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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매혹적인 녹색의 향연 정취를 만끽 할 수 있는 계절도 매미의 울음소리 따라 가버리고 처서(處暑)에 가을이 오는 저 넘어 숲속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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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자락 유일한 남자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본이름; 김봉남 金鳳男 75세)이 지난 8월12일 오후 7시25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2005년 5월 대장암 및 담석수술을 받아 그간 항암치료를 해 왔고 지난 7월 12일 폐렴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 졌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헤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앙드레 김은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재 서울,은평 진관동)태생으로 신도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으로 피난 어렵게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전쟁은 그에게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했지만 어려서부터 의상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16세이던 1952년 부산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직수입 영화를 보며 의상디자이너의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앙드레김 1988년

(1988년 서울 패럴림픽 기념 패션쇼)

그 후 서울로 올라와 디자이너 최경자가 국제 복장학원을 설립하자 1기생으로 입학해 본격적인 디자이너 수업을 받았다. 국제 복장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그는 1962년 서울반도 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같은 해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라는 이름의 작은 의상실을 열었다.
의상실에 붙인 앙드레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세계적인 디자인이 되려면 이름도 세계적으로 독특하게 기억하기 좋은 외국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출세하게 된 것은 철학적으로 본명(本名) 덕도 톡톡히 보았다. 김봉남은 쇠금(金)황금에 새봉(鳳)자로 봉황(鳳凰)을 뜻하며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 수컷은 봉(鳳)이고 암컷은 황(凰)이라함은 닭의 머리에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5색의 깃털을 지니고 5음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봉황새의 자태는 화려하며 옷가지의 패션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 남성 패션디자인이 된 그는 남성디자이너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속에서도 개성있는 디자인의 창조에 새로운 것을 고안해 내는 노력으로 디자인계를 개척한 선구자 역할을 해냈다.
1966년 파리 컬렉션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해외로 처음 출전한 그는 세계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주목받는 디자인으로 1인자가 되었다.
해외에서 돌아온 앙드레 김은 영화배우 엄앵란. 김지미. 문희. 윤정희 등 톱스타들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패션계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도 자리를 굽혔다.
국경과 시대의 유행을 초월한 작품세계와 차원 높은 예술성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위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88올림픽때에는 국가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하는 등 유명인사들의 옷을 디자인하는 명성을 쌓았다.

2004년 앙드레김

(2004년 베이징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이영애이서진과 함께)

 

2006년 12월 처음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그리고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열린 패션쇼에는 이집트 대통령 영부인 수잔 무바라크 여사가 참석했으며 그 후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인도네시아 발리 등 역사유적지와 세계적인 명소를 중심으로 패션쇼를 열어 그 만이 독창적인 패션쇼를 선보이는 등 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1977년 패션디자인으로서 최초로 문화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1982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문화공로훈장, 2006년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 2007년에는 패션디자인 부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는 그의 패션쇼가 열렸던 11월6일을 앙드레 김의 날로 선포했다. 한복의 결 따라 일곱 결 드레스로 대변되는 그의 패션 키워드는 꿈과 환상으로 여성의 지성미와 우아함을 강조하는 패션세계를 추구했다.
다음 시즌 패션쇼에서 유행할 의상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트렌드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패션 철학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을 패션쇼 무대에 세워 대중이 패션에 손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했다.
뛰어난 디자인 능력뿐만 아니라 앙드레 김은 178cm의 건장한 체격에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영어를 섞어 쓰는 특이한 말투와 백의 민족을 상징하는 흰옷을 고집하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하고 이마 윗부분을 타원형으로 까맣게 칠한 스타일, 진한 눈가에 메이크업 등 그 만의 상징이었다.
1999년 불거진 정계의 옷 로비사건으로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자리에서 본명을 알렸다가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지금까지 골프웨어, 홈패션, 아동복 의상 외에도 보석, 속옷, 안경, 가구, 도자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역량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의외로 소탈했고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따뜻한 인간애로 해마다 유니세프 패션쇼를 열면서 여러 자선행사를 통해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1등급 훈장인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하였으며 임태희 비서실장이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1962년 춥고 배고팠던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앙드레 김은 국경과 시대 유행의 한계를 초월한 작품의 세계에 차원 높은 예술성의 패션디자인의 지평선을 열었던 앙드레 김은 이젠 가고 없지만 그의 패션의 신화는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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