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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하이데커가 인간은 죽음을 향해 있는 존재라 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것은 남과 같은 삶이지만 어떻게 살다가느냐가 우리의 뒷모습인 것이다. 

원조 국민MC, 현역 최고령MC,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일요일의 남자, 숱한 애칭으로 불리며 매주 일요일 “전국 ~ ”이라는 외침과 함께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KBS1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가 95세의 일기로 지난8일 오전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송해 할아버지 마지막 모습

송해의 마지막 전국노래자랑 출연[D]

1927년생인 송해는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에서 출생했다 고인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를 헤쳐 오면서 서민과 함께한 코미디언이자 가수 그리고 방송인이었다. 

본명은 송복희 만22세가 되던 1949년 황해도 해주 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 23세때인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평도로 피난왔으며, 

연평도에서 미군 빅토리 상륙함에 실려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바다해자를 따와서 송해(宋海)라고 주민등록증에 올리게 되었다. 

부산 현지에서 육군 통신학교에 입대한 후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1953년 7월 27일 모스 부호로 전군에 휴전 협정 타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당시 모스 부호 타전을 여러차례 방송에서 입으로 재연해 보이곤 했다 연예계는 1955년 창공 악극단에서 가수를 했지만 악단 공연 특성상 사회자로 진행하면서 구수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 대중문화가 극장에서 방송으로 옮겨가면서 TV로 활동 무대인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이순주, 배삼룡, 구봉서 등과 한 무대에 섰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과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974년부터 17년간 진행했다 1988년 부터는 KBS1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오프닝 멘트에서 송해는 “전국~ ”하고 외치면 관중들이 “노래자랑” 이라고 화답하는 장면은 해당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때부터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은 내 평생 교과서라며 세 살먹은 아이한테도 배울게 있다는 걸 경험했다 관객이 단 한명이 있어도 1만명이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같기도 했다. 

2003년 전국노래자랑 평양편에서 한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 라고 안타까운 작별 인사를 전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공개 녹화를 통해 1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유족으로는 두딸이 있다 부인 석옥이씨는 지난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송해는 고향땅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펼치는 것이 생전 소원이었지만 끝내 그 꿈은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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