지 않으니, 이것이 자리(自利)이며, 또한 이타(利他)이며, 또한 보리를 장엄하는 도행이다.  
 단바라밀이 이미 그러하거늘, 그 밖의 다섯 가지 바라밀 수행도 마찬가지여서, 망상을 제거하며 육바라밀을 행하지만, 행하는 바 상(相)이 없으니, 이것이 칭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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