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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격언-남녀간의 교제
 
 
사랑이 아무리 멋저도 테니스에는 무용지물이다.
연애, 즉 사랑이란 멋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 특히 청춘을 구가하는 청춘 남녀 여러분! 연애라는 것은 골프, 낚시, 야구경기, 시험, 저축, 스케이트 같은 것에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함은 물론 우리 일상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연애가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다. 사랑이 생활의 모든 것을 채워 준다고? 그럴 수는 없다. 만약 연애 즉 사랑이란 것이 인생의 모두라면, 비가 올때 천정이 없으면 지붕이 되어주고, 추운 날에는 털외투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에스키모들은 털가죽이나 얼음집이 없이도 에덴의 아담과 이브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빵, 생선, 채소, 구두, 전화, 칫솔, 월급봉투와 같은 많은 종류의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격언은 연애 즉 사랑이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만능의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고하는 민족이므로, 연애 지상주의자는 없으며, 더구나 정사같은 것을 하는 유태인은 없다.
 
신은 새 부부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말을 해 준다.
'두 사람의 남녀가 서로 결합하면, 그때부터 지금 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게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격언이 있다. 이 새 세계에는 처음 만난 이 두 남녀만의 새로운 말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는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탈무드>에는 특히 남자쪽이 높이 존중되어 왔으므로 여자가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로마 황제가 어느 랍비를 불러 물었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유태의 신은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빗대를 빼 여자를 만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유태의 신은 도둑이 아니겠는가?]
성서에 보면, 분명 이브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현장에 누가 있었다면 경찰에 고발했겠지요. 그런데 어젯밤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 대신에 금으로 된 술잔을 놓고 갔습니다.][오. 그래. 그거 아주 횡재하였군.]
황제는 창세기편에서 보듯 처음 태양이 솟아오르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예, 그렇습니다. 신께서 이 세상에 여자를 내려주신 것도 똑같은 경우일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함께 살게 되면 물론 잃는 것이 있다 수입과 자기만의 자유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잃는 것 대신에 금으로 만든 황금잔과 같은 평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금과 은은 불에 달궈진 다음에야 빛을 낸다.
이 말은 '뜨거운 정열 때문에 결혼한다 하여도 정 열이란 결혼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경우를 좀더 보충 설명해 주는데 흔히 인용되고 있다.
확실히 금과 은은 일단 정열이라고 하는 뜨거운 불에 의해 달구어지지 않고는 빛이 찬란한 금과 은그릇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뜨겁게 달궈지고 녹아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 실제 생활에 소용이 되지 않는다.
남녀가 결합하고 난 뒤에는 뜨거운 정열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냉각된 금.은 그릇처럼 냉정한 마음자세에서 생활 전선에 임하는 편이 보다 즐겁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정열로 결합하지만, 정열이란 결혼만큼 오래 가지 않는다.
유태인들의 결혼관을 보면, 그들은 결코 과격한 연 애는 하지 않는다. 성서의 창세기에 보면, '낳고, 번성하고, 이 땅에 충만하라'하고 신이 인간에게 명령하였는데. 유태교에서는 이에 따라 결혼은 성스러운 인간의 의무로 여기게 되었다. '결혼'을 히브리어에서 찾아보면 '기드신'이라 하는데, 이 뜻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탈무드>에는 '신의 은혜는 아내를 가진 자에게만 내려진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독신자는 인간의 반쪽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독신자는 인간의 반쪽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의 혜택을 못받는다는 말이 된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면, 유태교는 '율법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와 기차가 모두 정해진 규칙에 의해 운행되듯이, 인간도 모두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상 비행기나 기차의 경우와 같다.
생각해 볼 때, 사랑과 율법 중 어느 것이 우리 인간 생활에서의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피하게 해줄 것인가?
유태인들은 조상들이 남겨준 교훈을 받아 일정한 규율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살아가기 쉽고 평안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지헤와 기본적인 생활 자세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인생 어느 분야이고 이러한 지혜를 앞세워 살려고 한다.
결혼을 기념한 반지는 처음 유태인들이 생각해 내었다. 원 즉 둥근 것은 시작도 끝이 없는 것이므로 결혼도 반지처럼 영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신랑 주위를 일곱번 도는데, 이것도 역시 반지의 의미처럼 영원한 인연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유태인 사회의 속담에는 '결혼은 연애의 자명종 시계'라는 것이 있다. 결혼이란 기독교에서 표방하는 바와 같이 두 남녀가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생활을 꾸려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혼 당사자인 두 사람 모두 이러한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결혼식의 연주 음악은 군악대의 음악처럼 활기차다.
결혼식에 초대받아 갔을 때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보 라. 웨딩마치가 울리면 자신의 결혼식 때를 떠올려 보자.
결혼식은 마치 두 사람의 전사가 전쟁터를 향해 나가는 것과 같다. 이 시간 이후부터 두 남녀는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면 두 사람은 부상병의 심정으로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활기차고 웅장하여 군악대의 음악과 같으며, 마치 결혼식은 두 사람이 전쟁터로 나근 것처럼 보인다.
 
정열은 불이다. 그래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또 그만큼 위험하다.
불이란 원시 시대부터 인간을 추위로부터 막아주고 음 식을 익혀주고, 생활에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불이 없었으므로 낮에만 책을 읽었다.
그러나 불이란 것은 재산을 태워버리고, 전쟁과 같이 파괴에도 이용된다. 사람, 분노, 일-창조의 생활에서 정열이란 불과 같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열은 자기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를 파괴해 버리기도 한다. 정열은 '또 하나의 다른 불'인 것이다. 그러나 이 불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이처럼 정열은 인생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맞고 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화상을 입고 몸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밤이 되면 골목길에 '불조심, 불조심'외치며 다니는 야경꾼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정열이란 불을 자신의 가슴 속에 태우고 있다. 그러므로 야경꾼처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불조심'을 외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쨈과 같이 달지만, 빵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유태인 사회에는 결혼 전에 먼저 자기집을 마련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유태인들은 실제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창세기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이 매일매일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와 같은 서로 대립되는 것들을 창조한 것은 이들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기독교와 같이 정신적인 생활은 그다지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간이 빵이 없이 쨈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쨈이 없는 빵은 맛이 없다. 이런 말도 있다. '연애는 버터와 같아 빵에 바르면 한결 맛있다.' 누구이고 간에 버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리라.
 
질투는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개의 눈도 올바로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는 율법서이면서도 성경의 해설집이다. 아니 해설집이라기 보다 해석집이라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여러 랍비들이 모여 성서에 관해 토론한 것을 녹음한 것과 같은 것인데, 5세기에는 녹음 테이프가 없었으므로 물론 종이에 기록한 내용들이다.
이때 랍비들은 질투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는데, 창세기가 자주 떠올려 졌다. '질투 없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라고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뿐이었는데, 그들은 어떠했는가?
'이브도 아담에게 질투심을 가졌을까?'하는 문제에 대해 랍비들은 오래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브도 아담에 대해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질투가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으며, 질투를 모르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이브는 아담이 나갔다 돌아오면 항상 그의 갈빗대를 세어 보았을 것이다.]
 
보드라운 흙으로 빚은 남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딱딱한 뼈로 빚은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쉽다.
이 말 역시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창세기에 보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어졌고, 그 아담의 갈빗대로 빚어진 것이 이브였다.
여자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어렵다는 말은,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남자보다도 더 어렵다는 뜻이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솔직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잠자리에서의 남녀가 절정에 이르는데 필요한 시간의 차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유태인들은 안식일이 가장 좋은 섹스의 날로 생각하고 있다. 섹스의 적은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굴레는 무척 무겁다. 부부뿐만 아니라 자식까지도 함께 운반해야 하니까.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교제는 쉽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피하면 되고, 보기싫은 사람이 있다 해도 몇 백, 몇 십명에 불과할 테니까 큰 문제가 없다.
미국 '피넛'이란 만화는 어린이들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른들이 보는 만화이다. 이 만화에서 작가는 스누피의 주인공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만, 인간은 싫다.' 우리 사회의 인간 관계에서는 1대1의 교제가 제일 어렵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의 친분을 가지고 있어도 함께 살게 되면 자연히 상대의 결점이 나타나게 된다.
결혼이란 남녀가 함께 꾸려가는 공동 생활이므로, 상대의 장단점이 1분지 1.즉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자기의 추한 면도 있는 그대로 나타나 보여진다.
우리에게 결혼만큼 아름답게 포장되어 전해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만약 사실대로 전해지면 결혼을 기피하여 결혼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랬을까?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두 사람의 남남이 만나 함께 공동 생활을 꾸려가는 것은 인생에서의 실로 중대사이다. 자식은 부부를 결합시켜 준다.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성스러운 의무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는 또한 자식에게 함께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자식이 태어나므로써 부부라는 1대 1의 관게가 복수의 관게가 된다. 자식들이 '결혼이란 황금 쇠사슬'을 함께 운반해 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말에 채찍이 있고, 현자에게는 충고가 있다. 곱고 명석한 여자도 남자가 없으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왕에게는 왕관, 개미한테는 사탕, 여치에게는 오이처럼 세상에는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있다. 이 격언은 어울리는 짝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속담이나 격언에 대한 설명이란 것이 그다지 좋은 짝맞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속담이나 격언은 일종의 암시이다.그러므로 너무 장황한 풀이는 '지금부터 한가지만 힌트로 주겠다'고 하고서는 한 시간씩이나 연설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남녀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반드시 결혼해야만 비로소 한 몫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특히 여성을 놓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이고 비슷한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다음 속담으로 이 질문의 답을 대신하기로 하자.
'여자가 남자보다 젊었을 때 결혼해야 하는 것은 여자가 잘못하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자식이 결혼할 때는 신부에게 혼인 증서를 주고, 어머니에게는 이연장 을 주어야만 한다.
유태인의 지혜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때문인지 , 유태인을 가리켜 공리적인 민족이라고 한다.
유태인은 결혼하면 가족이 한 집에서 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들은 신혼부부가 새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은 좋지 않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잘 화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한편이 나쁘고 옳고가 아니라, 그저 잘 화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이다.
이 세상사에는 '왜?'하고 반문해서 안 되는 일도 많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따위의 관습과 같은 것이다.
'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사는 것은 한 자루 속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넣은 것과 같다'는 속담도 있다. 물론 이것은 남자의 경우에서 본 시각이지만, 웃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다.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결혼할 때는 이혼까지도 예상해야 한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자식이 결혼하면 먼저 어머니에게 이연장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결혼을 할 때는 자기 어머니와의 인연까지도 끊어가면서 이 여자를 아내로 삼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여자와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이혼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혼이란 항상 이혼의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유태인들의 이혼율은 매우 낮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그들의 타당하고 현실적인 경계가 많아서이다. 필자는 랍비로서 오랜동안 부부 사이의 여러가지 갈등을 들어왔는데, 그중 이혼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까지 하는 경우였다. 그 다음은 두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너무 어설픈 상태에서 결혼한 경우였다. 어설프다고 하는 것은 서로 상대에게 기대할 뿐 자기가 할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한 당사자들은 앞서의 두 가지 사실을 잘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초혼은 하늘에 의해서, 재혼은 인간에 의해 맺어진다.
유태교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이 혼이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그래도 이혼해야만 할 부부가 있다면 랍비를 찾아가 아무래도 원망할 수가 없다고 하여 랍비가 인정하면 이혼이 이루어진다.
결혼 -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불행한 결혼이라고 단정되면 더 계속할 것이 못된다. 성공적인 결혼을 남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진정 잘 어울리는 상대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고독감을 떨쳐내기 위한 동반자를 구하기위해 결혼하고 있다.
유태인 남녀는 20대의 중반이 되면 결혼해야 한다고 배운다. 이것은 성경에 '낳고, 충만하게 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의 의무이다. 여섯 가지의 요소로 성립된 결혼은 첫째가 '애정'이고 나머지 다섯가지가 '신뢰'라고 한다. 결혼한 처음 3주일간은 서로 관찰하는 시기이고, 다음 3개월은 서로를 사랑하는 때이며, 다음 3년간은 싸움으로 보내며, 그 다음 30년은 서로 용서하며 보내는 시기라고 한다.
결혼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혼자 사는 독신자는 마치 공작같이 보이고, 약혼한 사람은 사자의 행동같고, 결혼하고 나면 우마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단 결혼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을 위해서는 걷고, 이혼을 위해서는 달려라.
'결혼은 인생의 공동 묘지'라고 하는 말은 유 태인의 속담이 아니지만, '결혼은 연애의 자명종 시계'라는 속담은 있다. 또 이런 말도 있다.
'결혼이란 상표가 붙어 있는 술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에 반해 그 술을 만드는 양조잠에 취직하는 것과 같다'고 .
누구나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때는 몇 번이고 신중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결코 결혼을 위해서 달려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금을 통해 결혼을 향해 마구 달려가는 남녀가 많음에도 변함이 없다. 특히 현실에 충실한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처럼 이혼을 금하거나 나쁘게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이혼이 불행임은 사실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부부가 끝까지 노력해서도 원만할 수 없을 때는 이혼하라고 한다.
불행한 결합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서둘러 그 불행을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결혼을 향해서는 마구 달려가지만, 이혼을 향해서는 남의 일처럼 느긋한 마음이 든다.
 
섹스는 냇물과 같다.과하면 넘쳐 생명을 파괴하고 적당하면 생명을 왕성하게 한다.
이 말도<탈무드> 에 있는 것인데, 유태인의 격언 중에는 특히 냇물에 비유된 것이 많다. 유태인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앞세우는데, 냇물은 알맞은 양으로 잘 흐르고 있어야 한다.
<탈무드>에서 섹스만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도 흐르는 냇물에 비유하였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잘 이루어진 것이 섹스나 인생에서 모두 성공하는 비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중용을 지키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자세이며 얼핏 보기엔 교활한 면도 있다고 보여 진다.
 
이상적인 남자는 남자의 강인함과 여자의 부드러움을 함께 갖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태인들은 한쪽의 극단으로 치우 치는 것을 싫어한다. 신이 세상을 차조할 때, 하늘과 땅이라든지 빛과 어둠같이 서로 대립되는 것을 만든 것은 인간 또한 서로 맞서 대립하게 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이란 모든 것들이 서로 맞서 대립된 사이에서 살면서, 또한 두개의 대립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이런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다.
이를테면, 남자라 해도 그 속에는 남자의 강인함과 여자 특유의 부드러움이 함께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남자는 두 볼 사이와 두 다리 사이에서 명성이 결정된다.
두 볼 사이에는 입이 있고, 두 다리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이 짐작이 갈 것이다. 말이 많으면 몸을 망치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두 다리 사이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성서에 보면,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처음으로 맺었을 때 '아담이 이브를 알았다'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섹스'와 '안다'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이며, '야다'라고 한다. 즉 섹스를 하는 것과 상대를 안다는 것은 같은 의미의 말이다. 이야기하는 것이나 아는 것은 모두 지성을 필요로 한다.
 
여자와 싸우는 것은 우산을 받쳐들고 샤워하는 것과 같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도 유태인인데, 그는 이렇게 말 하고 있다.
[나는 30년 동안이나 여자의 마음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내게 있어 최대의 의문은 '대체 여자란 사람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
다시 몇 만년 전으로 돌아가보다. 창세기에는 신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빗대를 하나 빼내 이브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옛날 랍비들은 이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들은 논쟁에서 아담이 잠든 사이에 갈빗대를 빼낸 것은 도둑 행위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신이 도둑질을 했을까? 성서에는 신의 도둑질은 이 한번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다른 랍비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었다.
'그것을 통하여 신의 도둑 행위의 결과도 대단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크게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남녀 교제에 관한 격언
* 첫사랑의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만큼 행운아는 없 다.
* 인생에서 늦어도 괜찮은 것은 두 가지가 있다.그것은 결혼과 죽음이다.
* 미인은 바라보는 것이지 결혼 상대는 아니다.
* 그렇다고 모든 결혼이 다 아름답고 모든 죽음이 다 경건한 것은 아니다.
* 남자는 먼저 집을 짓고 들에 포도를 심어 포도원을 만들고 그런 다음에 여자를 맞이하라 .이 순서를 어겨서는 안된다.
*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신혼 때에는 창부처럼, 다음엔 비서처럼, 그 다음엔 간호원처럼 처신하여야 한다.
* 신은 아내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다.
* 남자가 여자와 관계하여 기쁨과 슬픔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젊었다는 증거이다. 나이가 들면 어떤 여자와도 기쁘게 만난다. 그러나 여자를 만나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되면 이미 늙었다는 증거다.
* 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자기 아내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쉽다.
* 남자를 늙게하는 네가지 요소는 불안, 노여움 그리고 아이들과 악처다.
* 아무리 사랑이 소중해도 사랑하는 상대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 한창 연애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과 연애하고 있는지, 상대와 연애하고 있는지 생각하여라.
* 연애하고 있는 사람은 유리눈을 가지고 있다.
* 연애에 빠진 딸을 집에 붙잡아 두는 것은 백 마리의 벼룩을 울타리 안에 가두기보다도 어렵다.
* 여자는 여섯살이거나 예순살이거나 웨딩마치가 울리면 춤을 춘다.
* 딸을 학자에게 결혼시키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소비하여라.
* 여자를 재는 세가지 척도는 요리, 복장, 남편인데, 이 모두는 여자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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