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초기경전 ① 지혜와 자비의 말씀
2.1.1.네 가지 진리
부처님께서 파탈리풋타[巴連弗城, 華氏城]로 가시던 도중 라자가하[王舍城]에서 멀지 않은 왕원(王園)에서 쉬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 이는 반드시 네 가지 진리를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해 오랫동안 바른 길에서 벗어나 생사(生死)에 매여 헤매느라고 쉴 새가 없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진리인가. 첫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이니 이것을 고(苦)라 한다. 둘째는 괴로움은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집(集)이라 한다. 셋째는 괴로움과 집착이 없어져 다한 것이니 이것을 멸(滅)이라 한다. 넷째는 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는 길이니 이것을 도(道)라 한다.
괴로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므로 오랫동안 먼 길을 헤매어 생사가 쉬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임을 알 것이니, 괴로움이란 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번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구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오온(五蘊) 사람을 형성하고 있는 물질과 정신작용. 물질[色]·느낌[受]·생각[想]·의지작용[行]·의식[識]
으로 된 이 몸이 모두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인 줄 알고 애욕의 집착을 끊으면 눈을 얻었다고 하리니, 이 생을 마치고는 뒤에 다시 괴로움이 없게 된다. 집착 때문이라 함은 애욕을 따라 생긴다는 것이니, 괴로움과 집착을 모두 없애고 그 길을 따라 진리를 행하여 눈을 얻으면 이 생을 마친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미 진리를 보아 도의 눈을 얻은 이에게는 다시 나고 죽음이 없다.
그리고 도를 얻으려면 여덟 가지 행을 닦아야 한다. 첫째는 마음이 다하여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둘째는 애욕을 버려 갈등을 없애며, 셋째는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 같은 것을 저지르지 않고, 넷째는 속이고 아첨하며 나쁜 말로 꾸짖는 일을 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질투하고 욕심내어 남들이 믿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여섯째는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공(空)이고 무아(無我)임을 생각하며, 일곱째는 몸의 냄새나고 더럽고 깨끗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여덟째는 몸에 탐착하지 않고 마침내는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것이다.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이 다 이 네 가지 진리를 알았고, 앞으로 올 부처님들도 이 진리를 볼 것이다. 세속적인 은혜와 사랑을 탐하고 바라거나 혹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명예와 오래 살기를 원하는 이는 끝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얻지 못한다.
길은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마음이 깨끗해야 길을 얻을 수 있다. 그 마음이 청정하여 다섯 가지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천상에 태어난다. 만약 지옥·아귀·축생의 길을 끊으려거든 일심으로 여래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어 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여래가 중생을 나고 죽는 데서 해탈케 하려고 바른 길을 열어 보였으니,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잘 생각해 보아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나서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파탈리풋타[華氏城]에 이르러 성 밖 어떤 나무 아래 머무셨다. 그 곳 바라문과 거사(居士) 불교에 귀의한 남자신도.
들은 부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오셨다는 말을 듣고 모두 부처님 계신 데로 모여들었다.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앉을 방석을 가지고 혹은 물병과 등잔을 들고 와서 예배하였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였다.
“사람이 세속에서 함부로 탐욕을 즐기면 다섯 가지 소모되는 현상이 있다. 스스로 방종하므로 재산이 줄어들고, 몸을 위태롭게 하고 도를 잃게 되며,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고 죽을 때에 뉘우치게 되며, 추한 소문과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고, 스스로 방종하므로 죽은 뒤에는 삼악도(三惡道) 지옥·아귀·축생이 사는 세 갈래 세계.
에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을 조복(調伏)받아 방종하지 않으면 다섯 가지 덕을 갖추게 된다. 검소하고 절약하므로 재산이 날로 늘어나고, 도의 뜻에 가깝게 되며, 사람마다 우러러 공경하고 죽을 때도 뉘우침이 없으며, 덕망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검소하고 절약하므로 죽은 뒤 천상이나 복된 곳에 태어난다. 사람이 방종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좋은 일이 있으니 잘 생각해서 행하여라.”
부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長阿含 般尼洹經』
2.1.2.계(戒)·정(定)·혜(慧)를 닦아라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와 함께 콜리성[拘利城] 북쪽의 한 나무 아래 머무르시며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禪定)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여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 계·정·혜가 있으면 덕이 크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라. 또 세 가지 허물을 떠나면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이 몸으로 삼매(三昧)를 얻고자 하면 부지런히 깨닫기를 구해 이 생이 다하도록 청정한 도에 들어가라. 마땅히 실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 뒤에 다시 윤회(輪廻)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난다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요긴함을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계를 지니고 선정을 닦아 지혜를 깨달으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가 드날리게 될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 계행(戒行)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禪定)이 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가 밝아지리니, 이를테면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 마음이 있으면 도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고, 일심으로 부지런히 닦으면 이 생을 마친 후에는 청정한 데에 들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면 스스로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나지 않은 줄을 알리라.
만약 계·정·혜의 행을 갖추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문득 천상, 인간·지옥·아귀·축생들의 세상을 보게 되고, 온갖 중생들의 생각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돌자갈의 모양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밝으므로 보고자 하는 것이 다 나타난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치 물이 흐리면 그 속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을 깨끗이 지니지 못하면 세상에 나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보고 말하는 것은 제자들이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제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생각을 잡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도를 스스로 얻을 것이다. 여래는 청정함을 가장 즐거워한다.”
『長阿含 般尼洹經』
2.1.3.고행과 바른 수행
부처님께서 녹야원(鹿野苑)에 계실 때였다. 발가숭이 이교도[裸形外道] 카샤파가 부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온갖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카샤파여,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오. 또 내 말을 바르게 전한 것도 아니오. 나는 천안(天眼)으로써 고행자가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봅니다. 이와 같이 고행자 중에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이도 있는데, 어떻게 통틀어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할 수 있겠소.”
카샤파는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알몸이라든가 공양을 받지 않는 일, 또는 쇠똥을 먹고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가리며, 항상 서 있거나 하룻밤에 세 번씩 목욕을 하는 것 같은 고행은 사문(沙門)과 바라문에게도 알맞은 일이라고 합니다.”
“카샤파, 아무리 그와 같은 고행을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계행과 선정과 지혜가 없으면 그것은 참된 사문이나 바라문과는 멉니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어 현재에 깨달아 있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문이요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오.”
“부처님, 사문이나 바라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어려움이 곧 고행을 닦는다는 뜻은 아니오. 고행쯤이야 물 항아리를 나르는 하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이 현재에 깨닫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교도 카샤파는 다시 물었다.
“부처님, 그러면 그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란 어떤 것입니까?”
“계행의 성취란 이런 것이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스스로 깨닫고 남을 가르칠 때에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듣고 신심(信心)을 내어 출가합니다. 그래서 계율에 따라 행동을 삼가고 바른 행동으로 즐거움을 삼으며, 조그마한 허물도 두려워하고 감관을 다스려 바른 지혜를 갖춥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여자를 범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거나 거친 말을 쓰지 않으며 바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오. 또 선정의 성취란, 눈으로 사물을 볼 때라도 감관을 잘 지켜 그 모양에 팔리지 않고 가나 오나 앉으나 누울 때에도 항상 마음의 눈을 밝히어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에 머뭅니다. 새가 날개밖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듯이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밥으로 만족하고, 나무 밑이나 동굴 속, 숲이나 묘지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고요히 앉소.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게으름과 의심을 버리고, 건강하고 자유롭고 안온한 사람이 되어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오. 그리고 지혜의 성취란, 선정에 의해 고요하고 맑고 밝아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이 세상의 덧없음과 ‘나’라고 내세울 것 없음을 알며,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얻고 네 가지 진리를 알아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했다는 분명한 자각을 가지는 것이오.
카샤파여, 이보다 더 뛰어난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는 없소. 계와 고행과 지혜와 해탈을 칭송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지만, 여래처럼 맑고 높은 계와 고행과 지혜와 해탈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것이오. 그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자가 바로 여래입니다.
나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사문 고타마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자후를 하지만 그것은 신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한다 할지라도 만족시키거나 믿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념을 가지고 사자후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만족시키며 믿게 합니다. 카샤파여, 일찍이 라자가하의 영축산에서 당신과 같은 고행자 니그로다는 욕망을 없애는 최고 형식에 대해서 내게 물어 대답을 듣고 무척 기뻐한 일이 있소.”
이 가르침을 듣고 이교도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南傳 長部經典 8』
2.1.4.신통을 금하다
부처님께서 나란다성[那爛陀城] 바바리암라 동산에 계실 때였다. 하루는 견고(堅固)라고 하는 남신도 한 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 이토록 번화하고 잘 살고 있는 나란다[那爛陀] 사람들이 부처님을 공경하고 믿고 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로 하여금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부처님의 법을 믿고 공경할 것입니다.”
“나는 비구들에게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이라고 가르친 일이 없소. 다만 한적한 곳에 앉아 도를 생각하고, 공덕이 있거든 안으로 감추어 두고 허물이 있으면 몸소 드러내 놓으라고 가르칠 뿐이오.”
그러나 견고는 거듭거듭 부처님께 간청했다. 부처님은 그의 청을 거절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신통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니 말해 보겠소. 신족통(神足通)과 타심통(他心通)과 교계통(敎誡通)이 그것이오. 신족통이란, 한 몸으로 여러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여러 몸을 합쳐 한 몸을 만들기도 하며 또는 나타내고 숨기기도 하오. 산과 장벽을 지나되 허공과 같이 걸리지 않고, 땅 속에 출몰하되 물속에서처럼 자유로우며, 물 위로 다니되 땅 위와 같고 허공에 앉되 날개 있는 새와 같소. 큰 신통력과 위력으로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범천(梵天)에 이르기도 하오.
어떤 신도가 비구의 이러한 신통을 보고 아직 믿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이것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저 비구는 간다리라는 주문을 외어 그러한 신통을 얻은 것이다’라고 할 것이오. 이것은 오히려 불법(佛法)을 비방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소? 그러므로 나는 신통 변화 같은 것을 부질없게 여기어 비구들에게 금하도록 한 것이오.
그리고 타심통이란,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너의 뜻은 그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오. 이것을 보고 믿음을 얻은 이가 아직 믿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저 비구는 마니가라는 주문을 외어 그런 신통을 얻은 것이다’라고 할 것이오. 이것은 오히려 불법을 비방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소? 그러므로 나는 이런 허물을 보고 신통 변화 같은 것을 부질없게 여기어 비구들에게 금하도록 한 것이오. 교계통이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는 생각하지 마라. 이런 일은 하고 저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내버리고 저것을 취해라.’ 이와 같이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오. 그들은 모두 어둠을 떠나 밝음을 찾고 죄악을 버리고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오. 이렇게 출가하여 정진 수행하므로 계행이 갖추어지고 선정이 갖추어지며 지혜가 갖추어져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오. 이 세 가지 신통은 여래가 스스로 체득하여 가르치는 것이오.”
견고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長阿含 堅固經』
2.1.5.적을 막는 길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영취산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들과 계실 때였다.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밧지국과 서로 좋지 않은 사이였다. 어느 날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밧지국은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많으며 땅이 기름지다. 해마다 풍년이 들고 진기한 것이 많이 나는 것만을 믿고 나에게 굴복하지 않으니 쳐들어가 정복하고야 말겠다.”
왕은 바라문 출신인 어진 신하 우사(雨舍)에게 자기 대신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아 오도록 분부했다.
우사는 오백 대의 수레에 기마 이천 마리와 부하 이천 명을 데리고 영축산으로 향했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공손히 꿇어앉아 여쭈었다.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거처가 편안하고 기력이 좋으신지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고맙소, 왕과 온 백성들과 당신도 평안하십니까?”
우사는 찾아온 뜻을 말했다.
“임금님은 밧지국과 뜻이 맞지 않아 여러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그 나라를 정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저를 보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밧지국에 머무르면서 본 일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근엄합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법을 말한 적이 있소. 만일 지금도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면 날로 더욱 흥할지언정 쇠약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사는 합장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쭈었다.
“그 일곱 가지 법을 들려주십시오. 어떻게 실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너는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가지고 바른 일을 서로 의논하여 몸소 지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른과 젊은이들은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흥할 것이다.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또 밧지국의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공경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갈수록 흥성하고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밧지국 사람들이 법을 받들어 삼가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또 밧지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순종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조상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또 그 나라의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며 웃고 농담할 때라도 그 말이 음란하지 않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 나라 사람들이 수행자를 공경하고 계행이 청정한 이를 존경하고 보호하며 공양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과 젊은이들은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더 흥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이 일곱 가지 법을 실행하면 어떤 적이라도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우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밧지국 사람들이 이 일곱 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지닐지라도 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일곱 가지를 다 지닌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나라 일이 많으므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자리를 떠났다.
『長阿含 遊行經』
2.1.6.마음의 주인이 되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견고한 것도 없으며 결국은 모두 흩어지고 만다. 망상 분별로 하는 일은 속임이 될 뿐이다. 세속의 인연으로 만나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느냐. 천지와 저 큰 수미산(須彌山)도 결국은 무너질 것인데 이까짓 사람 몸 따위이겠느냐.
나는 석 달 후에 열반에 들 것이니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아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이 다 법으로 부처를 이룬 것이다. 이미 교법(敎法)이 갖추어져 있으니 너희들도 부지런히 배워 실행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해탈을 얻도록 하여라. 분별하는 작용이 끝나면 죽지도 않고 다시 나지도 않을 것이며 다른 몸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온(五蘊)의 작용을 끊으면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더우며 근심·슬픔·괴로움·번민 같은 것도 없어진다. 사람이 바른 마음을 쓸 줄 알면 천신들도 기뻐할 것이다 마음을 조복 받아 부드럽고 순하고 스스로 텅 비어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마음 가는 대로 한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도를 얻는 것도 또한 마음이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귀신이나 축생 혹은 지옥도 만들므로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따라 온갖 법이 일어난다.
마음이 바탕이 되어 마음의 뜻하는 것이 행(行)이 되고 행의 하는 일이 명(命)이 되니, 어질고 어리석음이 행에 있고 오래 살고 일찍 죽음이 명에 달린 것이다. 대개 의지와 행과 명, 이 세 가지가 서로 관계되어 좋고 나쁜 짓을 하므로 스스로 그 과보를 받는다. 아비가 착하지 못한 짓을 했더라도 자식이 대신 받지 못하고, 또 자식이 옳지 못한 일을 했을지라도 아비가 대신 받지 못한다. 착한 일은 스스로 복을 받고 나쁜 짓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여래가 천상천하에서 높이 공경 받는 것도 그 뜻이 숭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행동으로 옮겨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세에서 휴식과 안락을 얻을 것이니, 잘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조용히 생각하여라. 그러면 곧 나의 깨끗한 법이 오래 머무를 것이며, 세상의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여 편안케 하리라.”
『長阿含 般尼洹經』
2.1.7.법이 쇠퇴하지 않으려면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서 행하여라. 비구에게 일곱 가지 가르침이 있으면 법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곱 가지 가르침이란, 첫째는 자주 모여 경전의 뜻을 강론하며 외는 데 게을리 하지 않음이다. 둘째는 화합하고 순종하며 서로 바르게 가르치며 돕는 일이다. 셋째는 남의 것을 가지거나 탐내지 않고 오로지 한적한 산천을 좋아하는 일이다. 넷째는 음욕을 끊고 어른과 어린이가 예의로써 서로 아끼고 섬기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랑과 효도로 스승을 섬기며 가르침을 듣고 아는 것이다. 여섯째는 법을 받들어 교법과 계율을 공경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일이다. 일곱째는 도를 만들어 행하고 성자들을 공양하며 어린이를 타일러 알게 하고, 와서 배우려는 이를 맞아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의약을 베푸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가르침 속에서 법은 오래 머물게 된다.
또 비구에게 일곱 가지 지키는 것이 있으면 법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 실행하여라. 첫째는 청정함을 지켜 덧없는 유위법(有爲法) 인연에 의하여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생멸이 있는 현상.
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는 욕심 없음을 지켜 탐내지 않는다. 셋째는 잘 참아 다투거나 소송하는 일이 없다. 넷째는 고요한 행을 지켜 번거로운 여러 무리들의 모임에 섞이지 않는다. 다섯째는 법의 뜻을 지켜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여섯째는 한 마음을 지켜 고요히 앉아 생각을 한 곳에 모은다. 일곱째는 검소하고 절약하며 옷과 밥이 거칠며 풀자리로 침상을 삼는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법을 지킴으로써 법이 오래 가게 된다.
또 비구에게 일곱 가지 공경함이 있으면 법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서 실행하여라. 첫째는 부처님을 공경함이니 착한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 섬기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다. 둘째는 법을 공경함이니 뜻을 도에 두고 다른 곳에 의지하지 않음이다. 셋째는 승단을 공경함이니 의지해 가르침을 받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다. 넷째는 배움을 공경함이니 계(戒) 지키는 이를 섬기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다. 여섯째는 깨끗하여 욕심 없는 이를 공경하여 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다. 일곱째는 삼매를 공경함이니, 좌선하여 선정 닦는 이를 섬기고 다른 데 의지하지 않음이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법을 공경하면 법이 오래가게 된다.
또 비구에게 일곱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법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서 행하여라. 첫째는 경전의 뜻 생각하기를 부모 생각하듯 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그 은혜가 한 세상에 그치지만, 법은 무수한 세상에 걸쳐 살면서 생사를 건지는 것이다. 둘째는 인생살이가 고통 아닌 것이 없는 줄을 생각함이니, 살아서는 처자 권속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도 한 번 죽어 뿔뿔이 흩어지면 흩어진 줄도 모른다. 이와 같이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여 마땅히 도 닦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는 정진을 생각함이니 몸과 말과 생각을 단정히 하면 도를 이루기가 어렵지 않다. 넷째는 겸허하기를 생각함이니 교만하고 잘난 체하지 말며, 현명한 이를 섬기고 배우지 못한 이를 가엾이 여겨 가르쳐야 한다. 다섯째는 마음 조복 받기를 생각함이니 감정을 마음대로 놀아나지 못하게 하고, 음란하고 성내거나 어리석은 태도를 억제하여 사특한 것이 없게 하라. 여섯째는 이 육신이란 냄새나고 더럽고 피를 담은 것이므로 탐낼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라. 일곱째는 스스로 관찰하되 사람의 몸은 거름과 같아서 있은 이래 죽지 않는 이는 없다. 세상이란 꿈과 같은데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이 변하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알고 보면 허망한 꼭두각시 놀음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 일곱 가지 법대로 하면 법이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땅 위를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이 쉬지 않으면 마침내 바다로 들어가듯이, 비구들도 도 닦기를 그치지 않으면 구경의 해탈을 얻게 되리라. 여래의 교법을 서로 이어받아서 그 말씀을 외어 지니고 때때로 일깨우며 사부대중(四部大衆) 출가 수행승인 비구·비구니와 일반 남녀 신도.
들이 서로 가르치면 이러한 가르침이 오래 이어질 것이다.”
『長阿含 般尼洹經』
2.1.8.악인은 침묵으로 대하라
아난다는 부처님의 얼굴빛이 오늘처럼 빛나고 화평스러운 것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금빛처럼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는 꿇어앉아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을 모신 지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얼굴빛이 빛나고 화평하신 것을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아난다여, 그것은 두 가지 인연으로 그러하다. 두 가지 인연이란 내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열반에 들 때이다. 내가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려고 해서 안색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난다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 그렇게 빨리 열반에 드시렵니까? 세상에 빛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춘다[純陀] 부처님은 금세공(金細工) 춘다가 올린 공양을 받고 나서 병환이 도져 위독해졌다. 이것이 최후의 공양이었다.
에게 가서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여라. 여래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어라. 너도 잘 알아 두어라. 반드시 여래를 공경하고 교법을 배우고 섬겨야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찬다카[車匿] 부처님 태자 시절의 시종으로서 출가하여 말썽을 부렸다.
비구는 성미가 급하고 괴팍하여 욕지거리를 잘하고 말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열반하고 난 후에는 찬다카를 위해 대중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를 상대하여 말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자리를 깔게 하셨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무릎을 굽혀 다리를 포개고 누워 성인의 바른 지혜를 생각하셨다.
『長阿含 般尼洹經』
2.1.9.수행자와 여인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한 세상 여인들은 출가 사문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서로 마주 보지 말아라.”
“만약 서로 마주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불어 말하지 말아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라. 아난다여, 너는 여래가 열반한 뒤에 보호할 사람이 없어 혹시 닦아 오던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을 하지 말아라. 내가 지금까지 말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곧 너를 보호하고 또한 네가 의지해야 할 곳이다. 오늘부터는 비구들에게 사소한 계율은 버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여 마땅히 예절을 따르라고 일러라. 이것이 출가한 사람들이 공경하고 순종할 법이다.”
『長阿含 遊行經』
2.1.10.사성(四姓)에서 뛰어난 사람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녹자모 강당(鹿子母講堂)에 계실 때였다. 바라문 출신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한 바셋타와 바르드바자에게 부처님은 물으셨다.
“바라문 중에서도 뛰어난 너희들이 집을 버리고 출가 사문의 생활을 하니 바라문들이 혹시 너희를 보고 비난하지 않더냐?”
바셋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바라문들은 남을 멸시하는 버릇으로 저희를 비난하여 욕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로 비난하고 욕을 하더냐?”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중에 바라문만이 가장 높은 종족이고 그 밖에는 다 하잘것없는 낮은 종족이다. 바라문은 살빛이 희고 다른 종족은 살빛이 검다. 바라문만이 오직 순수한 범천(梵天)의 혈통을 받은 종족이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입에서 나왔고 범천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고귀한 계급을 등지고 미천한 계급의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고 있으니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머리 깎은 사문 가운데는 범천의 발에서 나온 천한 자들도 있지 않느냐.’ 이러한 말로 저희를 비난하고 욕합니다.”
“바셋타여,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바라문도 시집가고 장가가며 여인은 임신해서 아이를 낳고 있지 않더냐. 그들의 출생도 다른 사람과 꼭 같으면서 어떻게 바라문만이 최상의 종족이라고 범천의 입에서 나왔으며 범천의 상속자라고 남을 욕하고 업신여긴단 말이냐. 세상에는 왕족과 바라문과 평민과 노예 등 네 가지 계급이 있다. 그러나 왕족이라고 해서, 남의 생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하거나 음란한 짓을 하고 거짓말과 이간질 악담을 하며 탐욕과 성냄과 그릇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도 또한 죄를 범하게 되며 그 갚음을 받게 된다. 바라문이나 평민 노예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 왕족이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약탈과 음행과 거짓말과 이간질·악담·탐욕·성냄 등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착한 일이며 착한 갚음을 받게 된다. 이것은 바라문이나 평민이나 노예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바라문만이 최상의 종족이요 나머지는 미천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네 가지 종족이나 계급은 그 사람의 혈통이나 신분으로서는 차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든지 번뇌가 없어지고 청정한 계행이 성취되어 생사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지혜를 얻어 해탈의 도를 이루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사성(四姓)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태생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가계가 다르더라도 너희가 출가하여 집을 버린 수행자가 되었을 때 저 바라문들이 ‘너희는 무엇이냐?’고 묻거든 ‘우리는 사캬族의 자손이다. 사캬무니의 진정한 아들이다. 우리는 그의 입에서 나왔으며 법에서 났으며 법의 상속자이다’라고 대답하여라. 너희는 여래를 의지하여 새로 얻어 성취된 청정한 계행의 몸이요, 선정의 몸이요, 지혜의 몸이요, 해탈의 몸이요, 해탈지견의 몸이기 때문이다.”
『長阿含 小綠經』
2.1.11.사문의 과보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의 신의(神醫)인 지바타 소유의 암라[菴摩羅樹] 동산에 계실 때였다. 마가다의 아자타삿투왕은 사월 보름날 밤에 재계(齋戒)하고 궁전 누각에서 밝게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곁에 있는 신하들을 돌아보며, 이 밤에 덕이 높은 사문이나 바라문을 모시고 설법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 지바카는 마침 부처님이 천이백오십 명의 제자들과 함께 암라 동산에 와 계시니 부처님을 모시고 법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왕은 지바카[耆婆]의 말을 듣고 곧 암라 동산으로 갔다. 왕은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드린 후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기술과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보수로써 부모처자를 부양하고 자기도 안락을 누립니다. 그런데 출가 수행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현세에서 어떤 과보를 받게 됩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기 왕을 섬기는 한 사람의 종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왕을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할 것이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자며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말씨도 공손히 하여,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항상 애를 쓸 것이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돌이켜 출가를 합니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몸과 말과 생각을 조심하고 변변치 않은 음식과 의복에 만족하며 세속을 떠나 고요한 숲에서 살게 될 것이오. 이때 어떤 신하가 숲에서 수행하고 있는 예전의 종을 보았다고 왕께 전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에게 예전처럼 돌아와 시중을 들라고 하겠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절하고 그를 맞아 가사와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며, 병이 나면 약과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그를 보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곧 눈앞에 보이는 사문의 과보가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사문의 과보입니다.”
『南傳 長部 沙門果經』
2.1.12.청정한 계행의 과보
아자타삿투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눈앞의 과보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어떤 귀족의 가장이나 자제나 혹은 천민의 자제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내어 장애 많은 세속 생활을 떠나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는 청정한 계행을 닦고 정진하여 조그만 허물도 두려워하고 깨끗한 몸과 말과 생각을 지니며, 모든 감관의 문을 잘 보호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두루 갖추게 될 것이오.
그러면 어떤 것이 계행을 갖춘 것인가. 살생을 하지 않고 모든 생물을 가엾이 여기며, 주지 않는 물건은 갖지 않고 남의 것을 가지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떳떳하지 못한 음행을 하지 않고 밝고 깨끗한 행동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말만 하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화합하고 친밀한 말을 하며, 거친 말을 하지 않고 누구나 들으면 기뻐하는 말을 하고 부질없는 말을 하지 않고 도리와 교법에 맞는 말을 합니다. 하루에 한 번 먹고 연극이나 노래, 춤, 오락 등의 유흥장에 가지 않으며, 몸을 꽃다발이나 향수로 치장하지 않고 높고 큰 침상이나 의자를 사용하지 않소. 금·은 같은 귀금속과 곡식을 저장해 놓는 일도 없고 부인이나 소녀 또는 남녀의 노예를 받아 부리는 일이 없으며, 코끼리·말·소·산양 등의 가축이나 토지 전답을 받는 일도 없소. 공사(公私)간의 심부름이나 중매 혹은 팔고 사는 행위를 하지 않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모든 그릇된 행위를 하지 않소. 이것은 또한 비구계(比丘戒)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오.
비구가 이와 같은 계행을 두루 갖추면 이 계행의 위력으로 어느 곳에 갈지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마치 사방의 적을 정복한 위력 있는 왕은 어디를 가나 두려울 것이 없는 것과 같소. 비구가 청정한 계행을 갖추면 마음속으로 티 없이 깨끗한 평안을 누리게 되니 이것이 비구가 계행을 구족한 현세의 과보인 것이오.”
『南傳 長部 沙門果經』
2.1.13.계행과 정진으로 얻은 자유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는 또 눈·귀·코·혀·몸·생각 등 감관의 문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치 부자가 창고의 문을 단속하여 도둑의 침범을 막듯이, 비구가 눈으로 사물을 볼 때에는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생각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면 탐욕과 애착과 비애 등의 부정법(不淨法)에 흘러가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눈을 잘 단속하여 감각 작용을 조절함으로써 보는 감각이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오. 소리를 듣는 귀와 냄새를 맡는 코, 맛을 보는 혀, 차고 덥고 거칠고 부드러움을 느끼는 몸, 시비와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도 그와 같아서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의식하는 것이 모두 제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여 그 공덕이 갖추어지면, 마음속으로 티 없이 깨끗한 안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감관의 문을 보호한 공덕의 과보입니다.
또 어떤 것이 비구의 지족(知足)인가 하면, 그 몸을 보호하는 옷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어디를 가든 한 벌 옷과 한 벌 바리때를 지니고 가는 것이오. 마치 새가 어디를 가든 날개만을 가지고 나는 것처럼. 비구는 이와 같이 청정한 계행과 감관과 만족을 갖추어 조용한 숲속이나 나무 아래, 동굴이나 묘지 등 세속을 떠난 한적한 곳을 선택해 한 그릇 밥을 얻어먹은 뒤에는 단정히 앉아 바른 생각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오. 그는 세속의 탐욕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에 머물며 남을 해치려거나 성내고 미워하는 생각을 여의고, 모든 생물을 가엾이 여기어 이롭게 하려는 마음에 머물며, 정신이 혼미한 데서 벗어나 산뜻하고 올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 머뭅니다. 산란하고 헐떡거리는 생각을 쉬어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에 머물며, 망설이고 의심하는 데서 벗어나 깨끗하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러 그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빌린 돈으로 처자를 부양하고 스스로도 만족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계행과 정진으로 묵은 죄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도업(道業)에 의해 스스로 평안을 얻어 만족하는 것이오. 또 한 가지 비유를 든다면, 남의 노예가 되어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다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면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떳떳한 자유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청정한 계행과 줄기찬 정진의 힘으로 세속적인 오욕(五欲)의 노예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비구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추어 만족할 줄 알고 번뇌에서 벗어난 현세의 과보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니,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감격한 끝에 이렇게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파묻혀 있던 것을 드러내놓으며,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 주고, 어둔 밤에 불을 밝혀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온갖 방편을 들어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귀의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이 목숨이 다하도록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신도가 되고자 하오니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리석고 무지하여 왕권을 얻기 위해 잔인하게도 덕이 많은 부왕(父王)을 살해하였습니다. 부처님, 앞으로 제가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저의 이 죄악을 죄악으로 인정하시고 저를 받아 주십시오.”
“대왕, 참으로 당신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큰 죄악을 저질렀소. 당신은 그처럼 덕이 많은 부왕을 살해하였소. 그러나 당신이 죄악은 죄악대로 인정하고 법에 따라 그 죄를 참회하겠다니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겠소. 누구든지 죄를 인정하고 법답게 참회하여 앞으로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계를 지키려 한다면 성자의 계율이 번창할 것이오.”
아자타삿투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왕이 물러간 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아자타삿투왕은 진심으로 뉘우친 것이다. 만일 그가 부왕을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마음의 때를 벗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을 것이다.”
『南傳 長部 沙門果經』
2.1.14.허물어진 탑에는 흙을 바를 수 없다
부처님께서 많은 비구들과 함께 파바에 있는 어떤 동산에 머무르고 계실 때였다. 부처님은 달이 밝은 보름밤에 맨땅에 앉아 비구들에게 법을 설한 다음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 함께 정진하면서 자지 않는다. 나는 등이 아파 좀 쉬고 싶으니, 네가 비구들을 위해 법을 설해 주어라.”
부처님은 가사(袈裟)를 네 겹으로 접어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사리풋타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 파바성은 이교도 니간타[尼犍子, 尼乾子]가 살던 곳인데 그는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서로 잘잘못을 캐면서 시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법을 잘 알지만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나는 바른 법을 가졌는데 너는 사견(邪見)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말이 서로 얽히어 앞뒤가 없이 저마다 자기 말만을 참되고 바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니간타를 따르던 이 고장 사람들은 다투는 무리들을 싫어합니다. 옳다고 주장하는 그 법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법이 올바르지 못하면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허물어진 탑에는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래의 법은 올바르고 참되어 해탈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교법과 계율을 모아 그들과 같은 다툼을 막고 청정한 수행을 쌓아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해야겠습니다.
수행자는 반드시 안으로 살펴야 합니다. 만약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들처럼 대중을 어지럽힌다면 화합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다툼의 근본을 뽑아야 합니다. 맺힌 원한이 다했을 때는 그 마음을 거두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성냄이 뒤틀어지면 시기하고 교활하여 스스로 자기 소견에 말려들어 사견(邪見)에 헤매고 치우친 편견에 떨어지고 맙니다.”
부처님은 사리풋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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