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부처님생애 ③교화에서 열반까지
1.3.1.최초의 설법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누구에게 설법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아라라와 웃다카가 떠올랐으나 그들은 아깝게 모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이 네란자라 강가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문들이었다.
부처님은 그들이 고행하고 있을 녹야원(鹿野苑)으로 발길을 옮겼다.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까지는 여러 날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부처님이 혼자서 그 길을 걸어가시는 도중에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수행자는 부처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의 얼굴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맑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모든 것을 이겨냈고 이 세상의 진리를 다 알게 되었고 나는 스스로 깨달았으므로 내 스승은 없소. 또 나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녹야원으로 가는 도중 부처님은 하루 한 끼씩 얻어먹으면서 쇠약해진 몸을 다스렸다.
부처님이 녹야원에 이르렀을 때 다섯 사문들은 전과 다름없이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간혹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의 타락을 비난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가까이 걸어오고 있는 부처님을 알아보았다.
“저기 고타마[瞿曇]가 오는군.”
고타마는 싯다르타의 성이다.
“그럴 리가 있나.”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 틀림없는 고타마야.”
“왜 찾아왔을까?” “자신의 타락을 후회한 모양이지? 고행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둔 사람이니까.”
“우리는 고타마가 가까이 오더라도 모른 척하세.”
“그래, 타락한 사문에게 우리가 먼저 머리를 숙일 건 없지.”
부처님은 천천히 그들이 앉아 있는 곳까지 가셨다.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이상한 힘에 끌려 자신들도 모르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은 그들을 보고 조용히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내가 와도 일어서서 맞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으면서 왜 일어나 인사를 하는가?”
다섯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놀랐다. 부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환히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부처님이 앉으실 자리를 마련했다.
“고타마여, 멀리서 오시느라고 고단하시겠습니다.”
부처님은 엄숙하게 말씀하였다.
“이제부터는 내 성을 고타마라고 부르지 마라. 나를 여래(如來)라고 불러라. 나는 이제 여래가 되었다.”
여래란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도 되고, 진리의 세계에서 설법하러 온 사람이란 뜻도 된다. 부처님은 다섯 사문들을 향해 최초의 설법을 하셨다.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사문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사문은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 치우친 길이란,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겨 버리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사문은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여래는 바로 이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 여래는 그 길을 깨달음으로써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
이 설법은 부처님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난 말씀이었다. 그 자신도 출가하기 전까지는 카필라의 왕궁에서 지나치게 쾌락을 누렸었다. 그리고 왕궁을 버리고 출가한 뒤에는 극심한 고행으로 육체를 학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다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육체의 쾌락을 따르는 길과 육체를 괴롭히는 고해의 길을 넘어선 곳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찾아낸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사문들이여, 그렇다면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 가지로 되어 있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작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이다.”
팔정도(八正道)를 말씀하신 것이다. 부드럽고 차근차근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던 다섯 사문들은 이내 그 글이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실 때 숲에서 살던 사슴들이 떼지어 나와 부처님의 말씀을 한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부처님은 다섯 제자를 거느리고 녹야원에서 한동안 머무르셨다. 어느 날 새벽 부처님은 강물에 얼굴을 씻고, 강변을 조용히 거닐고 계셨다. 그때, 저쪽 강기슭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한 젊은이가 보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고함을 치며 뛰어다녔다.
“아, 괴롭다. 괴로워!”
그 소리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부처님은 말없이 강 건너에 있는 그 젊은이를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젊은이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강을 건너 부처님 곁으로 왔다. 그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이 괴로움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하소연을 했다.
“여기에는 괴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소. 대체 무엇이 그렇게도 괴롭소?”
이 젊은이는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큰 부자의 외아들 야사[耶舍]였다. 야사는 왕에 못지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날 밤 야사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다. 흥겨운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야사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그토록 아름답던 시녀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추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야사는 집을 뛰쳐나와 괴롭다고 외치면서 거리를 헤맨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미칠 것 같은 그의 마음은 점차 안정이 되었고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한 것이 다시없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았다. 부처님은 야사에게 인생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야사는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出家)하여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 곧 신도가 되었다. 그가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신도였다. 야사와 같은 상류 가정의 아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바라나시에 퍼졌다. 더구나 야사처럼 재주 있고 학식이 있는 유망한 청년이 출가하여 부처님 아래에서 비구(比丘)가 되었다는 사건은 바라나시의 젊은 청년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뒤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친구들이 뒤를 이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1.3.2.교화 활동
보리수 아래서 지혜의 눈을 뜬 부처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마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출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부처님을 믿는 신도가 되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다음 아라한(阿羅漢)의 지위에 오른 제자가 오십여 명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 수행자들, 나는 인간을 얽어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대들도 인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아가라.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는 말아라. 한결같이 훌륭한 법문을 중생들에게 들려주고 언제나 깨끗한 수행자의 생활을 하여라. 이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도 많으니 그들이 훌륭한 법문을 듣게 되면 곧 깨달아 아라한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펴 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하는 교화 활동이 시작되었다. 제자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씀하였다.
“수행자들이여, 출가한 사람으로서 법을 펼 때 남에게 존경받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법에 의하여 먹고 살려 하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와 같은 자다. 또 너희가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벌써 법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갉아먹고 사는 아귀가 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해야 한다.”
부처님 자신은 바라나시를 떠나 마가다로 향했다. 길을 가던 도중, 길가에서 깊이 들어간 숲속의 한 나무 아래서 잠시 좌선을 하고 계셨다. 이때 한 떼의 젊은이들이 숲속 여기저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고 그들이 물었다.
“한 여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연인즉, 그들은 이 근처에 사는 지체 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삼십 명이 저마다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이를 왔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독신자만은 기생을 데리고 왔었는데, 다들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기생은 여러 사람의 옷과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그 여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놀이에만 팔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여인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다들 거기 앉거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이치에 맞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이해하였다. 삼십 명의 청년은 설법을 들은 뒤 그 자리에서 출가하였다.
부처님은 스스로 ‘길을 가리키는 사람’ 이라고 말씀하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혜롭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나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씀하였다. 부처님의 설법은 언제나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달랐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알고 나서 그 증세에 따라 알맞게 치료해주듯이, 찾아와 묻는 사람들의 형편을 보고 그에게 맞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법하셨다.
부처님이 사밧티[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였다. 삼대독자를 잃어버린 한 과부는 비탄에 빠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와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였다.
“부처님, 저는 유복자를 잃고 살아갈 용기마저 잃었습니다. 저에게 이 슬픔에서 벗어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가만히 듣고 계시던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엾은 아주머니,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소. 지금 곧 가서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을 일곱 군데 찾아내어 쌀 한 움큼씩만 얻어 오시오. 그러면 내가 그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겠소.”
과부는 바삐 마을로 쌀을 얻으러 나갔다. 며칠이 지난 뒤 그 과부는 한 움큼의 쌀도 얻지 못한 채 맥이 빠져 부처님께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물으셨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었습니까?”
그제야 과부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부처님을 쳐다보는 과부의 얼굴에는 어느 새 슬픔의 그림자가 지워져 있었다.
그 무렵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우루벨라 마을에는 카샤파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맏형은 오백 명, 둘째는 삼백 명, 셋째는 이백 명의 제자들을 각각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명망은 높았다 그들은 불의 신 아그니[火神]를 섬기고 있으므로 불을 무엇보다 신성한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 바라문 삼 형제도 한번 부처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듣더니 지금껏 그들이 섬겨 오던 불의 신을 버리고 당장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삼 형제와 함께 그들을 스승으로 받들던 천 명의 제자들까지 부처님께 귀의했다. 이렇게 되자 마가다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이 그대로 부처님의 교단이 된 셈이다.
이제 부처님께서는 천 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리고 라자가하로 가시게 되었다. 라자가하는 예전에 부처님이 카필라를 떠나 출가의 길에 올랐을 때 들른 적이 있던 곳이고, 또 자신의 성도(成道)를 기다리는 빔비사라왕이 있는 곳이었다. 라자가하로 가는 도중 일행은 산을 넘게 되었다. 산위에 올라섰을 때 부처님은 천명의 제자들을 향해 설법을 하셨다.
“보라, 모든 것은 지금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눈이 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고 있다. 그 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고 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해 타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리라. 애착이 없어지면 그는 영원한 안락을 누릴 것이다.”
이 설법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지금까지 불을 섬겨 오던 그들에게 주는 감명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들은 지금까지 타는 불을 섬겨 왔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탐욕과 노여움의 불은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카샤파 형제와 천 명의 제자들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부처님과 그 일행이 라자가하로 오신다는 소문은 빔비사라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왕은 곧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영접하려고 성 밖으로 나갔다. 부처님의 모습을 보자 왕은 부처님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과 다시 만나게 된 인연에 감회가 깊었다. 왕과 신하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인가를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빔비사라왕은 갑자기 자기 눈이 열리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왕은 그 자리에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아직 태자로 있을 때 나에게는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왕위에 오르는 것, 둘째는 나의 영토에 부처님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일. 셋째는 내가 그 부처님을 섬기는 일. 넷째는 부처님께서 내게 설법해 주실 것, 다섯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이 나라에 오셨으니 이제는 그 다섯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이때부터 빔비사라왕은 한평생 부처님을 섬기는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라자가하성 밖에 있는 대숲을 부처님과 그의 교단에 바쳤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가하의 한 부자가 대숲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다음 이곳에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자청했다. 이때까지 부처님의 교단은 비와 햇볕을 피할 만한 집이 없었기 때문에 더러는 곤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화려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집을 지어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이렇게 하여 지은 것이 죽림정사(竹林精舍)이고, 이 집은 부처님의 교단이 가지게 된 최초의 절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교단은 나날이 번창해서 날이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왕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대숲에 있는 절로 찾아왔다. 그리고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게 되면 누구나 신도가 되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제자가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편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 오셔서 설법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라자가하 시민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모두 출가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아들이 출가한 집에서는 부모들이 ‘부처님이 우리 아들을 빼앗아 갔다.’고 원망했다. 게다가 산자야[刪闍耶] 종파의 제자였던 사리풋타[舍利弗]와 목갈라나[目犍連, 目連尊者, 目連]같은 유명한 수행자가 이백오십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를 보고 비꼬았다.
“마가다의 서울 라자가하에 한 위대한 사문이 나타났다. 앞서는 산자야의 제자들을 유혹하더니 이번에는 또 누구를 유혹하려는가?”
한 제자로부터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같은 비난의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또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대답해 주어라. 여래는 법에 의하여 사람을 인도할 따름이다. 바른 법에 귀의하는 것을 시기하는 자는 누구인가. 바른 법을 시기하는 자는 모두가 바르지 못한 자들이다.”
1.3.3.살인자의 귀의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밧티에 들어가 밥을 빈 다음 성밖에 있는 숲길을 지나다가 소치는 사람과 밭을 가는 농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길을 가는 부처님을 보자 가는 길을 만류했다.
“부처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 길에는 앙굴리말라[央掘摩羅]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닙니다. 제발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거듭거듭 만류하였으나 부처님은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소.”
라고 말씀하시면서 길을 떠났다. 얼마 안 가서 앙굴리말라가 갑자기 칼을 치켜들고 나타나 부처님께로 달려 왔다. 부처님은 태연하게 걸어가셨다. 앙굴리말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이상하게도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사문아. 거기 섰거라!”
하고 그는 소리쳤다.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말라를 바라보셨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을 대하자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엾이 여겨 여기에 왔다.”
이 말을 듣자 앙굴리말라는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훨훨 타오르던 불길을 꺼버린 듯하였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부처님 앞에 꿇어 엎드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그는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에 가서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었다. 이튿날 앙굴리말라는 바리때를 들고 거리로 밥을 빌러 나갔다.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거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밥을 빌고자 찾아간 집의 부인은 해산하기 위해 산실에 들었다가 그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란 끝에 해산을 못하고 말았다. 그 집 사람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받은 앙굴리말라는 빈 바리때를 들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도와주기를 호소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너는 곧 그 집에 가서 여인에게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 아직 산목숨을 죽인 일이 없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편안히 해산할 것입니다.’ 라고 하여라.”
앙굴리말라는 놀라서 말했다.
“부처님, 저는 아흔아홉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도(道)에 들어오기 전은 전생이다. 세상에 난 뒤라는 말은 도를 깨친 뒤를 말한다.”
그는 곧 그 집에 가서 부처님이 시킨 대로 했더니 부인은 편안히 해산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원한이 있던 사람들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 나와 그를 치고 때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기원정사로 돌아온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원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아힘사카[不害]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 어리석은 탓으로 많은 생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씻어도 씻기지 않는 피 묻은 손가락을 모았기 때문에 앙굴리말라[指鬘]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소나 말을 다루려면 채찍을 쓰고 코끼리를 길들이려면 갈고리를 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채찍도 갈고리도 쓰지 않으시고 흉악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악의 갚음을 받았고, 바른 법을 들어 청정한 지혜의 눈을 떴으며, 참는 마음을 닦아 다시는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살기도 원치 않고 죽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때가 오기를 기다려 열반에 들고 싶을 뿐입니다.”
1.3.4.사캬族의 귀의
카필라의 슛도다나王은 태자가 마가다의 서울에서 위대한 부처님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태자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었다는 소식은 슛도다나王도 벌써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슛도다나王은 하루라도 빨리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라자가하까지 와 계시면서도 고향인 카필라에는 아직도 가려 하지 않으셨다. 슛도다나王은 기다리다 못해 여러 번 사신을 보내어 자신의 뜻을 부처님께 알렸다. 그런데 그때마다 찾아간 사신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해 버리고 말았다. 한번 출가해 버린 그들은 수행에만 힘쓸 뿐 왕의 사신으로서의 임무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왕은 이번에는 가장 신임하는 우다인[優陀夷] 대신을 특사로 보내게 되었다. 왕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우다인은 다음과 같이 맹세하고 길을 떠났다.
“제가 부처님을 만나 혹시 출가하게 되더라도 대왕의 간절하신 뜻은 꼭 전하여 모시고 오겠습니다.”
우다인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곧 출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맹세한 일만은 잊지 않았다. 몇 달을 두고 기회를 살피던 우다인은 부처님 곁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지금 카필라에서는 슛도다나王과 사캬族들이 부처님이 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카필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의외에도 선뜻 동의하셨다.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럼 떠날 준비를 하여라.”
우다인은 너무나 기뻐서 먼저 카필라로 떠났다. 카필라에서는 왕을 비롯하여 온 나라 안이 부처님을 맞을 준비에 바빴다. 다들 옛날의 태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덧 정든 카필라를 떠난 지 열두 해가 되었다. 부처님의 나이도 이제는 마흔이 넘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라자가하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카필라에 이르렀다.
그러나 카필라에 도착한 부처님께서는 궁전에 들지 않고 출가 사문의 습관에 따라 이집 저집 밥을 빌며 다녔다. 왕은 부처님께
“가문을 욕되게 하는 일을 그만 두고 어서 들어와 궁전에 머물도록 하오.” 하고 권했다. 왕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옛날의 싯다르타가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것은 출가 사문이 옛날부터 지켜온 법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궁중에서 설법하시기 전에 이모와 야쇼다라 그리고 라훌라와도 만났다. 열두 해 만에 친족들과 대하는 감회가 새로웠다. 마음 착한 여인들은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부왕과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설법을 듣고 난 그들은 출가 사문의 길을 이해하게 되었고 난 그들은 출가 사문의 길을 이해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카필라에 오신 지 며칠 안 되어 사캬族 출신의 청년들은 앞을 다투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카필라는 또 한번 뒤집히게 되었다. 옛날 슛도다나王과 야쇼다라 태자비가 겪었던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하는 부모와 아내들이 뒤를 이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처님에게는 아우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부처님을 키워 준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낳은 아들이다. 부처님이 카필라로 돌아왔을 때 장차 싯다르타 대신 왕위를 계승하게 될 아우 난다[難陀]의 결혼식이 막 거행되려 하고 있었다. 신부는 미인으로 알려진 순다리[孫陀利女]였다.
부처님은 난다를 데리고 성밖에 있는 니그로다[尼拘律, 榕樹] 정사(精舍)로 가셨다. 니그로다 정사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슛도다나王이 마련한 정사였다. 그 정사에 도착한 부처님은 난다를 앞에 앉히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난다야, 너는 지금 곧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라.”
난다에게는 너무도 뜻밖의 말이어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부처님께서는
“난다, 너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구나. 너는 내 말대로 곧 출가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시면서 손수 난다의 머리를 깎아 출가하게 하였다.
형님인 부처님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출가하여 니그로다 정사에 살게 되었지만 아리따운 순다리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난다는 괴로워했다. 이 괴로움은 난다가 출가한 뒤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출가한 난다가 두고 온 순다리를 잊지 못하면서 이따금 멍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 부처님은 어느 날 난다를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셨다. 거기에서 흉하게 생긴 암원숭이 한 마리를 난다에게 보이며
“이 암원숭이와 너의 순다리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더 아름다우냐?”
라고 물으셨다. 난다는 대답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순다리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이번에는 신통력으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선녀를 보이시며 물었다.
“이 선녀와 순다리를 비교하면 어떠냐?”
이번에는 난다도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총명한 난다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후부터 난다는 출가 사문의 길만을 찾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다의 출가를 슬프게 여기는 사람은 순다리만이 아니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떠난 다음 오직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로 믿고 있던 난다마저 출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슛도다나王은 또 한번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제 남은 후계자는 손자인 라훌라밖에 없었다. 태자가 출가하기 직전에 태어난 라훌라는 어느 것 열두 살이 되어 있었다. 라훌라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왔다.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십시오.”
하고 엉뚱한 말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라훌라의 손목을 끌고 성밖에 있는 니그로다 정사로 가셨다. 부처님께서 제자인 사리풋타에게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하고 일렀다. 마침내 라훌라도 아버지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된 것이다. 물려줄 재산은 물질적인 재산이 아니라 법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나이 어린 손자까지 출가한 것을 본 왕의 비통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리하여 나중에 슛도다나王은 부처님께, 이제부터 미성년자의 출가는 부모의 허락을 얻도록 하자고 제의했고, 부처님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셨다. 부처님이 카필라에 계시는 동안 난다와 라훌라 외에도 오백 명에 가까운 귀족 청년들이 출가하였다. 출가하는 청년들은 이발사인 우팔리[優婆離]에게 그들이 지니고 있던 패물을 내주었다. 오랫동안 신세진 갚음이었다. 그러나 이 우팔리도 받았던 패물을 내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후세에 계율 지키기에 으뜸이라고 존경받는 우팔리 존자는 바로 이 카필라의 이발사였다. 이 무렵 또 두 형제가 출가하였다. 그들은 야쇼다라의 형제였다. 이 두 형제 가운데서 아난다[阿難陀,阿難尊者]는 일생을 바쳐 부처님을 공경하고 시봉하였으나, 다른 한 형제인 데바닷타[提婆達多, 調達]는 부처님 교단에 반역하여 부처님을 괴롭혔다.
카필라와 이웃나라 콜리 사이에는 로히니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콜리는 예전부터 카필라와의 국교가 매우 두터운 사이였다. 같은 사캬族인데다 싯다르타를 낳은 마야 왕비와 그를 길러 준 마하파자파티, 그리고 태자비 야쇼다라까지도 모두가 콜리 출신 이었다. 두 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므로 농사철에는 물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몹시 들어 로히니 강물은 바닥이 나고 강변에 있는 저수지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카필라와 콜리 사람들은 저수지 양쪽에서 서로 물을 끌어들이려다가 큰 싸움이 벌어졌다. 양편이 다들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살기가 등등하여 서로 맞붙어 싸우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급히 로히니강으로 나가셨다. 부처님을 보자 그들은 들었던 연장을 놓으며 합장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물과 사람, 이 둘 중에 어느 편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마 몇 사람이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은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다.
“옛날 깊은 산속에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자가 하루는 큰 나무 아래 누워 있을 때 바람이 불어 나무 열매가 사자의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사자는 잔뜩 화를 내며 꼭 혼을 내줘야지 하고 별렀습니다. 그런지 사흘째 되던 날 한 목수가 수레바퀴에 쓸 재목을 찾아 이 산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사자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레바퀴에 쓸 재목이라면 이 큰 나무를 베어 가시오. 하고 목수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목수는 사자의 말대로 그 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랬더니 넘어진 나무는 목수에게 ‘사자의 가죽을 바퀴에 쓰면 아주 질깁니다. 라고 속삭였습니다. 목수는 마침내 곁에 있던 사자도 잡아 버렸습니다. 사자와 나무는 이와 같이 하찮은 일로 다투어 자기의 목숨까지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자 양쪽 사람들은 저마다 부끄러워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갔다.
1.3.5.여성의 출가
슛도다나王이 늙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사랑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부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출가하여 위대한 성자가 되었고, 작은 아들 난다도 역시 싯다르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손자 라훌라마저 출가하였으므로 늙은 왕의 마음은 쓸쓸하기가 비길 데 없었다. 부처님을 낳았다는 영광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손자마저 떠나버린 뒤로부터는 마음이 텅 비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슛도다나王이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곧 라자가하를 떠나 카필라로 가셨다. 왕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석에 나타난 부처님을 보았을 때 왕은 마지막 설법을 청하였다. 부처님은 왕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근심은 푸시고 아무 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말씀한 법을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평안히 가지십시오.”
왕이 누워 있는 병석에는 부처님을 비롯하여 난다, 라훌라, 아난다와 같은 친족의 사문들이 모여 있었다. 늙은 임금은 이 같은 환경에서 옛날의 태자이고 지금의 성자인 부처님의 손을 꼭 쥔 채 마지막 설법을 듣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왕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부처님은 아직 카필라성밖에 있는 니그로다 정사에 머무르고 계셨다. 하루는 아무 예고도 없이 자기를 알뜰히 키워 주던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찾아왔다.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한 다음 왕비는 옛날의 아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곁에서 수행의 길을 걷겠소. 제발 나 같은 여성들도 출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오.”
그러나 자기를 키워 준 이모의 간절한 소원이건만 부처님은 잘라서 거절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부처님은 카필라를 떠나 베살리[毘舍利, 毘耶離]로 옮겨 가셨다. 그때 베살리 교외에 있는 마하바나[大林精舍] 정사에 대중들은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께 세 번씩이나 출가를 신청했다가 세 번 다 거절당했지만 마하파자파티는 한번 결심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왕비는 며칠 뒤 스스로 머리를 깍은 다음 비단옷 대신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 나섰다. 출가 사문의 모습을 하고 베살리로 향하는 왕비를 보고 많은 여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여인들의 발은 돌부리에 채어 피가 흘렀다. 마하파자파티와 그 일행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다시 여성의 출가를 애원했다.
마하바나 정사 밖에서 여성들이 웅성거리며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연 사람은 부처님을 시봉하고 있던 아난다였다. 아난다의 얼굴을 본 마하파자파티는 자기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뜻을 말하면서 여성의 출가를 부처님께서 허락해 주시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난다는 곧 부처님께 알려드렸다.
“지금 밖에 카필라에서 맨발로 걸어온 마하파자파티 일행이 여성의 출가를 애원하며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아난다는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어린 태자를 키우느라 애썼던 과거를 회상시키면서 다시 여성의 출가를 간청했다. 그래도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세 번이나 거절당했을 때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만일 여성일지라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에 힘쓴다면 남자만큼 수행의 성과(聖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침묵을 깨뜨리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여인도 이 법에 귀의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대답에 용기를 얻은 아난다는 다시 한번 마하파자파티의 은혜를 들면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문은 청정한 계율을 닦고 세속의 애착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여인은 세속의 애착이 강하므로 도에 들어가기 어렵다. 그리고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법이 이 세상에 오래 갈 수 없다. 그것은 잡초가 무성한 논밭에는 곡식이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정에 여인이 많고 사내가 적으면 도둑이 들기 쉽듯이, 이 교단에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교법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물을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 둑을 쌓는 것과 같이 교단의 질서를 위해 따로 여덟 가지 계법[尼八敬戒]을 마련한다. 출가한 여인은 반드시 이 여덟 가지 계법을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마하파자파티의 출가가 허락되었다. 최초의 비구니가 된 것이다.
1.3.6. 데바닷타의 반역
데바닷타는 부처님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는 야쇼다라의 동생이고 아난다의 형이었다. 그는 아난다와 우팔리가 출가할 때 출가하여 부처님 교단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데바닷타는 남달리 큰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처님의 교단을 이어 받으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마가다의 태자 아자타삿투[阿闍世王]의 후원을 얻게 되자 그의 야심은 더욱 커갔다. 아자타삿투 태자와 데바닷타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여러 가지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오랜만에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둘러앉은 제자들은 데바닷타의 소문을 부처님께 알려 드렸다.
“부처님, 아자타삿투 태자는 아침저녁으로 오백 대의 수레에 음식을 실어다가 데바닷타와 그 무리들에게 공양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데바닷타가 누리고 있는 명성과 이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호화로운 사치는 데바닷타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파멸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치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시들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며칠이 지나 부처님이 다시 제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설법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데바닷타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께 중대한 제의를 하였다.
“부처님은 이제 너무 연세도 많으신데다 건강도 좋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교단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교단의 내용과 데바닷타를 잘 알고 있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데바닷타여, 잘 들어라. 내 아직 아무에게도 교단을 맡기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맡긴다고 하더라도 여기 목갈라나와 같은 제자들이 있지 않느냐. 어찌 네가 교단을 맡을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 이와 같이 거절당한 데바닷타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빔비사라왕을 옥에 가두고 왕위를 빼앗은 아자타삿투의 힘을 빌어 부처님을 죽이려 했다. 한번은 칼 잘 쓰는 자객을 보내어 부처님의 목숨을 뺏으려 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곁에까지 간 그 자객은 어찌된 영문인지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부처님이 어찌하여 그렇게 떨고만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자객은 그 자리에 엎드려 부처님께 용서를 빌었다. 부처님의 목숨을 해치려던 자객은 그 후 도리어 부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한번은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이었다. 데바닷타의 무리들은 벼랑위에 숨어 있다가 부처님이 그 아래를 지나가는 순간 큰 바위를 내려뜨렸다. 그들은 바위가 부처님 머리 위에 떨어지도록 했으나 바위는 굴러 내려오다가 좁은 골짜기에서 멎고 말았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부처님의 둘레에 모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래는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법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태연히 길을 걸어가셨다. 데바닷타는 두 번이나 음모에 실패했으면서도 뜻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라자가하의 거리를 지나가는 부처님을 향해 아주 성질이 사나운 코끼리를 풀어 놓았다.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부처님의 신변을 매우 걱정했다. 그러나 부처님을 향해 달려가던 코끼리는 부처님 앞에 이르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는 코를 아래로 드리운 다음 꿇어앉았다.
데바닷타의 음모는 세 번 다 실패로 돌아갔다. 어떠한 폭력도 여래의 법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러나 데바닷타의 사건은 부처님의 일생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다. 데바닷타로 인해 교단이 분열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교단을 분열시킨 데바닷타가 부처님의 가까운 친척이었다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1.3.7.시드는 가지
부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설법하셨다. 해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육신은 늙어감에 따라 차츰 쇠약해지고 있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이 가장 아끼던 제자 사리풋타[舍利弗]가 마가다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 앓다가 죽었다. 곁에서 간호하던 어린 춘다[純陀]는 죽은 사리풋다의 유물인 바리때와 가사를 가지고 부처님께 왔다. 부처님의 얼굴을 본 춘다는 이제까지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흐느끼면서 사리풋타의 죽음을 부처님께 알려 드렸다.
“부처님, 여기 사리풋타의 바리때와 가사가 있습니다.”
곁에서 춘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난다도 같이 울었다. 사리풋타는 부처님의 많은 제자 가운데서도 지혜가 으뜸인 수제자였다. 이같은 제자가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부처님의 슬픔도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부처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난다와 춘다의 슬픔을 달래 주셨다.
“너희들은 내가 항상 하던 말을 잊었느냐? 가까운 사람과는 언젠가 이별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을 따라 변해 간다. 아난다, 저기 큰 나무가 있구나. 저 무상한 가지 중에서 하나쯤은 먼저 시들어 떨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 그와 같이 사리풋타도 먼저 간 것이다.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너희들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법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아라.”
사리풋타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목갈라나[目連]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목갈라나도 사리풋타 못지않게 부처님 교단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노년에 이르러 유능한 두 제자를 잃었다는 사실은 부처님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부처님은 두 제자가 없는 모임에 참석할 때면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보이지 않는 모임은 어쩐지 텅 빈 것만 같구나.”
부처님이라고 해서 아끼던 제자의 죽음에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슬픔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부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느껴 왔던 것이다. 부처님은 사리풋타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는 춘다와 아난다에게 했던 말씀을 그 후로도 여러 수행자들의 모임에서 가끔 되풀이하셨다.
만년에 이르러 부처님의 주변에 몇 가지 비극이 벌어졌다. 아버지 슛도다나王의 죽음과 가장 아끼던 두 제자의 죽음, 그리고 친척인 데바닷타의 배반, 이런 것들이 부처님의 심경을 더욱 아프게 했다. 게다가 또 하나의 큰 비극이 일어났다.
카필라를 노려 오던 코살라가 마침내 쳐들어오고 있었다.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듣고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한 길가 고목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군사를 이끌고 그 앞을 지나가려던 코살라의 젊은 왕 비루다카[毘瑠璃王]는 얼른 말에서 내려 부처님께 절한 다음 물었다.
“부처님, 우거진 나무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였다.
“친족이 없는 것은 여기 그늘이 없는 나무와 같은 법이오.”
이 한마디를 들은 젊은 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군대를 돌려 코살라로 돌아갔다. 비루다카는 얼마 후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늘이 없는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왕은 다시 되돌아섰다. 세 번째 진군이 카필라를 향했을 때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세상이 진 빚은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비루다카왕은 서슴지 않고 카필라를 공격했다. 살생을 엄격히 금하고 있던 사캬族은 전쟁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할 저항도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1.3.8.열반
부처님의 연세도 여든이 되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강가강[恒河]을 건너 밧지[跋耆族]족의 서울인 베살리에 이르렀을 때 장마철을 만났다. 그 해에는 인도 전역에 심한 흉년이 들어 많은 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내기가 어려웠다. 여럿이 한데 모여 밥을 빌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베살리 근처에 각각 흩어져 지내도록 하셨다. 부처님은 아난다만을 데리고 벨루바[竹林村] 마을에서 지내시게 되었다. 이때 부처님은 혹심한 더위로 몹시 앓으셨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면서 목숨을 이어가셨다. 병에서 회복한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부처님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계셨다. 아난다는 곁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부처님의 병환이 중하신걸 보고 저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교단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없이 이대로 열반에 드실 리는 없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이제까지 모든 법을 다 가르쳐 왔다. 법을 가르쳐 주는 데 인색해 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늙고 기운도 쇠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다.”
부처님은 베살리 지방에 흩어져 있는 비구들을 모이게 한 뒤 석 달 후에는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부처님은 거리에 걸식하러 나갔다가 거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시며 이것이 베살리를 보는 마지막이라고 곁에 있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베살리를 떠나 파바[波婆]라는 고을에 이르셨다. 여기에서 금세공(金細工) 춘다가 올리는 공양을 드시고 나서 다시 병을 얻게 되었다. 이때 춘다가 올린 음식은 부처님께 올린 마지막 공양이 되었다. 이 공양을 마치자,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시면서 쿠시나가라로 다시 길을 떠나셨다. 많은 제자들이 걱정에 잠겨 뒤를 따랐다. 이 길이야말로 부처님이 걸으신 최후의 길이 되고 말았다. 쿠시나가라에 도착하자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해 눕고 싶다. 저기 사라수 아래에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아 다오. 나는 오늘 밤 여기에서 열반에 들겠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말을 듣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한쪽에 가 울고 있는 아난다를 불렀다.
“아난다여, 울지 말아라. 가까운 사람과 언젠가 한번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다.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너는 그 동안 나를 위해 수고가 많았다. 내가 간 뒤에도 더욱 정진하여 성인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여라.”
아난다는 슬픔을 참으면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다음 그 몸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출가 수행자는 여래의 장례 같은 것에 상관하지 말아라. 너희는 오로지 진리를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여래의 장례는 신도들이 알아서 치러 줄 것이다.”
그날 밤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말라족[末羅族] 사람들은 슬퍼하면서 사라수의 숲으로 모여들었다. 이때 쿠시나가라에 살던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須跋陀羅]도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의 의문을 풀어야겠다고 허둥지둥 사라수의 숲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아난다는
“부처님을 번거롭게 해드려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은 지금 매우 피로하십니다.”
하고 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수바드라를 가까이 오도록 이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을 막지 말아라. 그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그는 내 말을 들으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수바드라를 위해 설법을 들려 주셨다.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것이다. 이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시간이 가까워 온 듯했다. 부처님은 무수히 모여든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물어보셨다.
“그동안 내가 한 설법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묻도록 하여라. 승단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한 사람도 묻는 이가 없었다. 부처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어려워 말고 어서들 물어보아라. 다정한 친구끼리 말하듯이 의문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아라.”
이때 아난다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수행자들 중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습니다.”
아난다의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함께 내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께서는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진리를 찾아 왕자의 자리도 박차고 출가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행 끝에 지혜의 눈을 뜨신 부처님, 사십오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해 몸소 자비를 구현한 부처님은 이와 같이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육신의 나이 여든으로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 가르침은 어둔 밤에 등불처럼 중생의 앞길을 밝게 비추고 있다. 이 지상에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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