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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부처님생애 ①

 


1.1.1.탄생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던 기간은 팔십 년에 불과하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더하고 있다. 그는 불교라는 한 종교의 창시자이기에 앞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몸소 체험하고 그 자각(自覺)을 선언한 최초의 인간이다. 생명과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지혜와 자비의 길을 열어 보인 구도자였다. 그는 신비의 장막에 가린 신이 아니고 인류의 역사 안에 살았던 인간이었다. 그가 일찍이 이 지상에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살았다는 사실은 우리들 모든 인간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히말라야 남쪽 기슭에 사캬족[釋迦族]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의 네팔 타라이 지방에 카필라[迦毘羅城]라는 조그마한 왕국을 이루고 있었는데, 카필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슛도다나王[淨飯王]은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들이 태평한 세월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웃에 코살라[憍薩羅國]와 같은 큰 나라가 있어 침해를 받지 않을까 두려웠고, 왕권을 이을 왕자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야[摩耶] 왕비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여섯 개의 이를 가진 눈이 부시도록 흰 코끼리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이때부터 왕비에게는 태기가 있었다. 그 태몽은 아들을 낳게 될 꿈이라 하여 사람들은 훌륭한 왕자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였다. 산달이 가까워지자 마야왕비는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콜리성[拘利城]으로 길을 떠났다. 늦은 봄 화창한 날씨였다. 
왕비 일행은 카필라와 콜리의 경계에 이르렀다. 저 멀리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흰 눈을 이고 우뚝우뚝 장엄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가까이에는 평화로운 룸비니[藍毘尼園] 동산이 있었다. 동산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다투어 피었고, 뭇새들은 왕비 일행을 축복하는 듯 지저귀며 날았다. 룸비니 동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일행은 그 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무우수(無憂樹)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있었다. 왕비는 아름다운 꽃가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쳤다. 그 순간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일행은 곧 나무 아래에 휘장을 쳐 산실을 마련했다. 이때 태어난 왕자가 뒷날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 수행하여 부처가 된 후 무수한 중생을 교화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지금으로부터 이천오백여 년 전의 일이다. 
‘모든 일이 다 이루어이지라’ 는 뜻에서 왕자의 이름을 <싯다르타[悉達多]>라고 지었다. 그러나 이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왔다. 왕자를 낳은 지 이레 만에 마야 왕비는 건강이 나빠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성자를 낳은 어머니는 그 성자의 삶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꾼 셈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레밖에 안 된 어린 싯다르타 앞에 생과 사에 대한 문제가 주어진 것이다. 태자의 양육은 왕비의 동생인 마하파자파티[摩訶波闍波提]가 맡게 되었다. 이모가 태자의 새어머니로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그때 카필라의 풍습이었다. 
왕은 이름난 점성가를 불러 태자의 장래를 알아보고 싶었다. 태자의 얼굴을 보고 난 사람마다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태자는 뛰어난 위인의 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 무력을 쓰지 않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출가하여 수행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신하들은 한결같이 기뻐했다. 
어느 날 아시타[阿私陀]라는 선인(仙人)이 카필라성으로 찾아왔다. 그는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천신들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카필라의 왕궁에 태자가 태어난 것을 천안(天眼)으로 알게 된 선인은 태자의 얼굴을 보려고 왕궁을 찾아온 것이다. 덕망이 높은 아시타 선인이 찾아온 것을 기뻐한 왕은 곧 태자를 보도록 허락하였다. 
백 살도 훨씬 넘어 백발이 성성한 선인은 태자를 팔에 안고 그 얼굴을 이모저모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태자의 얼굴만을 들여다보던 아시타 선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왕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왕은 참다못해 선인에게 물었다. 
“태자를 본 사람마다 크게 기뻐하며 야단인데, 선인은 왜 말 한마디 없이 울기만 하시오? 어디 그 까닭을 속 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제서야 선인은 입을 열었다. 
“대왕님, 염려하실 일은 아닙니다. 제가 슬퍼하는 것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부처님의 출현을 못 보게 된 것이 한스러워 그럽니다. 태자는 장차 모든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도 늙었습니다. 태자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실 그때까지 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저절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 뒤에 데리고 온 어린 제자에게 당부했다. 
“네가 커서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소문을 듣거든 지체 말고 찾아가 그 분의 제자가 되어라.” 
싯다르타 태자가 전륜성왕보다 훨씬 뛰어난 상을 가졌다는 아시타 선인의 말을 듣고 왕과 신하들은 모두 기뻐했다. 그러나 왕위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리시지 않고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리라는 말에는 어쩐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코살라의 침략을 늘 두려워하던 나머지 카필라에 사는 사캬族들은 이상적인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코살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려 줄 것을 고대했었다. 그러나 이런 때 태어난 왕자가 나라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고, 출가하여 종교적인 성자가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1.1.2.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태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도 태자를 지극히 사랑하고 잘 보살펴 주었다. 마하파자파티는 그 뒤 왕자와 공주를 낳았지만 싯다르타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태자는 지나치게 총명하였고 무슨 일에고 열심이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그에게는 보통 사람으로는 미칠 수 없는 어떤 비범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왕은 이따금 태자의 얼굴에서 쓸쓸하고 그늘진 표정을 보았고 그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을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해서인가 하고 생각할 때마다 태자가 더욱 애처롭게 여겨졌다. 
태자가 열두 살 되던 해 봄, 슛도다나王은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들에 나가 <농민의 날> 행사를 참관하게 되었다. 농업국인 카필라에서는 왕이 그 해 봄에 첫 삽을 흙에 꽂음으로써 밭갈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 태자 싯다르타도 그 행사를 보기 위해 부왕을 따라 농부들이 사는 마을에까지 내려갔었다. 왕궁밖에 나가 구경해 보는 전원 풍경은 그지없이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자 그들의 처지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본 싯다르타의 어린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쟁기 끝에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그 벌레를 쪼아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같은 광경을 보게 된 어린 싯다르타는 마음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곳에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서 일행을 떠나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앉았다. 어린 태자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뒤얽혔다. 
태자의 눈에는 아직도 또렷하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하던 농부들, 흙 속에서 나와 꿈틀거리던 벌레, 그 벌레를 물고 사라진 날짐승…, 이런 일들이 하나같이 어린 태자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야만 할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비쳤다.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괴로움만 같았다. 무슨 일에고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소년 싯다르타의 성미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행사가 끝나 왕을 모시고 궁중으로 돌아가려던 신하들은 그제서야 어린 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태자를 잃어버린 왕과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저기 찾아 헤매던 끝에 큰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태자를 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거룩하고 평화스러워 왕은 반가운 중에도 차마 불러일으킬 수가 없었다. 왕은 조심스레 아들 곁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싯다르타, 이제 해도 저물었으니 그만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자.” 
태자는 그때서야 비로소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 나무 아래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그저 담담해 보일 뿐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부왕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했다.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명상에 잠긴 아들의 모습에서 문득 성자의 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도 생각됐지만 태자와 자기와는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왕은 그 동안 까맣게 잊었던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동안에 어떻게든지 싯다르타의 마음을 돌이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자는 영영 자기 곁을 떠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옛날부터 인도의 수행자들은 흰눈을 머리에 이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히말라야를 멀리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기기를 즐겨 했다.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우거진 숲속과 나무 그늘 아래서 깊은 명상에 잠기거나 혹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숲속의 수행자와 사상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숭배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 나가다가도 틈만 있으면 숲속을 찾아가 성자들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다가 아들이 나이가 차서 집안일을 돌보게 되면 그들은 가정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들은 여생을 숲속의 수행자나 성자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뜻있고 슬기로운 생활이라고 여겼다. 인도의 종교와 사상은 이처럼 히말라야가 바라보이는 대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1.3.네 개의 문
싯다르타는 숲속에서 명상에 잠겼다가 돌아온 뒤부터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았다. 싯다르타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슛도다나王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왕은 그를 즐겁게 하여 홀로 사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썼다. 대신의 자녀들 중 같은 또래를 곁에 머물게 하여 그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싯다르타는 홀로 있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궁전 속에만 있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궁전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뜻을 부왕에게 말씀드리자 왕은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왕은 곧 화려한 수레를 마련하게 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분부하여 태자가 이르는 곳마다 값진 향을 뿌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태자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도록 일렀다. 
싯다르타를 태운 수레가 동쪽 성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머리는 마른 풀처럼 빛이 바래고 몸은 그가 짚은 지팡이처럼 바짝 마른 노인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화려한 궁중에서만 자란 태자는 일찍이 그와 같이 참혹한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시종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은 저토록 비참한 모양을 하고 있느냐?” 
시종은 대답했다.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점점 나이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숨이 차 헐떡거리게 되고, 눈이 어두워져 앞을 잘 못 보게 되며, 이가 빠져 굳은 것은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초라하게 되고 맙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늘이 스며들었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저렇게 된다?’ 침통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은 저와 같은 늙은이가 되겠구나!’ 
시종은 자신도 모르게 태자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태자이건 시종이건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저런 노인의 모양을 면할 수 없습니다.” 
시종의 말을 듣고 난 태자는 한동안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힘없는 소리로, 
“수레를 왕궁으로 돌려라!”
하고 일렀다. 모처럼의 소풍 길에서 되돌아선 태자의 마음에는 또 한 겹의 어둠이 덮이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의 번민하는 모습을 본 부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대로 싯다르타가 혹시 출가를 하게 되지나 않을까하고 걱정을 했다. 그리하여 태자의 생활이 전보다 한층 더 호화롭고 기쁨에 차도록 마음을 썼다. 
그 뒤 어느 날 태자는 또 답답한 궁중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려 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번에는 길가에 궂은 것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도록 단단히 당부를 해 놓았다. 수레는 남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 얼마쯤 가다 보니 길가에 누더기를 뒤집어 쓴 채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고 팔다리는 뼈만 앙상했다. 싯다르타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 이는 웬 사람인가?” 
시종은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지금 병에 걸려 앓고 있습니다. 이 육신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 전혀 앓지 않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앓는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아픔을 못 이겨 신음하고 있는 중입니다.” 
태자는 그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왜 병에 걸려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 늙음의 고통이나 질병의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그날도 태자는 도중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날씨는 맑게 개어 화창했지만 태자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병들어 빛이 바래 보였다. 
또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서쪽 성문을 벗어나 들로 나갔다. 수레를 끌고 달리는 말처럼 오늘만은 어쩐지 그의 마음도 가벼웠다. 태자의 수레가 들길을 지나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죽은 시체를 앞세우고 슬피 울며 지나가는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깜짝 놀란 싯다르타는 시종에게 물었다. 
“저건 무엇이냐?” 
시체인 줄 뻔히 알고 있는 시종은 태자의 반응이 두려워 입을 열지 못했다. 태자는 성급하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대답을 주저하느냐?” 
시종은 하는 수 없이 말문을 열었다. 
“죽은 사람이올시다. 죽음이란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가져다주는 가장 슬픈 일입니다.”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본 것처럼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 자기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해가 기운 뒤에야 수레가 돌아오는 걸 보고 부왕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레가 가까이 다다랐을 때 싯다르타의 얼굴은 비참하게 그늘져 있었다. 이날부터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잦게 되었다. 
며칠 뒤 싯다르타는 북쪽 문을 거쳐 밖으로 나갔다. 북쪽 성문을 나서자 우람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텁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얼굴에는 거룩한 기품이 감돌며 눈매가 빛났다. 수레 가까이 온 그 사람은 태자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의젓했으므로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사람은 낭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출가 사문(出家沙門)이오.” 
출가 사문이란 세상의 모든 일을 버리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 수행자를 말한다. 
싯다르타는 다시 물었다. 
“출가한 사문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세상에서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자신과 이웃을 통해 맛보았소.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았소. 그래서 부모와 형제를 이별하고 집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도를 했소. 내가 가는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평안의 길이오, 나는 이제 그 길에 이르러 영원한 평안을 얻었소.” 
이 말을 남기고 사문은 태자의 곁을 떠나 휘적휘적 가버렸다. 사문의 말을 듣고 난 싯다르타의 가슴에는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사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태자의 마음에 무엇인가 굳은 결심이 생겼다. 

1.1.4.학문에 대한 회의
슛도다나王은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를 않았다. 태자에게는 어떤 괴로움이나 불편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부처님은 뒷날 태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런 나날을 보냈었다. 아버지의 왕궁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나는 카시[迦尸] 지방에서 나는 향밖에는 쓰지 않았다. 내가 입던 옷감도 역시 카시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땐 언제나 양산을 들어 주는 시종이 따랐다. 게다가 나는 겨울과 여름과 장마철에 따라 그때그때 편리하도록 꾸며진 궁전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장마철에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태자 시절이 얼마나 호사스러웠던가를 넉넉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한번 깊이 품은 인생에 대한 회의는 그런 호사와 즐거움으로도 어떻게 메꾸어질 수 없었다. 쾌락이 지나간 다음에 스며드는 허전함을 맛볼 때마다 태자의 회의는 더욱 깊어갈 뿐이었다. 
출가한 사문(沙門)을 만난 뒤부터 태자는 더욱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왕은 태자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이제부터는 태자에게 심오한 학문을 가르치기로 했다. 슛도다나王은 나라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비슈바미트라라는 학자를 모셔다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첫날, 그 스승은 태자의 총명을 보고 놀랐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왕자들을 가르쳐 보았지만 싯다르타처럼 뛰어난 천재는 일찍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자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고전인 베다[吠陀] 성전을 줄줄 욀 만큼 기억력도 비상했다. 스승 비슈바미트라가 알고 있는 깊은 학문도 오래지 않아 거의 다 배우게 됐다. 
싯다르타의 학문은 나날이 깊어갔다. 슛도다나王은 스승을 불러 나라의 임금으로서 필요한 제왕(帝王)의 길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크샨티데바라는 군사학의 대가를 불러 무예와 병법도 가르쳤다. 
태자는 다른 학문에 못지않게 무예와 병법에도 뛰어난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는 처음 배우는 지식이라 모두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새것을 알고 싶어 하는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스승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몹시 기뻐했다. 
이 세상에서 견줄 데 없이 총명한 태자가 다른 길을 걸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뒤를 이어 카필라를 잘 다스려 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부왕의 안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글을 배워 지식이 넓어져 감에 따라 태자는 회의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져 가는 것이었다. 깊은 학문을 쌓은 태자는 학문이란 한낱 지식을 넓혀줄 뿐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어째서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가?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 것일까? 이런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어떠한 학문에서도 해답을 주지 못했다. 
태자는 이와 같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학문을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디엔가 자신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만한 새로운 학문이 없음을 알았다. 스승도 역시 그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고 떠나가 버렸다. 결국 태자는 또다시 명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불안해진 슛도다다왕은 어떻게 하면 태자의 마음을 궁중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을 시키는 일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태자의 아내가 되어 곁에 있으면 명상에 잠길 겨를도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는 생각도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1.1.5.결혼
싯다르타가 열아홉 살이 되자 부왕은 서둘러 태자비를 물색하기로 했다. 태자는 결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부왕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한편 부왕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부왕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가문 좋고 아름답고 슬기로운 규수를 물색한 끝에 같은 사캬族 대신의 딸 야쇼다라를 태자비로 정했지만, 싯다르타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전혀 남의 일 같아서 좀처럼 실감이 들지 않았다. 
태자는 결혼한 다음에도 여전히 사색에 잠기건 침울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슬기로운 야쇼다라는 보다 상냥하게 태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행복해야만 할 싯다르타는 날이 갈수록 무엇엔가 마음을 잃은 듯 침울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잦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그의 둘레에 몰려들어 춤과 노래로 위로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 같이 자리 잡은 생각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 역시 쾌락의 재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쾌락 뒤의 공허를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행복하다면, 그도 역시 마음 놓고 쾌락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덧없음을 몸소 겪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싯다르타의 눈을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로 돌리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젊고 아름다운 사람을 볼 때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그가 늙었을 때의 추해진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인생의 근원적인 병을 앓고 있었다. 아내인 야쇼다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뒷날 부처님이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앓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어서 피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앓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앓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을 보면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그때 젊음 속에서도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병들어 앓다가 죽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괴로움을 짊어지고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은 사색 속에서 역력히 보았던 것이다. 
태자의 기억 속에는 또다시 전에 성문 밖에서 만났던 사문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그 사문을 다시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무렵 싯다르타는 야쇼다라가 곁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주 명상에 잠겼었다. 결혼 생활도 태자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아홉이 되었다. 야쇼다라와 결혼한 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 때문에 출가가 십 년이나 늦어졌구나. 이러다가는 몇 해가 더 늦어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자꾸 늙으며 죽음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데….’ 싯다르타의 마음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살다 죽는다면 아무런 보람도 없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의 앞에는 하나의 길이 훤히 열렸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혼자서 외쳤다. ‘그렇다! 나도 출가 사문의 길을 찾아 나서자.’ 마침내 싯다르타의 마음에 출가할 결심이 서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가 말린다 해도 자기는 출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지금까지 괴로웠던 번민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이미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는 이제 남은 것은 시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자기가 떠나버린 뒤의 일들을 생각하니 한 가닥 불안이 잇따랐다. ‘부왕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다행히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서 태어난 동생이 있으니 왕위를 계승하는 문제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내가 출가해 버린 걸 아신 부왕은 얼마나 애통해 할 것인가. 그리고 아내 야쇼다라는 또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싯다르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후일 부처님은 이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젊은 청년으로서 머리는 검고 청춘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앞에는 영화로운 임금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진리를 찾아 부모와 아내가 눈물로써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인생의 봄을 등졌던 것이다. 나는 왕궁을 빠져나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후 출가 사문의 길을 떠났었다.’ 
그때 싯다르타의 심경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한편 슛도다나王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이 다만 예언으로 끝나 주기를 바랐다. 자기의 왕위를 이어 받아 훌륭한 임금이 되어 주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태자의 이름을,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싯다르타라고 지은 것도 그러한 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할 것을 결심한 태자는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부왕 앞에 나타났다. 
“저는 아무래도 사문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저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는 순간 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아들의 뜻을 돌려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태자야,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줄 터이니 제발 출가할 뜻만은 버려다오.” 
“그러시다면 저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오, 그 소원이란 대체 무엇이냐?” 
“이 소원만 이루어 주신다면 저는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슛도다나王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감돌았다. 
“어서 그 소원을 말해 보아라.” 
왕의 표정과는 달리 싯다르타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이 말에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도 진지하고 슬픈 태자의 표정을 보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모든 소원을 다 들어 주겠다던 왕도 그러한 태자의 소원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왕인 자신도 늙음과 죽음 앞에서만은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굳게 되었고 왕에게도 출가의 결심을 알린 뒤라 싯다르타는 이제 왕궁을 떠날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태자는 아내 야쇼다라와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게는 출가의 결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알려 줌으로써 연약한 여인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무렵 궁전 안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야쇼다라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슛도다나王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곧 분부를 내려 큰 잔치를 베풀고 왕손의 탄생을 축하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작 이 경사를 기뻐해야 할 싯다르타는 이날따라 그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그는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숲속에 들어가 온종일 혼자 명상에 잠기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궁전 앞에 이르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보자 비로소 궁중에 경사가 일어난 줄을 알았다. 자기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싯다르타는 ‘오, 라훌라[羅睺羅]!’ 하고 탄식했다. 라훌라는 장애(障碍)라는 뜻이다. 자기의 갈 길을 막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를 얽어 맬 인정이 또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얼마나 괴로웠기에 자기 아들의 탄생을 보고 라훌라라고 했을까. 이때 태자가 탄식한 말은 그대로 어린아이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라훌라라고 탄식을 했지만 한편 이제야말로 기회가 왔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때 인도의 풍습으로는 대를 이을 후계자가 있어야 출가가 떳떳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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