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초기경전 ⑦어리석음의 비유
2.7.1.화 잘 내는 사람
여러 사람이 방안에 모여 어떤 사람의 덕망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행동은 모두 훌륭한데 두 가지 단점이 있다. 곧잘 성내지 않으면 경솔한 게 그의 흠이다.” 하고 누가 말했다.
이때 그 사람이 문 밖을 지나다가 그 말을 들었다. 그는 화를 내며 방으로 뛰어 들어와 그렇게 말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해댔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내가 언제 성을 내고 매사에 경솔하단 말이오. 이 사람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하니까 때린 것 아니오!”
한 사람이 그의 말을 받아
“지금 당신이 한 짓이 바로 성을 잘 내고 경솔하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하고 반문했다.
남이 자기 허물을 말할 때 원망하거나 성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비유하면 이렇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술에 취해 성격이 거칠어지고 정신이 흐려져 있다가도 남에게 비난을 듣게 되면 도리어 그를 원망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스스로 깨끗하다는 것을 내세우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기 허물 듣기를 꺼리며, 남에게 비난을 들으면 화를 낸다.
『百喩經』
2.7.2.옹기장이 대신 나귀를 사오다
옛날 한 바라문이 큰 잔치를 베풀려고 했다. 그는 제자에게 잔치에 쓸 질그릇을 마련해야겠느니 옹기장이를 한 사람 데려오라고 했다. 제자는 옹기장이 집을 찾아 나섰다. 도중에 그는 질그릇을 나귀등에 싣고 팔러 가는 옹기장이를 만났다. 그런데 잘못하여 나귀가 질그릇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릇이 모두 깨어지고 말았다. 그 옹기장이는 울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바라문의 제자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오랜 고생 끝에 그릇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려고 가는 길인데 이 못된 나귀 때문에 모두 깨어졌으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귀야말로 참으로 훌륭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그릇을 잠깐 사이에 모두 깨뜨려 버리니 그 솜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나귀를 사겠습니다.”
옹기장이는 기뻐하며 나귀를 팔았다. 제자는 그 나귀를 타고 돌아왔다. 그를 본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다.
“옹기장이는 데려오지 않고 웬 나귀를 끌고 오느냐?”
“옹기장이보다 나귀가 더 필요합니다. 옹기장이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질그릇을 나귀는 잠깐 동안에 모두 깨뜨려 버립니다.”
그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미련하고 지혜란 조금도 없구나. 이 나귀는 깨뜨리는 일은 잘할지 모르나 백년이 걸려도 그릇 하나 만들지는 못한다.”
세상에 은혜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도 그와 같다. 오랫동안 남의 은혜를 입고서도 그것을 갚을 줄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손해만 끼치고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이 이 비유와 무엇이 다르랴.
『百喩經』
2.7.3.물이 보기 싫거든 물가를 떠나라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몹시 목이 말랐다. 때마침 그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나무 홈통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실컷 마시고 난 그는
“물아, 이제는 더 흐르지 마라.” 하고 나무 홈통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물은 여전히 흘러 나왔다. 그는 다시
“싫도록 마셨으니 더 흐르지 말라는데 왜 멈추지 않느냐?” 하고 화를 냈다. 어떤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당신은 참 어리석구려. 당신이 이곳을 떠나면 될 텐데 흐르는 물을 보고 성화를 내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며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다. 세상 온갖 것에 집착하고 갈망하여 오욕락(五欲樂)의 단물을 마시다가 그 쾌락에 싫증이 나면 물을 실컷 마시고 난 사람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나는 것은 다시 내 눈에 띄지도 마라.”
그러나 그 다섯 가지 욕락은 끊임없이 앞에 나타난다. 그는 다시
“빨리 사라져 내 눈에 띄지 말라 했는데 왜 다시 나타나느냐?” 하고 화를 낸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것들로부터 떠나고 싶으면 당신의 여섯 감관을 거두고 그 마음을 닫아 망상을 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곧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들이 생기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물을 마신 어리석은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百喩經』
2.7.4.연주의 대가를 못 받은 악사
어느 악사가 왕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왕은 그에게 연주의 대가로 돈 천 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연주를 마치자 악사는 왕 앞에 나아가 그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자 왕은 돈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연주한 음악은 내 귀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그것은 네 귀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도 돈을 내놓아라.”
인간의 세계에서나 천상에서 조그마한 즐거움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없어 덧없이 소멸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니 마치 음악소리가 허무한 것과 같다.
『百喩經』
2.7.5.누각의 삼층만 지으려는 부자
옛날에 미련하여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웃 부잣집에 갔다가 삼층 누각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웅장하고 화려할 뿐 아니라, 넓고 높아 시원스럽게 보였다. 어리석은 부자는 무척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재산도 저 사람 것만 못하지 않다. 아직까지 나는 왜 이런 누각을 짓지 않았을까?’ 그는 곧 목수를 불렀다.
“저 누각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누각을 지을 수 있겠소?”
“저 집은 내가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곧 저런 누각을 지어 주시오.”
목수는 곧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짓는 것을 지켜보던 부자는 의심이 나서 목수에게 물었다.
“어떤 집을 지으려는 것이오?”
“삼층 누각을 짓는 중입니다.”
그때 이 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래 두 층은 필요 없으니 맨 위층만 지어 주시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래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이층을 지으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삼층을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런 집은 짓지 못합니다.” 하고 목수는 그만 떠나버렸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그 부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이는 마치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하다가 도(道)의 결과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람이 세상의 비웃음을 받는 것은 누각의 삼층만 지으려는 어리석은 부자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百喩經』
2.7.6.가난한 아이의 욕심
어떤 가난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큰 부자를 보자 그 부자처럼 많은 재산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아이는 홧김에 자신이 지녔던 조그만 재물마저 물속에 던져 버리려 했다. 그것을 본 한 사람이 아이에게 타일렀다.
“너는 아직 나이도 어려 앞길이 창창한데 왜 그것을 물속에 버리려 하느냐? 그 재물이 비록 적긴 하지만 네가 노력한다면 늘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집을 갓 떠나 진리를 조금 터득했을 때, 그들은 깊은 진리를 얻어 덕이 높은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한다. 나이가 많고 덕이 있으며 또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공양 받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쉽사리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끝내는 그만 수행하기를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아이가 노력도 없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기를 바라다가 자신의 재물마저 버리려는 것과 같다.
『百喩經』
2.7.7.귀한 목재로 숯을 굽다
옛날 한 부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바닷가에 놀러 나갔다가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목재를 하나 건져 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목재를 내다 팔 양으로 그것을 다시 장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아주 귀한 목재여서 값이 비싸기 때문에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게 되자 그는 걱정이 되었다. 마침 옆에는 숯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숯은 잘 팔렸다. 이것을 본 부자의 아들은 목재로 숯을 구워 어서 제 값을 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목재를 태워 숯을 만들어 내다 놓았다. 그러나 그는 나무의 절반 값도 받지 못했다.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여러 가지 방편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다 그것이 얻기 어려워지면 물러난다. ‘차라리 소승(小乘)의 결과를 얻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百喩經』
2.7.8.나귀의 젖을 짜려는 사람들
옛날 어떤 시골에 나귀를 구경조차 한 일이 없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나귀의 젖이 매우 맛이 좋다는 말은 어디서 듣고 그것을 몹시 먹고 싶어 했다. 어느 날 그들은 수나귀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젖을 짜려고 서로 다투어 나귀를 붙잡았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붙잡고, 어떤 사람은 귀를 붙잡으며, 더러는 꼬리나 다리를 붙잡기도 했다. 서로 먼저 젖을 짜 마시려고 법석을 떨고 있을 때 별안간 한 사람이 나귀의 생식기를 움켜잡고 ‘이것이 젖이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두들 생식기에 달라붙어 젖을 짜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이교도의 범부들도 그와 같다. 진리라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찾지 않고 허망하고 잡된 생각을 내거나 잘못된 견해를 내어 일부러 발가벗거나 굶주리거나 혹은 높은 벼랑에서 몸을 던지기도 한다. 결국 잘못된 생각 때문에 나쁜 길에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젖을 얻으려는 것과 같다.
『百喩經』
2.7.9.과일을 따려고 나무를 베다
어떤 나라의 궁전 뜰에 과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는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하여 얼마 안 있으면 향기롭고 맛있는 열매가 많이 맺힐 것 같았다. 왕은 그 나무 아래서 한 신하를 만나
“앞으로 이 나무에 맛있는 열매가 많이 열릴 텐데 그대는 그것을 먹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다. 신하는 왕에게
“이 나무는 너무 높고 커서 먹고 싶어도 열매를 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왕이 안으로 들어간 뒤 신하는 열매를 따기 쉽도록 나무를 베어 버렸다. 열매가 맺히기는 고사하고 나무가 말라죽게 되자 그는 다시 나무를 세워 놓았지만 헛수고였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 법의 왕이신 부처님께는 계율의 나무가 있어 훌륭한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를 먹으려면 반드시 계율을 지키고 온갖 공덕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 도리어 계율을 비방한다. 그것은 마치 나무를 베어 버린 다음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百喩經』
2.7.10.재산은 놓아두고 문만 지키다
어떤 사람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려 했다. 그는 하인에게 문단속 잘하고 나귀와 밧줄을 잘 살필 것을 당부한 다음 집을 나섰다. 주인이 떠난 후 이웃집에서 한 친구가 광대놀이를 구경 가자고 그를 부르러 왔다. 그는 밧줄로 나귀를 묶어 문에 매어 두고는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 곧 그 집에 도둑이 들어와 값진 물건들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 주인이 돌아와 하인에게 물었다.
“집안의 값진 물건들을 모두 어떻게 했느냐?”
“주인께서는 제게 문과 나귀와 밧줄만을 부탁했을 뿐입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제 알바가 아닙니다.” 하고 태연하게 주인을 쳐다보았다. 주인은 어리석은 하인을 꾸짖고 나서 말했다.
“너에게 문단속을 잘하라고 한 것은 바로 값진 물건들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들을 모두 잃어 문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너도 이 집에서 쓸모가 없게 됐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인 인간이 애욕에 노예가 되는 것도 이와 같다. 부처님은 항상 ‘감관의 문을 잘 단속하여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무명(無明)의 나귀와 애욕의 밧줄을 잘 지키라’고 훈계하였다. 그런데 어떤 비구들은 부처님의 교훈을 받들지 않고 이익만을 구하고 거짓 청빈을 꾸미어 고요한 곳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산란하여 오욕락(五欲樂)에 빠져 있다. 즉 형체와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에 현혹되고 마음은 무명에 덮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른 생각과 깨달음의 재물을 모두 잃고 만다.
『百喩經』
2.7.11.참깨를 볶아 심다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날 깨만을 먹다가 우연히 볶은 깨를 먹게 되었다. 퍽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깨를 아예 볶아서 심으면 뒷날 맛있는 깨를 거둘 수 있겠구나.’ 하고 깨를 볶아 밭에 뿌렸다. 그러나 볶은 깨에서 움이 틀 리가 없었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오랜 세월 부처의 경지에 이르려고 괴로운 수행을 하다가 그것이 고통스러우면 ‘차라리 소승(小乘)의 길을 닦는 것이 더 쉽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처음의 큰 바람은 그 결실을 원만하게 이루지 못하고 만다. 그것은 마치 볶은 깨에서 움이 트지 않는 것과 같다.
『百喩經』
2.7.12.머리를 끌고 가는 꼬리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뱀의 꼬리가 머리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앞서가야겠다.”
그러나 머리는
“언제나 내가 앞서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 라고 하면서 여전히 앞서갔다. 그러자 꼬리는 심술이 나서 그만 나무를 칭칭 감아 버렸다. 머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머리는 하는 수 없이 꼬리를 앞세워 가게 되었다. 그러나 꼬리는 길을 잘못 들어 불구덩이에 떨어져 뱀은 타죽고 말았다.
스승과 제자도 이와 같다. 제자는 ‘스승들은 연로하다는 이유로 항상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젊다. 우리가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계율에 익숙지 못한 젊은이들은 항상 계율을 범하다가 서로를 이끌고 지옥에 떨어지기 쉽다.
『百喩經』
2.7.13.떡 한 개로 입을 봉한 부부
고집이 센 한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그들에게 떡 세 개가 생겼다. 부부는 떡 한 개씩을 나누어 먹고 나서 한 개를 서로 더 먹겠다고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다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떡을 먹기로 했다. 떡 한 개 때문에 종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 방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훔쳐 쌌다. 그러나 부부는 입을 봉한 채 도둑이 하는 거동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도둑은 그들 부부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아무 말도 없는데 용기를 얻어 그 부인을 범하려 했다. 그래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참다 못한 아내가
“도둑이야!” 하고 고함을 치며 남편에게 대들었다.
“미련한 사내, 그래 떡 한 개 때문에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단 말이오?”
그러자 남편은
“떡은 내 것이야!” 하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비웃었다.
범부들도 그와 같다. 조그만 명성이나 이익을 위해 큰 손해를 보면서도 잠자코 있다. 온갖 번뇌와 악한 도둑의 침범으로 좋은 법을 잃고 악도에 떨어진다 해도, 그것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출세의 길만 구한다. 그리고 오욕락에 빠져 큰 고통을 당하더라도 재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저 어리석은 부부와 다름이 없다.
『百喩經』
2.7.14.입을 걷어차다
옛날 부자가 한 사람 있었다. 곁의 사람들은 그의 환심을 사려고 그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었다. 심지어 그 부자가 가래침을 뱉으면 그의 시종들은 달려가 그것을 밟아 문지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어떤 미련한 시종 한 사람이 자기도 그렇게 하여 그의 눈에 들고자 했으나 차례가 돌아오지 않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침을 뱉을 때마다 나보다 날쌘 사람들이 먼저 달려가 그것을 밟아 버릴 테니, 나는 그가 침을 뱉으려 할 때 얼른 밟아 버려야겠다.’
그때 마침 부자가 가래침을 뱉으려 했다. 미련한 그 시종은 얼른 발을 들어 부자의 입을 걷어차 버렸다. 부자의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졌다. 부자는 화를 벌컥 내며 그를 꾸짖었다.
“너 이놈, 어찌 감히 내 입을 차느냐?”
어리석은 시종은 대답했다.
“만일 주인어른의 침이 입에서 나와 땅에 떨어지면, 곁에 사람들이 얼른 밟아 버리기 때문에 제게는 차례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침이 입에서 나오려 할 때 먼저 밟으려고 했던 것이 그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때가 있는 법이다. 때가 채 이르기도 전에 억지로 애를 쓰면 도리어 화를 당한다. 사람들은 제때와 제때 아님을 잘 살펴 알아야 한다.
『百喩經』
2.7.15.한꺼번에 짜려던 우유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잔칫날을 앞두고 그날 손님들에게 대접할 우유를 짜 모으다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날마다 우유를 짜 모으면 저장할 곳도 마땅치 않고 맛도 덜할 것이다. 그러니 아예 소 뱃속에 우유가 고이도록 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짜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는 새끼소마저 따로 떼어 매두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잔칫날이 돌아왔다.
그는 소를 끌고와 젖을 짜려 했다. 그러나 젖은 계속해서 짜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았다. 잔치에 온 손님들은 그 사정을 듣고 모두 그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그는 보시를 하려다 말고 ‘재산이 많이 모이면 그때 한꺼번에 보시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산은 많이 모이기도 전에 수재, 화재, 혹은 관청이나 도둑의 약탈로 인해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 또는 갑자기 목숨을 잃어 알맞은 시기에 보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것은 앞의 비유와 다를 바 없다.
『百喩經』
2.7.16.물속에 비친 금덩이
어떤 사람이 물가에 갔더니 물속에 금덩이가 보였다. 그는 물속에 들어가 금을 찾으려 했다. 진흙을 헤치며 금을 찾아보았으나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물 밖으로 나왔다. 흐려진 물이 맑아지자 또 그 금덩이가 보였다. 다시 물에 뛰어 들어가 그것을 찾았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번 거듭하자 그는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이때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왔다가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았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지쳐 있느냐?”고 물었다. “물속에 금이 있기에 들어가 건지려 했지만 찾지 못하고 이렇게 몸만 지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물속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나무 위에 금덩이가 있어 물속에 비친 것임을 알았다. 그는 아들에게 “저것은 새가 금을 물고 가다 나무 위에 둔 것일 게다.” 하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나무 위의 금을 내려와 집으로 가지고 갔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그와 같다. 이 육체 속에 내가 있는 줄 알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百喩經』
2.7.17.거울 속의 사람
몹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항상 곤궁해서 남의 빚만 잔뜩 짊어진 채 갚지도 못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쳤다. 도중에 그는 겉이 거울로 덮여 있는 한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그는 기뻐하여 상자를 열려 했다. 그때 거울 속에서 웬 사람이 자기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놀라서 얼른 합장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상자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이 속에 있을 줄은 정말 모르고 그랬으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범부들도 그와 같다. 한없는 번뇌의 시달림을 받고 생사의 마왕(魔王)에게 핍박을 당하다가 그것을 피해 바른 가르침 안에 들어온다. 그들은 좋은 법을 닦아 행하고 여러 가지 공덕을 쌓으려 한다. 그러나 보물상자의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남으로 착각하는 바보처럼 ‘나’가 있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낸다. ‘나’에 집착하여 그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타락의 길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보물상자를 버리듯, 나라는 관념에 집착하기 때문에 온갖 공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百喩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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