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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을 부촉하다


조사께서 하루는 문인인 법해와 지성과 법달과 신회와 지상과 지통과 지철과 지도와 법진과 법여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 내가 멸도한 후에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될 것이므로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지를 잃지 않게 하리라.


먼저 삼과 법문에 의거하여 움직이고 작용하는 36가지 상대를 들것이니 나오고 들어감에 두 끝을 여의고 일체 법이 자성을 떠나지 않았음을 설하리라.
갑자기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법을 묻거든 말을 모두 쌍으로 하고 모두 상대법을 취하여 오고 감을 서로 원인으로 하고 마침내는 두 법을 모두 없애어 다시 갈 곳이 없게 하여라.
삼과 법문이라 하는 것은 <음> <계> <입>을 말한다.
음은 곧 5음이니 색, 수, 상, 행, 식 이것이고, 
입은 곧 12입으로 밖의 6진인 색, 성, 향, 미, 촉, 법과 안의 6문인 안, 이, 비, 설, 신, 의 이것이며, 
계는 18계로 6진과 6문과 6식 이것이니라.
자성이 만법을 머금었으므로 함장식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키면 곧 의식을 굴리는 것이다.
6식을 내어 6문을 나와 6진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18계가 모두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성이 만일 삿되면 18사(邪)가 일어나고 자성이 만일 바르면 18정(正)이 일어나느니라.
만일 악하게 쓰면 중생의 용(用)이고 착하게 쓰면 부처님의 용이니라.
작용은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지는가?
자성을 말미암아 상대법이 있느니라.
바깥 경계인 물질세계에는 다섯 가지 상대가 있다.
하늘과 땅이 상대고, 해와 달이 상대고, 밝음과 어두움이 상대고, 음과 양이 상대고, 물과 불이 상대다.
법상을 나타내는 말에는 열두 가지 상대가 있다.
말과 법이 상대고, 유와 무가 상대며, 빛깔과 빛깔 아닌 것이 상대고, 모양과 모양 아닌 것이 상대며, 번뇌와 번뇌 없음이 상대고, 물질과 허공이 상대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고, 맑음과 흐림이 상대며, 범부와 성인이 상대고, 승려와 속인이 상대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상대다.
이것이 열두 가지의 상대다.
자성이 작용을 일으키는 데는 열아홉 가지의 상대가 있다.
긴 것과 짧은 것이 상대고, 삿된 것과 올바른 것이 상대며, 어리석은 것과 지혜로운 것이 상대고, 모르는 것과 앎이 상대며, 어지러움과 고요함이 상대고, 자비로움과 독한 것이 상대며, 계(戒)와 그릇됨이 상대고, 곧은 것과 굽은 것이 상대며, 참된 것과 헛됨이 상대고, 험한 것과 평탄한 것이 상대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고, 늘 있음과 덧없음이 상대며, 불쌍히 여기는 것과 해치는 것이 상대고, 기쁜 것과 성내는 것이 상대며, 주는 것과 인색한 것이 상대고,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이 상대며,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상대고, 법신과 육신이 상대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다. 
이것이 곧 열아홉 가지의 상대이니라.
이 서른여섯 가지 상대법을 만일 쓸 줄 알면 곧 도가 모든 경전의 법을 꿰뚫어 출입함에 두 가지 끝을 여의어서 자성을 움직여 쓰는 것과, 사람과 함께 말함에 있어서 밖으로는 상에 대하여 상을 떠나고 안으로는 공에 대하여 공을 떠나느니라.
만일 상에 완전히 집착하면 사견을 기르고 만일 공을 완전히 집착하면 무명을 기르느니라.
공에 집착한 사람은 경을 비방하여 바로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문자를 이미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도 부당한 것이니 이런 말은 다만 문자의 모습일 뿐이다.
또 말하기를 곧은 도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우지 않는다는 두 글자도 또한 문자이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곧 그를 비방하기를 문자에 집착한다 하는데, 너희들은 모름지기 알아라.
스스로 미혹함을 오히려 옳지만 불경까지 비방하겠느냐, 절대 경을 비방하지 말아라.
죄의 업장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만일 밖으로의 모습에 집착하여 법을 만들어서 참(眞)을 구하거나 혹은 도량을 넓게 세워서 유와 무의 허물과 근심을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몇 겁이 지나더라도 견성하지 못할 것이니, 다만 법을 듣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이며, 또 백가지 물건을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 수행이라 하여 도의 성품을 막히게 하지 말아라.
만일 설법을 듣고 닦지 아니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도리어 삿된 생각을 내게 하니 다만 법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상에 머무름이 없이 법을 베풀어라.
너희들이 만일 깨닫고 이를 의지하여 말하고 이를 의지하여 쓰며 이를 의지하여 행하고 이를 의지하여 지으면 곧 근본 종지를 잃지 않으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뜻을 물을 때 유를 물으면 무로써 대답하고, 무를 물으면 유로써 대답하며, 범부를 물으면 성인으로써 대답하고, 성인을 물으면 범부로 대답하여 두 도가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이 나게 할 것이며, 한번 물으면 한번 대답하고, 나머지 물음을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면 이치를 잃지 않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느냐하면 대답하기를 밝음이 <인>이고 어두움이 <연>이 되어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두움이다. 라고 하여라.
밝음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고 어두움으로써 밝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 나머지 물음에도 모두 이와 같이 하여라.
너희들이 후에 법을 전할 때에도 이것에 의지하여 서로 바꾸어 가르쳐서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조사께서 태극 원년 임자년(712년) 7월에 문인에게 명하시어 신주 국은사에 가서 탑을 세우게 하시고,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독촉하여 다음해 늦여름에 낙성을 하였다.
7월 1일에 문도 대중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8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이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빨리 물어 보아라. 
너희들의 의심을 부수어서 너희로 하여금 어리석음이 없게 하리라. 
내가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없을 것이니라.”
법해 등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데 오직 신회만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울지도 않았기에 조사가 말씀하셨다.
“신회소사가 오히려 선과 선하지 못함이 평등함을 얻었으며, 헐뜯는 것과 칭찬하는 것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며, 슬픔과 즐거움을 내지 않는 마음을 얻었구나.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했으니 몇 해씩 산에 있으면서 결국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데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근심하는 것이냐? 
만일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여 근심한다면 내가 스스로 갈 곳을 알고 있느니라. 
내가 만일 갈 곳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했을 것이니라.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대체로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가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슬퍼하며 울지는 않으리라.
법의 성품에는 본래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이 없으니 너희들은 모두 앉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리라.
이름은 <진가동정게>라 하는데, 너희들이 이 게송을 외워서 지니면 나의 생각과 같아질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종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이 예를 올리고 조사에게 게송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자 말씀을 하셨다.

일체가 참다움이 없으니 
참이라고 보지 말지어다.
만일 참인 줄 보는 자는 
그 소견이 참되지 못하리.

만일 스스로 참다움이 있다면 
거짓을 여윈 즉 마음이 참이니
스스로 마음에 거짓을 여의지 않으면 
참은 없거니 어느 곳이 참이겠느냐.

유정은 곧 움직일 줄 알고 
무정은 움직일 줄 모르니
만일 움직이지 않는 행을 닦으면 
무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만일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찾으려면 
움직이는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다.
움직이지 않음이 부동이라면 
무정은 부처님 될 종자도 없겠구나?

능히 상을 잘 분별하되 
제일의(구경의 진리)에 움직이지 말아라.
다만 이 같은 소견을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작용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알리니 
힘써 모름지기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지혜로 생사를 돌이켜 집착하지 말라.

만일 말끝에 서로 맞으면 
곧 불법을 같이 의논하되
만일 실답게 상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여라.

이 종은 본래 다툼이 없는 것이라. 
다투면 곧 도의 뜻을 잃어버리며
거꾸로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빠지리라.

때에 대중들이 조사께서 설하신 게송을 듣고 모두 다 절하였고 아울러 조사의 뜻을 알았다.
각각 마음을 거두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았다.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지 못할 것을 알고 법해상좌가 다시 절하며 여쭙기를, 
“화상께서 입멸하신 뒤에 가사와 법은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맡기십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대범사에서 설법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법보단경이라고 기록하여 둔 것이 유행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이것을 수호하고 번갈아 가며 서로 전해 주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다만 이 말대로만 하면 곧 정법이라 할 것이니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그 가사는 맡기지 않겠노라.
대체로 너희들은 믿음의 근기가 순박하고 무르익었으며 의심이 전혀 없으므로 큰일을 감당할 만하지만 선조인 달마대사께서 부탁하며 주신 게의 뜻에 의거하여 옷은 마땅히 전하지 않을 것이니라.” 하시며 게송을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구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려 함인데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려서 
열매가 자연히 맺으리라.

“선지식아, 너희들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의 설법을 들어라. 
만일 일체종지를 성취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에 통달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언제 어디서나 상에 머물지 않아서 그 상 가운데 있으면서 미워하거나 애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또 취하거나 버리지 아니하며 이익과 성취와 무너짐 등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편안하고 한가로우며 아주 고요하고 허공처럼 비어 통하고,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이것을 일상삼매라 한다.
만일 언제 어디서나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더라도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참으로 정토를 이루면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에 종자가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가 여무는 것과 같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내가 지금 법을 설하는 것은 때맞춰 비가 내려 대지를 두루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고 너희들의 불성은 비유하건대 모든 종자가 이 비를 만나 흠뻑 적셔져서 모두 다 싹이 트는 것과 같으니라.
나의 뜻을 이어 받는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나의 행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묘한 과보를 얻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의 땅이 모두 종자를 머금어서 
널리 비를 내리면 다 싹이 트리라.
몰록 깨달아 꽃의 정(情)이 다하면
보리의 열매는 절로 이루리라.

게송을 마치고 말씀하시길 “그 법이 둘이 없어서 그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그 도가 청정하여 모든 상이 또한 없으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고요함을 관하려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아라. 
이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니 각각 스스로 힘써서 인연을 따라 잘 가거라.”
이에 대중들이 절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7월 8일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신주로 돌아가고자 하니 너희들은 속히 배와 돛대를 손질해 놓아라.”
대중이 슬퍼하며 더 계시기를 간곡히 원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열반을 보이시듯이 오면 반드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나의 이 몸뚱이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느니라.”
“조사께서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십니까?”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지라 올 때를 말로 할 수 없느니라.”
“정법안장은 어떤 사람에게 전하십니까?”
“도 있는 자가 얻을 것이고 무심한 자가 통할 것이다.”
“후에 난이 없겠습니까?”
“내가 죽은 후 5~6년이 되면 어떤 사람이 내 머리를 가지러 올 것이니 나의 예언을 들어라.
머리를 받들어 친히 공양하고자 함에(김대비), 입 속에 먹을 것을 구하는 장정만의 난을 만날 때 양유(양간, 유무첨)가 관이 되리라.
내가 가고 70년이 되면 두 보살(마조, 방거사)이 동방에서 오는데 한 사람은 출가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재가자인데 동시에 크게 교화하여 나의 종(宗)을 세우고 가람을 짜임새 있게 하여 법을 이을 이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위로부터 불조께서 나타나신 이래 몇 대를 전해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고불(옛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그 수가 한량없어서 가히 헤아리지 못하니 
이제 7불을 처음으로 삼으면 과거 장엄겁의 비바시불과 시기불과 비사부불과 지금 현겁의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과 가섭불과 석가모니불이 7불이 되는데 석가모니불이 
처음에 마하 가섭존자에게 전하셨으니, 
제 이는 아난존자고, 
제 삼은 상나화수 존자며,  
제 사는 우바국다 존자고, 
제 오는 제다가 존자며, 
제 육은 미차가 존자고, 
제 칠은 바수밀다 존자며, 
제 팔은 불타난제 존자고, 
제 구는 복타밀다 존자며, 
제 십은 협 존자고, 
십일은 부나야사 존자며, 
십이는 마명대사고, 
십삼은 가비마라 존자며, 
십사는 용수 대사고, 
십오는 가나제바 존자며, 
십육은 라후라다 존자며, 
십칠은 승가난제 존자며, 
십팔은 가야사다 존자고, 
십구는 구마라다 존자며, 
이십은 사야다 존자고, 
이십일은 바수반두 존자며, 
이십이는 마나라 존자고, 
이십삼은 학륵나 존자며, 
이십사는 사자 존자고 
이십오는 바사사다 존자며, 
이십육은 불여밀다 존자고, 
이십칠은 반야다라 존자며, 
이십팔은 보리달마 존자이니 이 땅에 초조가 되고, 
이십구는 혜가 대사고, 
삼십은 승찬 대사며, 
삼십일은 도신 대사고, 
삼십이는 홍인 대사이니, 
혜능은 삼십삼 조(祖)가 되는 것이다.
위로부터 모든 조사께서 이와 같이 각각 이어 받으셨으니 너희들도 이 뒤에 번갈아 가며 전하고 틀리거나 그르침이 없도록 하여라.


대사가 개원 원년(713년) 계축년 8월 3일에 국은사에서 재를 파하시고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지위를 따라서 앉아라. 내가 너희들과 이별하리라.”
법해가 말씀드리길 “화상께서는 무슨 교법을 남기시어 후대에 미혹한 사람으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시겠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후대에 미혹한 사람이 만일 중생임을 알면 그것이 곧 불성이고 만일 중생임을 알지 못하면 만겁동안 부처님을 찾아도 만나기 어려우니라.
내가 이제 너희를 가르쳐서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게 하고 자기 마음의 불성을 보게 하리니 부처님을 보고자 하면 다만 중생임을 알아라.
중생이 부처를 미혹하게 한 것이지 부처가 중생을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니니, 자성을 만일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요. 자성이 만일 어리석으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자성이 평등하면 중생이 바로 부처고 자성이 삿되고 험하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너희들의 마음이 만일 험하고 굽으면 곧 부처가 중생 가운데 있고 한 생각 평등하고 곧으면 곧 중생이 성불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며 자기의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일 불심이 없으면 어느 곳에서 참 부처를 구하리오.
너희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아라.
밖으로는 한 물건도 세울 것이 없다.
모두 이 본심이 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마음이 생기면 온갖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온갖 법이 없어진다.」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한 게송을 남기고 너희들과 이별하리니 이름이 <자성진불게>이니라.
후대 사람이 이 게의 뜻을 알면 스스로 본심을 보아서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진여자성이 참 부처요, 
사견과 삼독이 마왕이다.
삿되고 어리석을 때 악마가 집에 있고 
견해가 올바를 때 부처가 방에 있네.

성품 가운데 사견으로 삼독이 생겨나면 
곧 마왕이 집에 와서 살고
정견으로 스스로 삼독의 마음을 없애면 
마(魔)가 변하여 부처가 되며 참일 뿐 거짓은 없네.

법신과 보신과 화신이여! 
삼신이 본래 한 몸이니
만일 성품 가운데를 향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부처를 이루는 보리의 원인이니라.

본래부터 화신은 깨끗한 성품에서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이 항상 화신 가운데 있네.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정도를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이 없으리라.

음란한 성품이 본래 깨끗한 성품의 씨앗이요, 
음란함을 없애면 곧 깨끗한 성품의 몸이니
성품 가운데에 각각 오욕을 떠나면 
견성이 찰나이고 곧 참이니라.

금생에 만일 돈교의 문을 만나면 
홀연히 자성을 깨달아 세존을 보지만
만일 수행하여 부처를 찾으려 하면 
어느 곳에서 헤아려 참을 구할지 모르겠구나.

만일 마음 가운데에 스스로 
참을 본다면 참이 곧 성불하는 원인이니라.
자성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마음을 일으킴이 다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돈교법문을 이제 남겨두니 
세상 사람을 제도할 때 모름지기 스스로 닦게 하라.
장차 도 배우는 자에게 알렸으니 
이런 소견을 짓지 아니하면 크게 유유하리라.

조사가 게송을 마치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살아라. 내가 멸도한 후에 세속의 정으로 슬피 울지도 말고 사람의 조문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고 또한 정법도 아니니라.
다만 자기의 본심을 알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면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릇됨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너희들의 마음이 어리석어서 나의 뜻을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지금 다시 너희에게 당부하며 너희로 하여금 견성하게 하니 내가 멸도한 후에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는 날과 같을 것이고 만일 나의 가르침을 어기면 비록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라.” 
다시 게송을 읊으셨다.

올올히(모든 것을 초월하여 태연함) 선을 닦지 않고
등등히(자재 무애하며 당당함) 악도 짓지 않는지라.
적적하여 보고 듣는 것이 끊어지고 
넓고 넓어 마음이 걸림이 없구나.

조사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단정히 앉아 계시다가 삼경이 되자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간다.” 하시며 조용히 돌아가시니 그때에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흰 무지개가 땅에 꽂혔으며 숲과 나무들이 하얗게 변하고 짐승들이 슬피 울었다.


11월에 광주, 소주, 신주 세 군(郡)의 관료와 문인과 승(僧)과 속(俗)이 서로 진신을 모셔가려고 다투느라 갈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향을 사르고 빌기를 “향의 연기가 가리키는 곳이 조사께서 돌아가실 곳입니다.” 하니 
그때 향의 연기가 바로 조계를 향하여 곧게 뻗치므로 11월 3일에 신감(시신을 모신 관)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의발을 옮겨 돌아왔다.
다음 해 7월 25일에 신감을 꺼내어서 제자 방변이 향을 그 위에 바르고 문인들이 머리를 취하리라는 예언을 생각하여 먼저 철판과 옻칠을 한 천으로 조사의 목을 단단히 보호하여 탑에 모셨더니 홀연히 탑 안에서 흰 빛이 나와 하늘로 뻗어 올랐는데 3일 만에 비로소 흩어지므로 소주자사가 조정에 아뢰었고 칙명을 받들어 비를 세워서 조사의 도행(道行)을 기록하였다.
조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스물넷에 의발을 전해 받으시고 서른아홉에 스님이 되어 설법을 하시며 중생을 이롭게 하신 것이 삼십칠 년이었다.
종지를 얻어 법을 이은 자가 마흔 세 명이고 도를 깨달아 범부를 넘어선 사람은 그 수를 알 수가 없었다.
달마가 전하신 믿음의 징표인 가사와 중종이 주신 마납가사와 보배발우와 방변이 새긴 조사의 진영과 그 밖의 도구들은 탑을 주관하는 시자가 맡아서 영원히 보림 도량에 두게 하고 단경을 유전하여서 종지를 나타내고 삼보를 일으켜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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