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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 기원정사에서의 설법

  1. 사위성

 부처님은 또다시 잠시동안 왕사성에 머물러 있었다. 사위성에는 수닷타라는 인정 많은 유명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왕사성에 사는 어떤 장자의 친척이었다. 불쌍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는 분이었기 때문에 급고독, ‘아나타핀디카’라고 불리고 있었다. 상용으로 왕사성에 왔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부처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이미 날이 저물었으나 밤이 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캄캄한 밤중에 성문을 나가 새벽녘에 한림이라는 묘지에서 경행하고 있던 부처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한림은 왕사성 교외의 남쪽에 있었던 모양이며 그곳은 왕사성 부근에 사는 고행자들의 수행지였다. 
 부처님은 장자 수닷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전한다. 
 “사람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또 맹수도 피한다. 뱀, 모기, 찬 비, 그리고 심한 열풍이 불어오는 것도 피한다. 홀로 고요히 있을 수 있도록, 보호와 안녕을 주기 위해 ‘상가’에 정사를 바치는 것은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이익됨을 보는 현명한 사람은 쾌적한 정사를 지어 거기에 다문하신 분들을 머무르게 해야 한다. 
 신심으로 음식물과 의복, 좌와의 도구를 그들 바른 마음 가진 분들에게 드려야 한다. 그분들은 또 공양올리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고통을 없애는 이치를 말하고 그리하여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 이치를 알아 남김없이 온전히 니르바나에 들어갈 것이다.”
 수닷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무척 기뻐하여 일생동안 우파사카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기로 맹세하였다. 그리고 수닷타는 이튿날 부처님을 왕사성의 자기 숙소로 모셔갔다. 거기서 그는 이 해의 우기를 부처님이 사위성에서 보내 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원하였다. 부처님은 그렇게 하려면 한적한 곳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장자는 부처님에게 바칠 정사를 건립할 결심을 하였다.
 정사는 죽림정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 왕복하기가 좋으며 낮에는 복잡하지 않고 밤에는 소란스럽지 않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숨어살기 좋은 장소가 아니면 안된다. 장자는 교외를 돌아보고 사위성 남쪽에 제타왕자가 가지고 있는 동산이 가장 적당한 곳임을 알았다. 제타왕자에게 곧 그 동산의 양여를 간청해 보았으나 왕자는 쉽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장자가 너무 열심히 청하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기 위해서 왕자는 “만약 황금을 동산 일대에 깔고 쌓아올린다면 그 값으로나 줄까”하고 대답하였다. 장자는 좋아서 그냥 황금을 동산 일대에 깔기 시작하였다. 왕자도 그때에는 아주 놀라 마침내 그 동산을 양도하기에 이르렀다. 장자는 여기에다 부처님이 있을 곳, 제자들이 있을 방 등을 만들고 정사를 완성했다. 본래 제타왕자가 가지고 있던 동산에 급고독 장자가 건립한 정사라는 뜻에서 기원급고독정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사위성의 원음은 사밧티, 슈라바스티이며, 사밧타왕이 건설한 도시란 말이다. 학자들은 지금의 사헤트 마헤트가 그 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위성은 BCE 5-6세기 경 즉 석가가 탄생한 시기를 전후하여 그 융성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당시의 인도의 이대 중심지는 이 사위성과 왕사성이었던 것이다. 왕사성이 마가다국의 서울인데 대하여 사위성은 코살라국의 서울로서 히말라야 산록 일대의 특수한 문화의 요람지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이 이 대중심지를 교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전 인도의 교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전조가 되는 것이다. 사위성의 교화는 성도 제4년 이후의 일이지만 왕사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활발히 진행되어 위로는 왕가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밑으로는 도로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사위성 일대의 모든 주민이 거의 다 그 제자가 된 것이라고까지 한다. 부처님은 여름의 장마철 때면 즐겨 이곳에 머물렀다. 인도의 우기는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된다. 이 동안에 부처님은 그 제자들과 더불어 고요한 명상의 생활을 보내며 또 제자들에 대한 교화를 해 나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사위성은 왕사성 다음으로 부처님이 오래 머물렀던 곳임에 틀림없다. 사위성에서 왕사성으로 가는 길은 세 개밖에 없다. 이 세 개의 길을 통해 부처님은 두 도시 사이를 왕복하며 제자들을 교화하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사위성에 머무는 동안에 또 많은 제자를 얻었다. 경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이름을 보면 사위성 출신의 비구가 80명이나 되며 비구니가 14명, 우파사카가 19명, 우파시카가 10명이나 된다. 이 숫자는 개략된 숫자이지만 얼마나 사위성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경도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중에는 당시 인도 사회의 고질이라고 할 카스트제도를 무시한 각계각층의 사람이 말라되어 있었다. 전기한 제자들 중에는 41명의 브라만이 들어 있었고, 11명의 크샤트리아, 49명의 바이샤가 들어 있으며, 슈드라계급 출신도 8명이나 된다. 그밖에 경전에는 코살라국 출신의 제자라고 적힌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보통 전 인도에 걸쳐 부처님의 큰 제자로서 일흔다섯 사람을 드는데 그 중 17명은 사위성 및 그 부근의 사람들인 것이다.


 2. 성자의 길

 이와 같이 기원정사가 생기고 많은 수행자들의 중심지가 생기고 보면 당연히 그들의 생활규칙이 제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율제, 계율이 바로 그것이다. 탁발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녀자들에게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설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규칙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초기 경전들에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들이 적혀 있다. 
 내 너희들에게 성자의 길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이는 행하기 어려우니라. 너희에게 이를 말하리니, 불굴하라, 견인하라.
 비구는 때아닌 때에 나아가 행각하지 말라. 걸식을 하도록 정해진 때에만 걸식을 할 것이다. 그 까닭은 정해진 바 아닌 때에 나아가 행각하면 탐욕의 집착이 따라다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비구는 적당한 때에 아침 음식을 얻기 위해 마을로 들어가라. 시식을 얻고 나면 홀로 물러서, 그늘에 앉아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 조심성 있게 하며, 마음을 외경에 산란케 하지 말라. 
 음식의 알맞은 정도를 알고 즐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고 관하고 식사의 득실을 잘 알아 욕심을 적게 하고 탐내지 말라. 그리하여 비구는 바로 무욕안온한 것이며, 기갈을 떠나 안락한 것이다. 숲속에 있어서 화염의 불꽃처럼 여러 가지 것을 날카롭게 느끼는 것이다. 
 여인은 침묵을 지키는 자들도 유혹한다. 침묵을 지키는 자는 여인에게 유혹되지 말아야 하느니라. 
 대소의 동물에 대해 남의 것이라고 미워하지 말고 내 것이라고 애착하지 말라. 나는 마치 그들과 같고 그들은 마치 나와 같으니라. 스스로 죽이지 말며 남으로 하여금 죽이게 하지 말라. 비구는 만일 말할 일이 있으면 좋은 이치를 말하라.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이는 마치 도랑물과 강물에 비할 수 있느니라. 도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대하는 소리 없이 흐른다. 물이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며 물이 가득 찬 것은 그냥 고요하기만 하느니라. 범부는 반쯤 물이 든 병과 같고 지자는 물이 가득 찬 병과 같으니라. ……


  3. 오하일미 

 위에서도 본 바와 같이 부처님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실로 기원전 6세기에 난 참된 휴머니스트였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동방원림 녹자모의 강당에 있을 때, 두 사람의 브라만이 있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세존에게 가서 출가하고 도를 이루었다. 이름을 바셋타 및 브하라다라고 했다.
 그때 세존은 정실을 나와서 강당에 들고 천천히 경행하고 있었다. 바셋타는 부처님이 경행하는 것을 보고 급히 브하라다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너 아느냐 모르느냐. 여래께서 지금 당상을 경행하고 계시는데 우리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도록 하자. 너 여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그때 브하라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에게 가, 이마를 땅에 대어 절하고 부처님을 따라 경행하였다. 그때에 세존은 바셋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두 사람은 브라만 종성 출신으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내가 가르친 이치를 따라 출가수도를 하는 것이냐?”
 두 사람은 대답하여 “그러하옵니다” 하였다. 세존은 말씀하기를,
 “너 브라만아, 지금 내가 가르친 법안에서 수도를 함에 있어, 모든 브라만이 너를 싫어하고 책망하는 일이 없느냐?”하였다. 대답하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출가수도 하옵는데, 실로 그 브라만 때문에 너를 싫어하고 책망하는 거냐?”하고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옵니다. ‘우리 브라만족 출신이 제일이고 다른 것은 야비하고 비천하다. 우리 종성은 청백하고 다른 종성들은 검고 어둡다. 우리 브라만 종성은 범천의 입으로부터 생겼다. 이 세상에서 청정한 지혜를 얻었다.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청정한 종성을 버리고 그 고타마의 이교 속에 들어갔느냐?’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말로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세존은 바셋타에게 말하기를,
 “지금 내 더할 나위 없이 바르고 진정한 도에서는 종성을 문제삼지 않고, 교만한 마음을 믿지 않는다. 속법은 이것을 문제삼으나 내 법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사문, 브라만이 있어 스스로 종성을 자랑삼고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내 법 중에서는 마침내 무상의 증오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능히 종성을 버리고 거기서 떠나 교만한 마음을 없애면 즉 내 법중에서 도의 증오를 얻어 정법을 받을 수가 있다. 사람들은 미천한 계급을 좋아하지 않으나 내 법은 그렇지 않으니라.”
 세존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또 사종성의 별이 아무런 절대적 의의를 가지 못함을 강조했다. 왕족 중에도 살생하는 자가 있고, 도적질하는 자가 있고, 음란한 자가 있고, 거짓말하는 자가 있고, 두 혓바닥을 가진 자가 있고, 말버릇 나쁜 사람이 있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인색한 자가 있고, 또 질투하는 자가 있고, 사견있는 자가 있다고 말하고 종성의 우열이 조금도 사람의 우열을 표시하는 것이 못됨을 지적했다. 문제는 행위에 있으며 종성에 대한 하잘것없는 집착된 견해를 버리는 것이 더 긴요하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또 세속의 종성을 버리고 출가하면 모두 다 사문 샤카의 사람이라고 불려진다고 하였다. 후대에 중국에서 출가자들이 그 본래의 성씨를 버리고 ‘석자’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 즉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비구들아, 마치 세상에 모든 강이 대해로 모여들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도 대해로 몰려가지만, 그것 때문에 대해의 물이 감소되거나 또 많아지는 것 같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들아, 가령 허다한 비구들이 니르바나의 경계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니르바나의 경계가 줄어들거나 또 많아진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비구들아, 마치 대해가 오직 한 맛 짠맛 밖에 없는 것과 같이 이 가르침은 오직 한 맛 즉 해탈의 맛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왕족이거나 브라만족이거나 또는 상인이거나 노예거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절대적인 우월성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해탈의 맛, 니르바나의 맛밖에는 없는 것이다.
 인도에는 다섯 개의 강이 있어 특히 유명하다. ① 갠지스강, ② 야무나강, ③ 사라부강, ④ 아티라바티강, ⑤ 마히강. 이 다섯 개의 강이 결국은 한결같이 대해에 모여들어 다만 한 가지 맛만을 나타낸다는 진리를 간단히 오하일미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말은 벌써 <우파니샤드>의 선인들이 즐겨 쓴 바 있는 어구다. 그것이 여기에 다시 부처님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미가 곧 니르바나의 맛임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후대의 대승이론가들은 그런 관점에서 이 일미란 말을 즐겨 쓰는 것이다.


 4. 밭가는 브라만

 어느 때 부처님이 마가다국 남산의 브라만촌으로 탁발을 하러 갔다고 한다. 이것은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한 설법이다. 농사에 종사하고 있던 브라만이 탁발 나온 부처님께 골탕을 먹일 양으로 자기 스스로 경작해서 먹으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은 근육노동만이 노동인 것이 아니라고 타이르고 스스로 자기도 밭갈이하는 자임을 천명한다.
 경전에는 부처님과 브라만간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브라만: “사문이여, 나는 밭갈이하고 또 씨를 뿌리오. 밭을 갈고 나서 씨를 부리고 나서 먹소. 사문이여, 당신도 밭갈이라고 씨를 뿌리고 나서 잡수시오.”
 부처님: “브라만이여, 나도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리오. 밭갈이를 끝내고 또 씨뿌리기를 끝내고 먹는 것이오.”
 브라만: “그러나 우리는 당신 고타마의 보습도, 쇠스랑도, 소도 보지 못하오. 그런데 당신은 ‘나도 밭을 갈고 또 씨를 뿌리며, 밭갈이를 끝내고, 씨뿌리기를 끝내고 먹는다’고 하오.”
 그때에 석존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을 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은 씨요,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비요, 지혜는 내 보습이며, 삽이오. 부끄러움은 원이요, 의사는 묶는 밧줄이요, 깊은 생각은 려두며 자침이오. 몸을 막고, 말을 막고, 음식의 종류를 제한하고, 먹는 것에 불과하오. 진실로 풀베기를 하고, 유화는 내 이액이오. 부지런히 일함은 속박을 떠난 안온으로 이끄오. 내 일소는 근심 없는 곳에 이르러 다시 돌아옴이 없는 것이오. 내 밭갈이는 이렇게 하여 진행되며, 내 밭갈이에는 감로의 열매가 있소. 사람은 이러한 밭갈이를 하고 나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되는 것이오.
 이 때 밭갈이하던 브라만은 황금의 바리에 우유죽을 가득 채워 부처님에게 바치고, “당신은 일하는 사람이오. 당신은 감로의 열매를 거두는 농사에 종사하기 때문입니다”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날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세간과 싸우지 않는다. 다만 세간이 나와 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구들아, 진리를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간과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
 비구들아 세간에는 세간의 법이 있다. 나도 또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에게 분별하여 연설하고 현시하였다. 세간의 눈먼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고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내 잘못은 아닌 것이다.”
 부처님이 말한 세간의 법이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이 무상하고 괴롭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지 않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눈먼 속인의 반발을 부처님은 불쌍히 여기고 한 말씀이다.
 또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비구들에게 그들이 부자와 같이 서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너희들 비구에게는 부모도 형제 자매도 없다. 또 무슨 그 밖의 권속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서로 보살펴야 한다. 각각 뿔뿔이 흩어짐은 잘하는 일이 못되는 것이다. 곧 외도, 이학, 브라만으로부터 조소를 받기 알맞을 것이다. ……
 너희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에게 너희는 굴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제자가 스승을 모시기를 어버이 모시듯 하고 스승이 제자를 보기를 아들 보는 듯하여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기를 그치지 말라.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영원토록 해야 한다. 모든 물건은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되 만약 가진 물건이 없거든 널리 보시할 수 있는 집을 찾아 권고하여 시를 받도록 하라. …… 좋은 것은 병자에게 주고, 나쁜 것은 스스로 먹어라. 이웃이 병들어 있음을 보살피는 자는 곧 나를 보살피는 것과 같으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곧 적극적인 실천윤리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가 있다. 행과 신과의 일치,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적인 주안이었던 것이다.
 또 부처님은 카삽파란 브라만 승려가 와서 “당신은 제사란 제사, 고행이란 고행은 모두 더러운 짓,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는데 그것이 정말인가?”하고 물어 온 데 대해 이런 말로 대답하였다. 
 “카삽파야, 누가 만일 사문 부처님이 모든 제사의 법을 가책하고, 고행인을 매도하고, 그것이 더럽다고 말한 듯이 전했다면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니다. 나를 비방하기 위한 말이지, 성실한 말이 아니다.”
 부처님은 계속하여 그 이유를 말한다. 왜냐하면 제사를 일삼는 사람이나 고행자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죽어 지옥에 떨어지고, 또 어떤 사람은 천상계의 좋은 곳에 태어나는 자 있음을 봄으로 그냥 덮어놓고 제사와 고행을 나쁘다고 책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무엇이든 절대적으로 좋고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그런 견해가 서지 않는다. 부처님의 비판 태도는 어디까지나 중도이지 시는 시, 비는 비라는 일향적인 입장을 벌써 초월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부처님이 가졌던 일방적 훼예포폄의 잘못에 대한 見解, 이 세상에서 비방이 그칠 날이 없다는 사실, 따라서 비방에 대한 인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교훈이 들어 있는 경전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하자. 
 화살을 맞고 참는 전장의 코끼리모양 나는 사람들의 비방을 참으리라. 세상 사람들은 실로 계를 지키지 않는 까닭이니라.
 모두가 칼을 두려워하고, 모두가 죽음을 무서워한다. 
 자기를 좋은 예로 삼고 남을 해치며 또 손상게 하지 말라.
 비구들아, 이는 예부터 내려오는 말,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니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다고 비방하고, 많이 말한다고 비방하고, 또 적게 말한다고 비방한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비방을 받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 그냥 비방만 받고, 그냥 칭찬만 받는 그런 것, 지난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또 앞으로도 없으리라. 한아름 되는 바위는 바람에 흔들리는 일이 없다. 
 그와 같이 마음 있는 자는 비방과 칭찬과의 사이에서 동요되는 일이 없도다. 


 5. 나를 보는 것 같이 하라

 어떤 날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있을 때 모든 비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만일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존경하라. 설사 멀리 떨어져 있기를 천리 또는 만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먼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는 꼭 내 옆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항상 나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갚을 줄 아는 자, 은혜를 아는 자, 그는 부처님 옆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 옆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이상에 가까이 접근해 있다는 말이라고 들어도 좋은 것이다. 실로 부처님은 자비로운 마음의 구족자다. 인생의 고통을 아는 자, 그 원인을 아는 자가 어찌 은혜를 모를 리가 있으랴! 원융무애한 마음의 사도인 부처님의 그 마음에 관한 설명은 또 계속된다.
 부처님이 사위성에 있을 때 어떤 신자들의 초청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여러 승방을 두루 살피며 다닌 일이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앓고 있는 비구 한 사람을 보았다. 앓고 누워있는데 아무도 돌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냥 똥오줌 속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그렇게 누워 있느냐, 돌보아주는 사람도 없느냐?”하고 묻자, 없다고 대답했다. 어째서 없느냐는 부처님의 물음에 그 비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앓지 않을 때 남이 병든 것을 보고 돌보아주지 않았더니 지금 아무도 저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너희들이 서로 돌보아주고, 간호해 주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하겠는가” 하고 말하여 그 비구를 일으켜 세우고 옷을 벗겨 깨끗이 닦아주며 그 모든 뒤처리를 다하였다. 옷을 빨아 말리고 깔았던 낡은 풀을 다 버리고 그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새 풀을 뜯어다 깔고, 한 옷을 그 위에 펼쳐 놓고않지 않는 비구를 그 위에 누인 다음 다시 다른 한 옷으로 덮어주고 돌아갔다.
 이런 인연에 따라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아 놓고 다시금 그 제자들이 서로 돕고 서로 보살펴줄 것을 강조한 것이다. 
 “만일 나에게 공양하고자 원하는 자가 있거든 바로 병자들에게 공양할지니라.”
 우리는 이 평범한 말씀에서 현대사회에 있어서 종교인이 해야할 실천적 참여의 방향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차이는 규모와 정도의 광대한 한 가지 사실 밖에는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의 사람들보다도 더 확대된 무거운 책임이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이야기가 다른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교훈과 더불어 기록되어 있다. 
 “병든 자를 보살핌은 곧 나를 보살핌이다. …… 이 세상 모든 수행자의 시 가운데서 이보다 더 나은 시는 없느니라. 이와 같은 시를 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을 얻어 영광이 두루 미치고 감로의 법미를 이룩하리라.”
 또 어떤 날 기원정사에 있을 때, 존자 마하카삽파가 녹자모의 강당에서 참선을 하다가 저녁 때 부처님 있는 곳으로 와 한편 구석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은 마하카삽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는 지금 이미 노쇠에 접어들어 체력이 몹시 쇠약했네. 누더기 옷은 무거울 것일세 내 옷은 가벼운데 자네도 이제는 절 안에 머무르면서 가벼운 옷을 입도록 하게.”
 카삽파는 부처님에게 대답하여, 자기가 오랫동안 숲속의 수행을 배우고 그것을 찬양하며 누더기 옷을 입고 걸식행각을 해 온 사실을 상기게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은 그럼 무엇 때문에 숲속의 수행을 해왔던가 하고 도리어 그 뜻을 카삽파에게 묻는다. 카삽파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두 가지 뜻으로 보옵니다. 이 육신생활을 위해서는 안락을 얻을 수가 없사옵고, 또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등불이 될 수 있사옵니다. 미래의 중생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옵니다. ‘옛날의 어른들은 출가한지 오래되었고 정행이 이미 성숙했었다. 세존께서는 칭찬을 하시고, 지혜 있는 수도자들은 따라 일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숲속의 수행을 익히고 찬양하고, 누더기를 입고 탁발하면서 그 걸식법을 찬양했다’ 이와 같이 지난날의 수행자의 숲속의 수행상을 듣는 사람은 깨끗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옵니다. 이 세상 긴긴 밤에 안락과 이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 부처님은 그와 같은 소욕의 법을 칭찬하는 일이야말로 곧 나를 찬양하는 일이라고 의미 심중한 교훈을 했다.
 “착한 일이 도다. 자네는 많은 이익을 주고 있고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 있으며 세상을 불쌍히 여기어 천지를 안락케 하고 있네. 조금이라도 소욕의 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 되네. 만일 소욕의 법을 찬양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곧 나를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일세. 그 까닭은 소욕의 법은 내가 이 긴 밤중에 항상 찬양하고 찬탄한 바이기 때문일세.”
 우리는 지금까지 붓다로서의 세존의 본령에 속하는 인간적인면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은혜를 아는 인간, 병든 자를 보살피는 인간, 소욕의 법을 찬양하고 수행하는 인간, 이와 같은 이상적 인간형이 나중에 대승불교의 보살 이상으로서 강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론들은 새로이 현대적인 각도에서 그 의의가 탐구되어야 할 단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또 사위성에 머무는 동안 자기 자신을 사랑함과 같이 남의 생명을 아껴야 한다고 가르친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산 물고기를 괴롭히며 장난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너희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희들 자신이 즐기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어떤 때에는 아이들이 뱀을 작대기로 죽이고 있는 것을 보고 역시 같은 말로 안락을 추구하는 모든 산목숨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쳤다. 부처님의 비폭력의 정신은 여기에도 역력히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그는 모든 좋지 않은 일은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경고하였다. 
 “멸망의 발단은 무엇이냐? 착한 일을 바라는 사람은 흉하고 착한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멸망한다. 그는 조용하지 않은 사람을 귀히 여기고 조용한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착하지 않은 사람의 행위를 좋아하는 것, 이것이 멸망의 발단이다.
 수면을 상습으로 삼고, 집회오락을 상습으로 삼아, 태만하고 해이하고, 성내기 잘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혹은 어머니를, 혹은 아버지를, 늙고 쇠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스스로 생활이 유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봉양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모든 브라만과 사문 또는 그밖에 걸식자를 거짓말로 기만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스스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서 혼자 호의포식하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가문과 재보와 성씨를 믿고 스스로 존대불손하여 자기의 친척까지도 천시하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여색에 빠져 술에 젖고, 도박에 잠겨 얻으면 얻는 대로 잃는 사람,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자기 아내만으로 만족치 못하고 창녀와 사귀며, 또 유부녀와 관계하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장년을 지난 자가 팀바루의 열매와 같은 유방 있는 젊은 부인을 끌어들여 그녀에 대한 질투로 잘못 이루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주육에 잠겨 재산을 탕진하는 남녀에게 가업의 실권을 맡기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지배자의 집안에 태어나 재산은 적은데 욕심이 지나치게 커, 언제나 주권을 얻고자 바라는 자, 이는 멸망의 발단이다.
 세상의 이와 같은 멸망을 식별하는 힘이 있는 성자는 바로 이러한 관찰에 의해 평안한 하늘세계에 다다를 것이다.”
 이것은 12개조로 된 패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으로 재가생활자를 위해서 설한 그렇게 흔하지 않은 교훈이다. 이것이 또한 오늘날의 사회윤리 내지는 위정자의 행동기준으로서 얼마나 유효 적절한 가르침이냐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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