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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사위어가는 질화로의 재처럼 한평생을 독도의 지킴이로 살았던 고(故)김성도(78세)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란 없을지 모르나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독도 주민으로서 독도를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마치 마른나무에 물 말라가듯 지병인 간질환 치료를 대구에서 받아왔으나 간 이식이 불가능 할만큼 상태가 위독하여 지난 9월 11일부터 서울 아산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해오다 우연의 일치일까. 10월 25일 독도의날을 4일 앞둔 지난 10월 21일 오전1시 30분별세했다 1900년 고종(高宗)37년 공포한 10월 25일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制定)을 기념하는 날이라 대한민국 영토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날이다. 

 



100년 뒤인 2000년 독도 수호 운동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을 제안했고 2010년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술국치100주년을 맞아 민간 취지에 서독도의 날을 선포(宣布)한 날이다. 
고(故)김성도씨가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거주해오다 1991년 아내와 함께 주민등록상 주소를 울릉읍 독도리 산20번지로 전입한 뒤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5월초까지 독도에서 생활해왔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그는 독도의 샘물인 물골로 올라가는 998계단을 직접 만들며 생활해 오다 어업 민숙소가 개축되고 선가장 시설이 준공되자 국민성금으로 마련된 어선인 독도호를 제공받아 어업에 종사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고(故)김성도 주민은 지난 1965년부터 독도에 입도해 서도에 움막을 짓고 건조장을 만드는 등 초인적인 생활을 해온 첫 독도 주민 최종덕씨를 도와 70년대부터 평행을 독도에서 보냈다. 
독도 이장을 지낸 김성도 이장은 2014년부터 독도 선착장에서 방문객에게 티셔츠 해산물을 판매해 매출을 올린데 대한 부가가치세 14만 5,430원을 납부해 독도 주민이 독세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독도 영주권 강화에 표상의 중심이 돼왔다 독도 주민에게 처음 부과된 국세로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법 근거가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독도에 최초로 호적을 이전한 사람은 송재욱씨로 1987년 11월 1일에 일가친척 여섯명과 함께였다. 
그후 김성도 김신렬 부부에 이어 1999년 11월13일 황백현씨가 독도로 주소를 옮긴 뒤 호적 전적자(轉籍者)가 계속 늘어나 623가구에 2,102명이 실제 거주는 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도로 이전한 상태다. 
독도에는 여러 가지 명폐석과 안내 표지석 국기석 등 시설물이 설치되 있다 군사시설이나 등대 및 기상관측시설 각종 설비시설 등 주로 동도에 집중적으로 설치하였다. 
특히 독도를 수호하다 순직한 경찰 공무원 다섯기의 위령비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열네개의 명폐석은 독도의 파수꾼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외에 독도 수호신인 독도 바위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동도와 서도 사이 물길을 두고 북쪽에 위치한 삼형제 굴바위와 서도의 동북단에 위치한 파식대 지상부에 돌출된 전설속 수호신인 해태의 형상을 띠고 있다. 
독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동단의 화산바위섬인 동도의 동쪽 끝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등대다 최초의 점등은 1954년 8월 등대 요원이 상주하며 운항하는 선박의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 
독도 경비대원은 경북지방 경찰청 소속으로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경비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병수 울릉군수는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라는 사실을 몸으로 입증하기 위해 평생을 지켜온 고인의 뜻을 기려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영유권 문제는 우리가 강해질 때 그들은 수그러질 것이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의 땅 독도 우리가 지키고 이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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