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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돈점


때에 조사는 조계 보림에 계시고 신수대사는 형남 옥천사에 계셨다.
그때에 두 종이 모두 다 성대히 교화하니 사람들이 모두 남능과 북수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남과 북의 두 종이 돈과 점으로 갈라졌는데 배우는 사람들은 근본취지를 몰랐으므로 조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법은 본래 한 종이건만 사람이 남북을 둔 것이다. 법은 곧 한가지인데 보는 것이 더디고 빠를 수 있다. 무엇을 <돈>이라 하고 무엇을 <점>이라 하는가 하면 법은 돈과 점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영특함과 둔함이 있으므로 <돈>이고 <점>이라 한다.”

그러나 신수의 대중들은 이따금 남종의 조사는 한 글자도 모르니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느냐하며 비방하였는데, 
신수대사는 말하기를 “그분은 스승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상승의 법을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 분만 못하다. 또 나의 스승인 오조께서 친히 가사와 법을 전하셨으니 어찌 공연한 일이겠느냐. 내가 멀리 가서 친근하지 못하고 헛되이 나라의 은혜만 받고 있어 한스러우니 너희들은 이곳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조계에 가서 배우도록 하여라.” 하며 
어느 날 문인인 지성에게 명하기를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에 가서 법을 듣고, 들은 법은 마음을 다하여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와서 나를 위해 설하여 달라.” 하였다.
지성이 명을 받고 조계에 이르러서 대중을 따라 참례하고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때 조사가 대중에게 “지금 법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이 모임에 숨어 있다.” 하시므로 지성이 곧 나와서 예배하고 그간의 일을 다 말씀드리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옥천에서 왔으니 필시 염탐꾼이겠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말씀드리지 않았을 때는 그러합니다만 말씀드렸으니 그렇지 않습니다.”
“너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을 가르치시는가?”
“항상 대중을 가르치시기를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어보고 장좌하여 눕지 말라.」 하셨습니다.”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하는 것은 병이지 선이 아니며, 마냥 앉아 있는 것은 몸을 구속하는 것이니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한 덩어리 냄새나는 뼈다귀가 
어찌 공과를 세우리오.

지성이 다시 절하며 말하였다.
“제자가 신수대사의 처소에 있으면서 도를 배운지 9년이 되었으나 깨닫지 못하였는데 지금 화상의 한 말씀을 듣고 문득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자에게 생사의 일이 크니 화상께서 대 자비로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들으니 너의 스승은 학인들에게 계, 정, 혜의 법을 가르친다 하시던데 알지 못하겠으니 너의 스승이 계, 정, 혜를 어떻게 설하시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신수대사께서는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 이름 한다.」 라고 설하시는데, 화상께서는 어떠한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에게 줄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너를 속이는 것이 되느니라. 단지 경우를 따라 얽힘을 풀어줄 뿐인데 이름을 빌려 말한다면 삼매라 하느니라. 너의 스승이 말씀하시는 계, 정, 혜는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내가 보는 계, 정, 혜와는 다르구나.”
“계, 정, 혜는 다만 한가지인데 어찌 다를 수 있습니까?”
“너의 스승의 계, 정, 혜는 대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지만 나의 계, 정, 혜는 최상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깨달아 앎이 같지 않으므로 지견이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너는 내가 말하는 것이 그와 같은지 다른지 들어보아라. 내가 말하는 법은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체(體)를 여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상으로 설하는 것이라 하는데 자성을 항상 미혹하게 하느니라. 모름지기 알아라. 일체의 만법이 모두 다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느니라. 이것이 참된 계, 정, 혜의 법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자리에 잘못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자리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자성의 혜요,
마음자리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이 자기의 금강이요,
몸이 가고 몸이 옴이 본래 삼매이니라.

지성이 게송을 듣고 뉘우쳐 감사하며 한 게송을 바치었다.

오온의 허깨비 몸이여
허깨비가 어찌 구경(究竟)이리요,
진여로 돌이켜 나아가면
법이 도리어 깨끗하지 못하리.

조사가 “그렇다.” 하시고 다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네 스승의 계, 정, 혜는 작은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고 나의 계, 정, 혜는 큰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만일 자기의 성품을 깨닫고서 보리나 열반을 세우지 않고 또한 해탈지견도 세우지 않으면 한 법도 가히 얻을게 없어서 바야흐로 만 법을 세울 수 있느니라.
만일 이 뜻을 알면 이것을 부처님의 몸이라 하며 보리와 열반이라 하며 해탈지견이라 하느니라.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가고 옴이 자유로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경우에 따라 작용을 하고 물음에 따라 답하며 널리 화신을 나타내지만 자성을 여의지 않으므로 곧 자재한 신통과 유희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것을 견성이라 이름 하노라.”
지성이 다시 조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조사가 말씀하셨다.
“자성은 그릇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어서 순간순간이 반야를 비추어 보아 항상 법이라는 생각을 여의고 자유자재하며 가로 세로 모두 얻으니 무엇을 세우겠느냐.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서 몰록 닦으면(돈오 돈수) 늦고 더딤이 없으므로 일체 법을 세우지 않느니라. 모든 법이 적멸한데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지성이 예배드리고 모시기를 원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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