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대승경전 ⑨ 영원한 생명-법화경
3.9.1.헤아리기 어려운 여래의 지혜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삼매(三昧)에서 나와 사리풋타[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지혜는 매우 깊어 끝이 없으며 그 지혜의 문은 들어가기가 어려워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으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여래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을 섬기면서 그 가르침을 실행하고 용맹하게 정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명성이 널리 떨쳐졌으며 일찍이 없었던 깊은 법을 성취하고 자유자재로 설법하므로 그 뜻을 알기 어렵다.
사리풋타, 내가 성불한 뒤로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로 교법(敎法)을 널리 말하였고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집착을 버리게 하였다. 여래는 방편과 지견(知見)으로 바라밀다 완성(完成)이라는 뜻. 육바라밀이라 하여,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덕목(德目)이 있다.
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래의 지견은 넓고 깊으며, 한량없고 걸림 없으며, 자신에 넘치고 두려움 없으며, 한없이 깊은 곳까지 선정과 해탈과 삼매에 들어가 일찍이 없었던 법을 성취한 것이다. 여래는 여러 가지로 분별하여 모든 법을 미묘하게 말하며 말씨가 부드러워 중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므로 더 말하지 말자. 여래가 성취한 것은 보기 드물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으로서 다만 여래끼리 만이 그 법의 참 모양을 알고 있을 뿐이다. 즉 법은 그러한 모양과 본성과 힘과 작용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원인과 조건과 결과도 가지고 있으니 결국은 본체와 현상이 하나임을 밝혀낸 것이다.”
3.9.2.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까닭
부처님께서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토록 간절히 세 번이나 청하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를 위해 말하겠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그 모임에 있던 비구·비구니·신남·신녀 오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물러가 버렸다. 그들은 죄의 뿌리가 깊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므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고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 한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허물이 있었기 때문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부처님께서도 말리지 않으셨다.
이때 부처님이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남은 대중들은 잎과 가지는 없고 열매뿐이다. 그들처럼 잘난 체하는 사람들로서는 물러가는 것이 당연하다. 너에게 말하겠으니 자세히 들어라. 이와 같이 미묘한 법은 시절 인연이 닿아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담바라 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과 같다.
사리풋타, 너는 여래의 말을 믿어라. 여래의 말은 결코 허황하지 않다. 여래가 말하는 법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래는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로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생각이나 분별로는 이해할 수 없고 여래끼리만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모든 여래는 오로지 한 가지 큰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여래는 한 가지 큰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한다 하는가. 모든 여래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 청정케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여래의 지견을 보여 주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지견에 들어가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3.9.3.삼승은 일불승의 방편
부처님께서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이 안으로 지혜가 있어 여래의 법을 듣고 믿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삼계(三界)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열반을 구한다면 그를 성문승(聲聞僧)이라 한다. 저 아이들이 양의 수레를 가지려고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중생이 여래의 법을 듣고 믿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자연의 지혜를 구하고,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고요한 곳을 즐기며 모든 법의 인연을 깊이 알면 그를 독각승(獨覺乘)이라 한다. 저 아이들이 사슴의 수레를 가지려고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중생이 여래의 법을 듣고 믿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지(一切智)와 불지(佛智)와 자연지(自然智)와 무사지(無師智)와 여래의 지견과 두려움 없음을 구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가엾이 여겨 그들을 편안케 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그들을 제도하면 그를 대승보살(大乘菩薩)이라 한다. 저 아이들이 소의 수레를 가지려고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다.
자식들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와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을 본 장자(長者)가 자기 재산이 한량없으므로 자식들에게 큰 수레를 평등하게 나누어 주듯이, 여래는 모든 중생의 어버이이므로 한량없는 중생이 여래의 법문으로 삼계의 괴롭고 험한 길에서 나와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여래는 이것을 보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내게는 끝없는 지혜와 힘과 두려움 없는 여래의 법장(法藏)이 있고, 이 중생들은 모두 내 자식들이니 평등하게 대승법을 주어 모두 여래의 열반에 얻게 하리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중생들에게 여래의 선정과 해탈의 기쁨을 준다.
저 장자가 처음에는 세 가지 수레로써 불타는 집에서 아이들을 나오게 했지만, 그 뒤 수많은 보배로 장식된 으뜸가는 큰 수레를 주었다. 여래도 그와 같이 처음에는 삼승(三乘)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승(乘)이란 물건을 실어 옮기는 수레처럼 중생을 열반의 기슭에 이르게 하는 비유.
으로 중생을 인도하다가 나중에는 대승(大乘)으로써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 여래에게는 한량없는 지혜와 힘과 두려움 없는 법장이 있어 모든 중생에게 대승법을 줄 수 있지만, 중생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불승(一佛乘)에서 방편으로 삼승을 분별하여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譬喩品』
3.9.4.집을 나갔던 아들
수부티[須菩提]가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제가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오십 년을 보냈습니다. 이제 몸은 늙고 가난하여 의식을 찾아 사방으로 헤매다가 우연히 옛날의 고향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품을 팔면서 이집 저집 다니다가 마침내 부모가 사는 집에 이르러 문밖에서 기웃거렸습니다. 그때 장자는 그가 자기 아들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창고에 가득한 재산을 이제 전해 줄 사람이 생겼다. 나는 집 나간 아들을 밤낮으로 생각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는데 이제 제 발로 돌아왔으니 내 소원을 이루게 됐구나.’ 장자는 하인을 시켜 곧 그를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를 붙드는 사람을 보고 놀라면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붙잡습니까?’ 하고 뿌리치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장자는 한 꾀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처럼 형색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두 하인을 보내면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들은 그에게 가서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거기서는 삯을 갑절을 주니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해 보아라. 그래서 그가 좋아하면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쓰레기를 치는 일이라고 하여라.’
그때 두 하인은 장자의 아들을 찾아가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장자의 집에서 삯을 받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두려움도 사라지고 장자의 집안일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장자가 자기의 아버지인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자는 병이 났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온 줄은 알고 일꾼인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금은보배가 많아 창고마다 가득 차 있다. 그 안에 있는 재산이 얼마인지 알아두고, 남에게 받고 줄 것도 모두 네가 맡아서 처리해 다오. 이제는 나와 네가 다를 것 없으니 조심해서 잘 관리하여라.’
얼마 후 장자는 아들의 마음이 점점 트이게 되고 예전에 스스로 못났다고 하던 생각이 없어진 줄을 알았습니다. 죽음이 임박해진 어느 날 장자는 아들을 시켜 친척과 국왕과 왕족과 거사들을 모이게 하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내 아들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가 여러 곳으로 헤매 다니기를 오십여 년이나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아들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졌던 모든 재산을 이 아들에게 넘겨줍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아들이 대신 맡아 할 것입니다.’
이때 아들은 장자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아버지임을 알았습니다. 뜻밖의 일을 당해 어리둥절했습니다. ‘나는 이 재산에 대해서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않았는데, 이제 이 엄청난 재산이 저절로 들어왔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부처님, 큰 재산을 가진 장자는 곧 여래이시고, 가난했던 아들은 바로 저희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여래의 아들입니다. 저희들은 어리석은 탓으로 소승법(小乘法)에 집착하여 열반의 하루 품삯으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승법을 보이기 위한 방편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본래부터 바라지도 않았는데 법왕(法王)의 큰 보배가 저절로 들어온 것입니다.”
『信解品』
3.9.5.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이지만
부처님께서 카샤파와 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모든 법의 왕이다. 그러므로 그 말이 결코 허황하지 않다. 모든 법에 대해 지혜와 방편으로 말하고, 그 말하는 법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의 경지에 이르렀다. 여래는 모든 법의 돌아갈 곳을 관찰하여 알고, 중생들의 마음을 꿰뚫어보며, 모든 법을 끝까지 잘 알아 중생들에게 온갖 지혜를 보여 준다.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산과 강과 골짜기와 평지에서 자라는 초목과 숲과 약초의 종류가 많지만 각기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비가 내리면 모든 초목과 숲과 약초들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두루 젖는다.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이지만 그 초목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저마다 달리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같은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지만 여러 가지 초목이 각기 다른 것이다.
여래도 그와 같아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큰 음성으로 온 세계의 중생들에게 사자후(獅子吼)하는 것은 구름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는 것과 같다. 여래가 설하는 법은 한 모양이고 한 맛이다. 즉 해탈의 모양과 멀리 여의는 모양과 멸하는 모양인데 마침내는 모든 지혜에 이르는 것이다. 어떤 중생이든 여래의 법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그 공덕은 스스로 알 수 없을 만큼 한량이 없다.”
『藥草喩品』
3.9.6.신통력으로 만든 성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방편으로 중생의 성품에 깊이 들어가 그들이 소승법을 좋아하고 오욕락(五欲樂)에 탐착함을 알고 열반법을 설한다. 그들이 그것을 들으면 그대로 믿고 행한다. 비유하면 오백 유순이나 되는 멀고 험난하고 인적마저 끊어진 길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 진귀한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하였다. 이때 한 길잡이가 있었는데 그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 이 험한 길의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그 길을 지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따라오던 사람들이 피로에 지친 끝에 그만 되돌아갈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우리들은 너무 피로하고 무서워 더 나아갈 수 없소. 앞길은 아직도 멀었으니 그만 되돌아가야겠소.’ 하고 말했다.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딱하다. 어째서 눈앞의 진귀한 보물을 버리고 되돌아가려고 할까?’ 그는 방편으로 삼백 유순쯤 지난 곳에 신통력으로 한 도성(都城)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무서워 말고 되돌아가려고도 생각지 마시오. 저 앞에 큰 도성을 보시오. 거기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마음대로 즐길 수 있고 편히 쉴 수도 있소. 그리고 거기만 가면 보물이 있는 곳도 멀지 않소.’
지쳐 있던 사람들은 새 기운을 얻어 다들 기뻐하였다. 이제는 험한 길을 벗어나 즐겁고 편안함을 얻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신통력으로 만든 도성에 다달아 편안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때 길잡이는 그들이 잘 쉬어 피로가 가신 것을 보고 그 도성을 없애고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오. 보물이 있는 곳이 여기서 멀지 않소. 아까 있던 도성은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오.’
비구들, 여래도 그와 같다. 지금 너희들의 길잡이가 되어 생사와 번뇌의 험난하고 아득한 길을 벗어나게 한다. 만약 중생들이 대승법만을 들으면 여래를 만나보려거나 가까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여래의 길이 너무 아득하여 오랫동안 수행을 쌓아야만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중생의 마음이 약한 줄 알아 방편을 써서 도중에서 쉬게 하려고 이승(二乘) 성문·연각의 최고 수행 경지.
의 열반을 말한 것이다. 중생이 이승의 경지에 머무르면 그때 여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들은 아직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 지금 너희가 머물러 있는 자리는 여래의 지혜에 가까우니 잘 살피고 생각해 보라.’ 너희가 얻은 열반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써 일불승(一佛乘)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을 말한 것이다. 마치 저 길잡이가 휴식을 위해 신통력으로 만든 도성의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잘 쉰 줄 알면 ‘보물이 있는 곳은 여기서 멀지 않다. 이 성은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다시 말한다.”
『化城喩品』
3.9.7.푸르나의 변재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푸르나[富樓那]를 보느냐? 나는 항상 법을 말하는 사람 중에서 그가 제일이라고 칭찬하였다. 또 그의 여러 가지 공덕을 찬탄하자면 이렇다. 푸르나는 내 법을 수호하고 널리 펴며, 사부대중(四部大衆) 출가한 비구·비구니와 집에서 불교를 믿는 신남·신녀.
에게 가르쳐 그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며, 여래의 바른 법을 원만하게 해석하여 청정한 계행을 닦는 이들에게 크게 이익을 주므로 여래 이외에는 그의 변재를 따를 이가 없다.
그러나 너희들은 푸르나가 내 법만을 수호하여 널리 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 세상에 구십억 부처님 처소에서도 그 부처님들의 바른 법을 수호하여 널리 폈으며, 그 곳에서도 법을 설하는 사람들 중에 으뜸이었다. 또 여러 부처님이 설하신 공(空)한 법을 분명히 알아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를 얻었으며, 항상 자세히 생각하고 청정하여 법을 설하면서 의혹이 없었다. 보살의 신통력을 갖추고 목숨이 다하도록 항상 청정한 계행을 닦았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참다운 성문(聲聞)이라고 말했다.
푸르나는 이런 방편으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였고, 무수한 사람들을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였다.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려고 항상 불사(佛事)를 일으켜 중생을 교화했다. 푸르나는 과거의 일곱부처님 때에도 법을 설하는 사람들 중에 으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때마다 여래의 법을 수호하고 널리 펴서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는 여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 항상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차츰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출 것이다. 푸르나는 한량없는 아승지겁 한량없는 시간.
을 지난 다음 세상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인데 그 이름을 법명(法名)여래라고 할 것이다.”
『五百弟子授記品』
3.9.8.여래의 방에 들어가 법을 설하라
부처님께서 약왕(藥王)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거나 출가해서 보살의 도를 수행하면서 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보고 듣고 읽고 외고 쓰고 지녀 공양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보살의 도(道)를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 경전을 듣는 사람이라야 보살의 도를 잘 행하는 사람이오. 불도를 얻고자 하는 어떤 중생이 이 묘법연화경을 보거나 들으며 들은 후에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그는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진 줄을 알아야 하오.
높은 산등성이에 우물 팔 때 마른 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줄기가 멀리 있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파 내려가면 젖은 흙이 나오고 점점 더 깊이 파서 진흙이 나올 때쯤은 물이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오. 보살도 그와 같소. 이 묘법연화경을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거나 닦아 익히지도 못한다면 그는 최상의 깨달음에는 아직 멀었소. 만일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받아 익힌다면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진 것이오. 왜냐하면 모든 보살의 최상의 깨달음이 다 이 경에 들어 있기 때문이오.
이 경전은 방편의 문을 열어 실상(實相)을 보이오. 이 법화경의 법장(法藏)은 깊고 멀어 쉽게 도달할 사람이 없지만, 이제 여래가 보살들을 교화하고 그들의 깨달음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 그렇게 열어 보인 것이오. 만일 보살이 이 법화경을 듣고 놀라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그는 새로 발심한 보살이고, 성문이 그러하다면 그는 잘난 체하는 사람인 줄 아시오.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사부대중을 위해 이 법화경을 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는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이 경을 설해야 합니다.
여래의 방이란 모든 중생에게 대한 자비스런 마음이요, 여래의 옷이란 부드럽고 화평하고 욕됨을 참는 마음이며, 여래의 자리란 모든 존재의 공(空)한 것을 말합니다. 이런 가운데 편히 머물러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 보살과 사부대중을 위해 법화경을 널리 설해야 합니다.”
『法師品』
3.9.9.보살이 가까이해야 할 곳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말세에 이 경을 해설하려면 다음과 같은 법에 편히 머물러야 합니다. 첫째는 보살의 행할 바와 가까이할 곳에 머무르며 중생을 위해 이 경을 설해야 합니다. 보살은 욕됨을 참는 자리에 머물러 부드럽고 화평하고 착하고 순종하면서 놀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 법에 대해서도 행한다는 생각이 없이 모든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여 행함도 없고 분별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행할 바라 하는 것이오.
보살은 국왕이나 왕자나 대신이나 관리들과 가까이 하지 말고, 바라문이나 사교(邪敎)를 믿는 이와 가까이해서도 안 되오. 흉악한 장난이나 서로 때리고 겨루는 이들과 가까이하지 말며, 백정이나 사냥꾼이나 여러 가지 나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만일 찾아오면 그들에게 법을 말해 줄 뿐 아무것도 바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 소승(小乘)을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가까이하지 말고 문안하지도 말며, 방안에서나 거닐 때도 함께 있지 마시오. 혹시 그들이 찾아오면 근기(根機)를 따라 법을 설해 줄 뿐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또 보살이 여인에게 이끌려 법을 연설해서는 안 되며 대면하기를 좋아해서도 안 되오. 만일 남의 집에 가더라도 젊은 여인과 함께 이야기하지 말며, 혼자서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고 만약 일이 있어 혼자 들어가게 될 때는 일념으로 여래를 생각하시오. 여인에게 법을 설할 때는 이를 드러내 웃지 말고 옷깃을 헤쳐 보이지 말며, 설사 법을 위해서일지라도 그들과 친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나이 어린 제자나 사미(沙彌)나 어린아이를 양육하지 말며, 항상 좌선(坐禪)을 좋아하여 한적한 곳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닦아야 합니다.
또 보살은 모든 존재가 공하여 실상도 이와 같음을 관찰하여 뒤바뀌거나 흔들리지 말고 물러서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치 허공의 성질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모든 존재도 온갖 말할 길이 끊어져 생기지도 나오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이름과 모양도 없고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걸림과 막힘도 없소. 다만 그것은 인연으로 있는 것이며 뒤바뀜으로 해서 생길 뿐이오. 그러므로 항상 이와 같이 존재의 진실한 모양을 잘 관찰하라고 말하는 것이오. 이것을 보살의 가까이할 곳이라 합니다.
둘째로, 말세에 이 경을 설하려면 안락한 행에 머물러야 합니다. 입으로 설하거나 독경할 때에는 남의 허물과 경전의 허물을 말해서는 안 되오. 또 다른 교법을 말하는 법사(法師)를 경멸하거나 남의 장단점을 들어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되오. 이와 같이 안락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도록 하시오. 질문은 받더라도 소승법으로 대답하지 말고 대승법으로 해설하여 모든 지혜를 얻게 하시오.”
『安樂行品』
3.9.10.땅에서 솟아오른 보살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 이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큰 보살들이 땅에서 솟아 올라오는 것을 그대들은 예전에 보지 못했다고 했소.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뒤부터 이 보살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도(道)에 대한 마음을 내도록 해 왔소. 이 보살들은 모두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경전을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생각하고 분별하며 바르게 기억했소.
이 선남자들은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여러 말 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고요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하기를 즐겨 잠깐도 쉬지 않았소. 인간에나 천상에 머물지 않고 깊은 지혜를 좋아하여 걸림이 없으며, 여래의 법을 좋아해 일심으로 정진하면서 위없는 지혜를 구했었소.”
이때 미륵보살과 무수한 보살들은 처음 듣는 일에 의심을 내어 ‘부처님께서 어떻게 이 짧은 세월 동안에 그렇게 한량없고 무수한 보살들을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에 머물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태자로 계시다가 사캬族의 궁궐에서 나오시어 가야성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십여 년이 되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그렇게 큰 불사(佛事)를 지으셨으며, 어떻게 그 무수한 큰 보살들을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 이 큰 보살들은 어떤 사람이 천만억 겁 동안을 두고 세어도 다 셀 수 없으며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부터 지금까지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계시는 곳에서 선근(善根)을 심고 보살의 도를 성취하며 항상 청정한 계행을 닦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하셨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얼굴이 팽팽하고 머리카락이 검은 스물너덧 되는 젊은이가 백 살 된 노인을 가리켜 내 아들이라고 하고, 백 살 된 노인이 그 젊은이를 자기 아버지라 한다면 이 일은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도를 얻으신 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 보살 대중들은 이미 한량없는 천만억 겁 전부터 불도를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 왔습니다. 그들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삼매에 잘 들고 나며 머물면서 큰 신통력을 얻고 오래도록 청정한 계행을 닦았습니다. 또 모든 선한 법을 차례로 익혀 문답에 능하니 사람 가운데 보배이며 모든 세간에서 매우 드문 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부처님이 도를 얻으셨을 때 처음으로 마음을 내게 하고 교화하며 지도하여 최상의 깨달음에 나아가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공덕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저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나 하시는 말씀을 허황됨이 없다고 믿으며, 또 부처님께서 알려 주신 바를 다 통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새로 발심한 보살들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말을 듣는다면 혹 믿지 아니하고 법을 파괴하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킬까 염려됩니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어 저희들의 의심을 덜게 하시고, 오는 세상의 모든 선남자들도 이 사실을 듣고 의심을 내지 않게 해 주십시오.”
『從地涌出品』
3.9.11.한량없는 여래의 수명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 그대들은 여래의 진실하고 참된 말을 믿으시오.”
이때 보살들 중에서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은 부처님 말씀을 믿겠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여래의 비밀하고 신통한 힘을 자세히 들으시오. 모든 세간의 천신과 사람과 아수라들이 말하기를 ‘사캬무니 부처님은 사캬族의 궁전에서 나와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참으로 내가 성불한 것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말함.
전이오. 비유해 말하면,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그것으로 티끌을 만들어 동쪽으로 가면서 무량 아승지 세계를 지날 때마다 한 티끌씩 버리어 그 티끌이 다하도록 한다고 합시다. 그대들은 그와 같은 세계의 수효를 생각하고 헤아릴 수 있겠소?”
미륵보살과 대중들이 부처님께 대답했다.
“부처님, 그와 같은 세계는 한량없고 그지없어 숫자로 알 수 없고 생각으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들이 번뇌가 없는 지혜로 생각하여도 알 수 없고, 물러감이 없는 지위[不退轉位]에 있는 저희들도 그런 일은 통달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세계의 수효는 한량이 없고 그지없겠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분명히 말하겠소. 이 모든 세계를 부수어서 티끌을 만들어 한 티끌로 한 겁을 삼는다 해도 내가 성불한 것은 이보다 훨씬 많은 백천만억 나유타 겁 이전이오. 그때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법을 설해 교화하였고, 다른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에서도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였소.
이러는 중간에 나는 연등불(燃燈佛)을 설하기도 하고 그분의 열반을 말하기도 했지만, 이런 것은 다 방편으로 한 말들이오. 만일 어떤 중생이 나에게 오면 나는 여래의 눈으로 그의 총명하고 우둔함을 관찰할 것이오. 그래서 그 근기에 따라 여러 곳에서 다른 이름, 다른 나이의 여래로 출현하고 또 열반에 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편으로 미묘한 법을 다른 중생들에게도 기쁜 마음을 내게 한 것이오.
여래는 중생들 가운데서도 작은 법을 좋아하는 박덕하고 업이 무거운 중생을 만날 때 그를 위해 ‘나는 젊어서 출가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해 왔소. 그러나 사실 내가 성불한 지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매우 오래되었소. 다만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어오게 하려고 방편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오.
여래가 말한 경전들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므로 혹 자신을 말하기도 하고 다른 이를 말하기도 하오. 그러나 그것은 다 진실하여 허황하지 않소. 왜냐하면 여래는 삼계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기 때문이오. 여래는 삼계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非實在)도 아니며, 같음도 아니고 다름도 아닌 것을 알고 있소. 여래는 삼계를 중생이 보듯이 보지 않소.
여래는 이런 일을 밝게 보기 때문에 그릇됨이 없지만, 중생들에게는 갖가지 성품과 욕망과 행동과 생각과 분별이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선근을 내게 하려고 온갖 인연과 비유와 말로 여러 가지 법을 말한 것이오. 여래는 여래의 할 일을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았소. 이와 같이 내가 성불한 지가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되었고, 수명은 한량없는 아승지겁 동안에 머물러 멸하지 않소.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룩한 수명은 아직도 다하지 않아 위에 말한 수명의 여러 곱절이 될 것이오. 실제로는 열반이 없지만 앞으로 열반하리라고 말한 것은 여래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이오. 만일 여래가 세상에 오래 머문다면 박덕한 사람들이 선근을 심지 않아 가난하고 미천하며, 오욕락을 탐하고 허황한 소견에 빠질 것이오. 또 여래가 항상 머물러 열반하지 않음을 보고는 교만한 마음을 내며 게으르고 싫어하는 생각을 품어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오.
그러므로 여래는 ‘비구들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만나기 어려운 일인 줄 알아라. 박덕한 사람들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겁을 지나 혹 여래를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여래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라고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오. 중생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반드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고 사모하는 마음을 품어 여래를 갈망하고 선근을 심게 되므로 실제로는 열반하는 것이 아니지만 열반한다고 말하는 것이오. 모든 여래의 법도 다 이와 같아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므로 진실하여 허황하지 않은 것이오.”
3.9.12.독경의 공덕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이 여래의 수명이 이처럼 길다는 말을 듣고 한 생각이라도 믿음을 낸다면 그가 얻은 공덕은 한량이 없을 것이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을 위해 팔십만 억 나유타 겁 동안에 지혜바라밀다를 제외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의 다섯 바라밀다를 행하여 얻는 공덕을 앞의 공덕에 비한다면 백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다오. 만일 선남자 선여인에게 이러한 공덕이 있으면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나는 일이 없을 것이오.
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수명이 길다는 말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은 한량이 없어 여래의 위없는 지혜를 일으키게 될 것이오. 하물며 이 경을 많이 듣거나 남으로 하여금 듣게 하고, 스스로 지나거나 남에게 지니게 하며, 자기가 쓰거나 남을 시켜 쓰게 하고, 또 꽃과 향으로 경전에 공양한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한량이 없어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내게 될 것이오. 여래의 수명이 길다는 말을 듣고 간절한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면, 곧 여래가 항상 영취산 중인도 마가다 라자가하 부근에 있는 산 이름. 이 산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셨다.
에 계시면서 대보살과 성문들에게 둘러싸여 법문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또 여래가 열반한 뒤에 이 경을 듣고 비방하지 않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그것이 깊이 믿고 이해하는 모습이오. 하물며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는 사람이겠소. 그는 여래를 머리 위에 받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오. 이런 선남자 선여인은 다시 나를 위해 탑을 쌓고 절을 짓거나 침상·의복·음식·약 등의 네 가지로 공양할 필요가 없소. 그 까닭은 이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이미 탑을 쌓고 절을 지어 승단을 공양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오.”
『分別功德品』
3.9.13.여래의 은혜를 갚으려면
어느 때 부처님이 법의 자리에서 일어나 큰 신통력을 나타내어 오른손으로 보살들의 이마를 만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겁 동안 닦아 얻은 최상의 깨달음을 이제 그대들에게 부촉하니, 그대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이 법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널리 펴며, 모든 중생들이 잘 듣고 알게 하시오. 왜냐하면 여래는 큰 자비가 있고 아끼고 탐하는 것이 없으며 두려운 것도 없어서,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혜와 자연의 지혜를 주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중생들이 큰 시주(施主)요. 그대들도 여래의 법을 따라 배우되 아끼고 탐하는 생각을 내지 마시오.
미래에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의 지혜를 믿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여래의 지혜를 얻도록 하기 위해 법화경을 설하시오. 만일 어떤 중생이 믿지 아니하면 여래의 다른 깊고 묘한 법을 가르쳐 그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시오. 그대들이 이렇게 하면 모든 여래의 은혜에 보답하게 될 것이오.”
『囑累品』
3.9.14.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공덕
어느 때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보살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당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곧 그 음성을 듣고 그들을 다 해탈케 하는 것이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설사 큰 불속에 들어가도 이 보살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인해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합니다. 큰 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진귀한 보배를 얻으려고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폭풍으로 나찰(羅刹)의 나라에 표착했을 때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나찰의 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
또 어떤 사람이 화를 입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들이 가졌던 흉기가 부서져서 화를 면하게 될 것이오.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야차나 나찰들이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여도 관세음보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이 악귀들은 해치기는커녕 흉악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못할 것이오.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든 없든 손발이 쇠고랑에 채워지고 몸이 사슬에 묶였더라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모두 다 부서져 곧 벗어나게 될 것이오.
진귀한 보물을 가진 상인들이 도적떼가 들끊는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무서워하지 말고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시오. 이 보살은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주니 그 이름만 불러도 도적들의 재난을 면하게 됩니다’라고 말했소. 이 말을 들은 여러 상인들이 함께 소리내어 ‘나무 관세음보살’ 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재난을 면하게 될 것이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은 이와 같이 헤아리기 어렵소. 음욕이 많은 중생이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음욕을 버리게 될 것이오. 미워하고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성내는 마음을 버릴 수 있고, 업장이 두터워 어리석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어리석음을 버리게 될 것이오.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이 큰 위신력이 있어 이롭게 하니 중생들은 항상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해야하오.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며 관세음보살께 예배하고 공경하면 복덕과 지혜 있는 아들을 낳을 것이며, 딸 낳기를 원하면 단정하고 잘생긴 딸을 낳을 것이오. 그는 전생에 덕의 종자를 심었으므로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있을 것이니 중생들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합니다.”
『觀世音菩薩普門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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