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초기경전 ⑥ 전생에 쌓은 수행
2.6.1.니그로다 사슴
그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보살 여기서는 부처님의 전생(前生)을 가리킴.
은 사슴으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그의 몸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그는 오백 마리 사슴에게 둘러싸여 숲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불러 니그로다 사슴이라 했다.
그때 브라흐마닷타왕은 사슴 사냥에 미쳐 사슴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일도 못하게 백성들을 불러다가 날마다 사슴 사냥을 나가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의논 끝에 궁전 뜰에 사슴의 먹이와 물을 마련해 두고 숲에서 사슴 떼를 몰아다 넣은 뒤 문을 닫아 버렸다. 왕은 뜰에 그득 갇혀 있는 사슴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였다. 그 속에서 황금빛 사슴을 보고, 그 사슴만은 다치지 않도록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이때부터 왕은 끼니때가 되면 혼자 나가 사슴 한 마리씩을 활로 쏘아 잡아 왔다. 사슴들은 활을 볼 때마다 두려워 떨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화살에 맞아 죽어갔다. 니그로다 사슴은 많은 사슴들이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음 하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는 차례를 정해 이편에서 스스로 처형대에 오르기로 하였다. 다른 사슴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날부터 왕은 몸소 활을 쏘지 않아도 되었고, 자기 차례가 된 사슴은 제 발로 걸어가 처형대에 목을 대고 가로 누웠다. 그러면 요리사가 와서 그 사슴을 잡아갔다. 그런데 하루는 새끼를 밴 암사슴의 차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안 니그로다 사슴은 ‘당신은 새끼를 낳은 다음에 오시오. 내가 대신 가겠소.’ 하고 처형대로 나갔다.
황금빛 사슴이 누워 있는 것을 본 요리사는 왕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왕은 뜰에 나와 니그로다 사슴을 보고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은 없는데 어째서 여기 누워 있느냐?”
“임금님, 새끼 밴 사슴의 차례가 되었기에 내가 대신 죽으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브라흐마닷타왕은 속으로 크게 뉘우쳤다.
“나는 너처럼 자비심이 많은 자를 사람들 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너로 인해 내 눈이 뜨이는 것 같구나. 일어나라, 너와 암사슴의 목숨을 살려 주리라.”
“임금님, 둘만의 목숨은 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슴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도 구해 주리라.”
“사슴들은 죽음을 면했지만 다른 네 발 가진 짐승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의 목숨도 보호하리라.”
“네발 가진 짐승은 안전하게 되더라도 두발 가진 새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도 보호하리라.”
“임금님, 새들은 안전하지만 물속에 있는 고기는 어찌 되겠습니까?”
“착하다, 니그로다. 그들도 안전하게 해 주리라.”
이와 같이 보살은 왕에게 모든 생물의 안전을 간청하여 눈을 뜨게 한 후 다른 사슴들과 함께 숲으로 돌아갔다.
『南傳 자타카 12』
2.6.2.가난한 여인의 등불
사밧티[舍衛城]에 한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집 저집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프라세나짓왕은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만 개의 등불을 켜 연등회(燃燈會)를 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성 안이 이렇게 북적거립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생각했다. ‘프라세나짓왕은 많은 복을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해야겠는데.’
여인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겨우 동전 두 닢을 빌어 기름집으로 갔다. 기름집 주인은 가난한 여인을 보고 기름을 구해 어디 쓰려느냐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 부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나는 가난해 아무것도 공양할 것이 없으니 등불이라도 하나 켜 부처님께 공양할까 합니다.”
주인은 여인의 말에 감동하여 기름을 곱절이나 주었다. 여인은 그 기름으로 불을 켜서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길목을 밝히면서 속으로 빌기를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내생에는 나도 부처님이 되어지이다’라고 하였다.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난다는 손으로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꺼지지 않았다. 가사자락으로, 또는 부채로 끄려 했으나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은 그것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씀 하셨다.
“아난다, 부질없이 애쓰지 말아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다. 그러니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등불의 공덕으로 그 여인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成佛)할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프라세나짓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큰 보시를 하고 수천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저에게도 미래의 수기(授記)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말.
를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도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니 깨치기도 어렵소.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백천의 보시로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소. 그러므로 불도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가지로 보시하여 복을 짓고, 좋은 벗을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뒷날에 반드시 불도를 이루게 될 것이오,”
왕은 속으로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12』
2.6.3.시 한 편과 바꾼 목숨
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에서 홀로 고생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이었으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했다는 말도, 대승경전(大乘經典)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때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과 함께 불교를 수호한다는 신.
은 그가 과연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나찰(羅刹)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한 귀신.
의 몸으로 변해 히말라야로 내려왔다. 수행자가 사는 근처에 서서 과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웠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네.”
그는 이 시를 듣고 마음속으로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찰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 하였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것이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햇볕 속에서 찬물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알 수 없다. 혹 저것이 과거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을는지도.’
그는 나찰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과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들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여의주의 반쪽을 얻었습니까? 나는 그것을 듣고 마치 망울진 연꽃이 피는 것처럼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어 허기가 져서 헛소리를 했을 뿐이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이 만일 그 시 전부를 내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일생토록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는 없어질 때가 있지마는 법의 보시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소.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남의 사정은 모르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당신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요.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못해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그러면 당신은 그 나머지 반을 들려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다 듣고 내 몸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무상한 몸을 버려 영원한 몸과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누가 당신 말을 믿겠소? 겨우 반쪽을 듣기 위해 그 소중한 몸을 버리겠다니.”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무상한 몸을 버려 금강석처럼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똑똑히 들으시오. 나머지 반을 말하겠소.”
그리고 나찰은 시의 후반을 외웠다.
“나고 죽음이 다 없어진 뒤
열반 그것은 즐거움이어라.”
그는 이 시를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지려 하였다. 그때 나무의 신[樹神]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나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최후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인색한 모든 사람들에게 내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조그만 보시로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한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그는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양을 나타내어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모든 천신들이 그의 발에 예배하고 그 지극한 구도(求道)의 정신과 서원(誓願)을 찬탄하였다.
『大般涅槃經 14』
2.6.4.죽은 소에게 풀을 먹이다
그 옛날 보살은 땅이 많은 한 지주의 집에 태어나 수자타 동자(童子)라고 불리었다.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아버지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슬픔에 잠겨 화장터에서 뼈를 가져다 정원에 흙탑을 세우고 그 안에 모셔 두었다. 밖에 나갈 때면 그 탑에 꽃을 올려놓고 부친 생각을 하면서 통곡을 했다. 그는 목욕도 하지 않고 향유도 바르지 않으며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을 본 수자타 동자는 아버지의 슬픔을 달래드리기 위해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들길에서 죽은 소 한 마리를 보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죽은 소 앞에 풀과 물을 갖다 놓고 ‘먹어 어서 먹어’ 하고 말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수군거렸다.
“수자타는 정신이 돌았나봐. 죽은 소에게 물을 주다니.”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죽은 소에게 먹으라고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수자타의 아버지에게 전했다.
“당신 아들은 미쳤나 봅니다. 죽은 소에게 풀과 물을 갖다 놓고 자꾸 먹으라고 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지주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픔이 어느새 아들에게로 돌려져 곧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노릇이냐? 목숨이 끊어진 소에게 풀을 먹으라고 하다니. 아무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 보아도 한번 죽은 소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이 어리석은 아들아.”
수자타가 말했다.
“소의 머리는 그대로 있고 발과 꼬리도 그대로 있으니 소는 틀림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할아버지는 머리도 없고 손발도 없습니다. 흙탑 앞에서 울어대는 아버지야말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지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아들은 지혜롭구나. 이 세상일도 저 세상 일도 환히 알고 있다. 나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와 같은 일을 했구나.’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南傳 자타카 252』
2.6.5.왕위를 보시하다
옛날 어떤 나라에 왕이 자비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잘 보살폈다. 달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닐 때에는 수레에 갖가지 보물과 의복․약품 등을 싣고 나가, 가난한 사람과 병자에게는 보물과 약을 나눠주고 죽은 사람이 있을 떼에는 장례를 치러 주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을 볼 때에는 그것을 자신의 허물이라 하여 ‘내가 덕이 있었다면 백성들도 풍족할 것인데 내 덕이 모자란 탓으로 백성들이 가난하다. 지금 이 백성들의 가난은 곧 나의 가난이다.’ 하고 자책했다.
이때 제석천은 왕의 덕행을 시험하기 위해 늙은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에게 가서 돈 천 냥을 달라고 했다. 왕은 곧 천 냥을 주었다. 그러자 바라문은 받았던 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늙었습니다. 이 돈을 남에게 빼앗길까 걱정이니 대왕님이 이것을 맡아 주십시오.”
왕은 그 돈을 맡아 주었다. 제석천은 또 다른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에게 가서 왕의 덕을 찬양하고 말했다.
“나는 전생에 복을 지어 본래 귀족의 몸이었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왕의 그 영화를 사모하여 왕위를 얻으려고 왔습니다. 나에게 나라를 맡겨 줄 수 없겠습니까?”
왕은 선뜻 왕위를 내준 다음 처자와 함께 허름한 수레를 타고 궁전을 떠났다. 제석천은 또 다른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의 앞에 나타나 수레를 청하였다. 왕은 기꺼이 수레마저 내어주고 처자와 함께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제석천은 다시 맨 처음의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의 앞에 나타나 맡겨 두었던 돈 천 냥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나는 나라 전체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느라고 당신이 맡긴 돈을 깜빡 잊었습니다.”
“그러면 사흘 안으로 그것을 돌려주시오.”
하고 바라문은 말했다.
왕은 아내와 아들을 어느 집에 잡히고 돈 천 냥을 얻어 그 바라문에게 돌려주었다. 왕의 아내와 아들은 그 집에서 도둑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었다가 마침내 사형을 당하여 거리에 버려졌다.
왕은 남의 집 고용살이로 돈 천 냥을 벌어 아내와 아들을 구하려고 찾아가다가 거리에서 참혹하게 죽은 그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래서 왕은 ‘나는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께 전생의 자기의 죄를 참회하였다.
그런 후 왕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선정에 들어 신통의 지혜로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다 제석천의 시험임을 알았다. 그 뒤 왕은 백성들의 간청으로 다시 왕위에 나아가 나라를 잘 다스렸다.
『六度集經 1』
2.6.6.말 많은 임금님
보살은 재상의 집에 태어나 장성한 뒤에는 왕의 스승이 되었다. 그 왕은 말하기를 몹시 좋아하였다. 그래서 왕이 말하고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은 전혀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보살은 어떻게 하면 왕의 이와 같은 버릇을 고쳐 줄까 하고 궁리를 했다. 마침 그때 히말라야산 밑에 있는 어떤 호수에 거북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 백조 두 마리가 먹이를 찾아와 거북과 친해졌다. 하루는 백조가 거북에게 말했다.
“우리가 살던 히말라야 중턱에는 눈부신 황금 굴이 있는데 우리와 함께 가보지 않겠소?”
“내가 거기까지 어떻게 갈 수 있겠소.”
“우리가 당신을 데려다 드리지요. 당신이 만약 입을 다물고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물겠소. 어떻게든지 나를 그곳에 데려다 주시오.”
백조는 나뭇가지 하나를 거북의 입에 물린 후 자기들은 그 양쪽 끝을 물고 하늘을 날았다. 백조가 거북을 데리고 가는 모양을 보고 동네 아이들은
“야, 거북이 백조에게 물려간다.”
하고 떠들어댔다.
거북은 아이들에게 욕을 해주고 싶어졌다.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가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 이 고얀 놈들!”
거북은 말을 하고 싶어 물었던 나뭇가지를 생각없이 놓아 버리자 그만 땅에 떨어져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때 백조는 빠른 속력으로 궁전 상공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왕은 궁전 뜰에 떨어져 조각난 거북을 보고 보살에게 물었다.
“스승님, 어떻게 해서 거북이 떨어져 죽었습니까?”
“거북과 백조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을 것입니다. 백조가 거북에게 히말라야로 데려다 주겠다고 나뭇가지를 물리고 하늘을 날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북이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 무엇을 지껄이려 하다가 나뭇가지를 놓아 버린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은 언젠가는 이와 같이 불행을 당하는 법입니다.”
그 후부터 왕은 말을 삼가게 되었다.
『南傳 자타카 215』
2.6.7.배은망덕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나시에 대제석군(大帝釋軍)이라는 왕과 월광(月光)이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부인의 꿈은 항상 잘 맞았다. 그 나라에는 언제부터인지 금빛 사슴왕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어느 원수진 두 사람이 강가에서 맞부딪쳤다. 그중 힘센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붙잡아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는 물에 떠내려가면서 구원을 청했다. 금빛 사슴왕은 강가에 나와 물을 마시다가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물속에 들어가 그를 업고 헤엄쳐 나왔다. 구원을 받은 사내는 꿇어앉아 합장하고 사슴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 덕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 되어 당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내게는 종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은 나를 보았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슴왕의 거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떠났다. 어느 날 밤 월광 부인은 꿈에 금빛 사슴을 보았다. 그리하여 왕에게 그것을 구해 달라고 간청 하였다. 왕도 그 꿈이 맞는 줄 알기 때문에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누구든 금빛 사슴이 있는 곳을 알리는 사람에게는 그 상으로 오백의 촌락을 주리라 하였다. 그때 물에 빠졌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왕에게 사슴 있는 곳을 알려 상을 탈까, 아니면 은혜를 갚기 위해 잠자코 있어야 할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오욕락(五欲樂)에 얽혀 있으므로 한번 그 욕심에 빠지게 되면 어떤 나쁜 일이라도 저지르고 만다. 그러므로 물에 빠졌던 사람도 상금과 은혜를 갚는 일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끝내 욕심에 끌려 은혜를 저버리고 왕에게 가서 금빛 사슴이 있는 곳을 알렸다. 왕은 곧 군사를 데리고 나가 그 금빛 사슴이 있는 곳을 둘러쌌다. 거기에는 천여 마리의 다른 사슴도 살고 있었다. 그 사슴들은 모두 놀라 흩어져 달아났다. 금빛 사슴왕은 생각하였다. ‘지금 내가 달아나면 군사들은 나를 찾기 위해 저 많은 사슴들을 다 잡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죽고 그들을 살리자.’
금빛 사슴왕은 왕에게로 갔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손을 들어 금빛 사슴이 저기 있다고 왕에게 알렸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만일 극단의 악업을 지을 때에는 그 과보는 이미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현재에 나타나는 법이다. 그는 은혜를 저버리고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 사슴을 가리키던 순간 두 팔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왕이 그것을 보고 까닭을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시로 대답하였다.
‘담벼락을 넘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그 사람을 일러 도둑이라 하네.
그러나 은혜 입고 갚지 않는 자
그야말로 큰 도둑이라 하리.’
그리고 그는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왕에게 이야기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다음 게송으로 그를 꾸짖었다.
‘은혜도 모르는 이 무정한 사람아
대지는 갈라져 왜 너를 빨아들이지 않는가.
너의 혀는 백 조각으로 끊어지지 않는가.
금강신(金剛神)은 왜 철퇴로 너를 치지 않는가.
모든 귀신은 왜 너를 당장 잡아가지 않는가.
그처럼 큰 죄에 과보는 왜 이처럼 적은가.’
왕은 그 사슴이 큰 보살임을 알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려 사슴을 잡지 못하게 하였다.”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5』
2.6.8.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옛날 장수왕(長壽王)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장생(長生)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왕은 자비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렸으므로 비바람이 순조롭고 오곡이 풍성하여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했다. 그 이웃 나라의 포악한 어떤 왕은 장수왕의 이 번영을 시샘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신하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고 마주 나가 싸우기를 청했다. 그러나 왕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이기면 그들이 죽을 것이고 그들이 이기면 우리가 죽을 것이다. 저쪽 군사나 이쪽 군사나 다 소중한 목숨들이 아니냐. 누구나 제 몸을 소중히 여기고 목숨을 아까워하는데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어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왕은 이와 같이 그들을 말린 뒤 태자 장생에게 말했다.
“저 이웃 나라 왕은 우리나라를 가지고 싶어 한다. 내 신하들은 나 한 사람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것이다. 나는 차라리 이 나라를 저 왕에게 내주어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리라.”
왕과 태자는 성을 빠져나와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웃 나라 왕은 이 나라를 차지하고 다시 장수왕을 잡으려고 황금 천 냥의 상금을 걸었다.
그때 장수왕은 마을 근처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덧없는 인생과 허무한 세상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한 늙은 바라문이 곁에 와서 보시를 청하자 왕은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새 임금은 나를 잡기 위해 막대한 상금을 걸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
그러나 바라문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왕이 거듭 말했다.
“이 몸은 머지않아 썩을 것인데 어떻게 오래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나면 반드시 죽는 법이니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내 목을 베어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몸은 언젠가 한줌 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자비를 베푸는 거룩한 분입니다. 어떻게 그 고귀한 생명을 버려 더러운 이 몸을 구원하려 하십니까.”
그러면서 바라문은 그 곳을 떠나갔다. 왕은 그를 따라가다가 성문의 수위에게 붙잡혀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때 장생이 나무꾼으로 변장하고 부왕 가까이 가자 왕은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너는 내 마지막 교훈을 명심하라. 원한을 품어 그 재앙을 후세에 길이 남기는 것은 효자의 도리가 아니니 원한을 원한으로써 갚지 마라.”
장생은 차마 아버지의 죽음을 볼 수 없어 깊은 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그 뒤 장생은 원수를 갚으려고 포악한 새 왕의 사랑 받는 시종이 되었다. 그러나 왕은 그가 장생인 줄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왕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고 사흘 동안을 헤매었다. 왕은 주림과 피로에 지쳐 허리에 찼던 칼을 풀어 장생에게 맡기고 그의 무릎을 베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장생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칼을 빼어 왕의 목을 치려하였다. 그때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마라. 내 유훈을 어기면 효자가 아니다.’ 라고 하던 임종 때의 아버지 말씀이 문득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는 들었던 칼을 자루에 꽂았다. 이렇게 하기를 세 변 되풀이하는데 왕이 깨어났다. 장생은 엎드려 왕에게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헤매던 장생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리석게도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여 세 번 칼을 들었다가 그때마다 아버지의 유훈을 생각하고 칼을 버렸습니다. 길을 잃은 것도 사실은 제가 일부러 한 짓입니다. 대왕님,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러면 내 혼이 자리를 옮겨 다시는 이런 나쁜 생각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속으로 깊이 뉘우쳤다.
“실로 나는 포악하여 선악을 구별하지 못했소. 당신의 아버지는 훌륭한 성인이었소.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그 덕은 잃지 않았소. 당신은 아버지의 유훈을 잘 이어받은 뛰어난 효자요. 내 목숨은 당신 것이었으나 당신은 나를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소.”
그들은 손을 맞잡고 숲속에서 나와 왕궁으로 돌아갔다. 왕은 장생에게 나라를 돌려주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六度集經』
2.6.9.비둘기 대신 자기 몸을 주다
옛날 자비심이 지극한 왕이 있었다. 그는 항상 백성 대하기를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했으며 정진력 또한 굳세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어코 부처님이 되리라는 큰 서원을 세우고 있었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그 품속에 날아들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에 뒤쫓던 매가 나뭇가지에 앉아 왕에게 말하였다.
“그 비둘기를 내게 돌려주시오. 그것은 내 저녁거리입니다.”
“네게 돌려줄 수 없다. 나는 부처가 되려고 서원을 세울 때 모든 중생을 다 구호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모든 중생 속에 나는 들지 않습니까? 나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더구나 내 먹이를 빼앗겠단 말입니까?”
“이것은 돌려줄 수 없다. 너는 어떤 것을 먹고 싶어 하느냐?”
“갓 죽인 날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날고기라면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목숨을 죽게 할 수 있겠는가. 내 몸은 더러운 것, 오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니 차라리 내 몸을 주자.’
왕은 선뜻 다리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그런데 매는 비둘기와 똑같은 무게의 살덩이를 요구하였다. 왕은 저울을 가져다 베어 낸 살덩이와 비둘기를 달아보았다. 비둘기가 훨씬 무거웠다. 왕은 한쪽 다리의 살을 베어, 두 덩이를 합쳐 달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가벼웠다. 그리하여 두 발꿈치, 두 엉덩이 두 젖가슴의 살을 베어 달았으나 이상하게도 베어낸 살이 비둘기의 무게보다 가볍기만 했다. 마침내 왕은 자기의 온몸을 저울 위에 올려놓으려고 하다가 힘이 다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왕은 매를 원망하거나 자기가 한 일에 후회하는 빛이 조금도 없이 오히려 중생의 고통을 생각했다.
‘모든 중생은 다 고해(苦海)에 빠져 있다. 나는 그들을 건져내야 한다. 이 고통도 중생들이 받는 지옥의 고통에 비하면 그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왕은 다시 저울로 올라가려 하였으나 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왕은 다시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살을 베고 피를 흘려도 괴로워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일심으로 불도를 구하였다. 내 이 말이 진실이라면 내 몸은 본래대로 회복되리라.”
이렇게 말했을 때 왕의 몸은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大智度論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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