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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지에 의해 파멸당한 계급,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날로 그 생활조건이 악화되고 사멸되어 가고 있는 계급은 봉건 귀족만이 아니다. 중세의 시민과 소농민은 현대 부르주아지의 선구자였다. 상공업의 발전이 뒤진 나라들에서는 이 계급들이 아직도 신흥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잔존하고 있다.
 현대문명이 성숙한 나라들에서는 소부르주아라고 하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어왔다. 이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부르주아사회의 보완물로서 스스로를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소부르주아 계급의 개별 성원들은 경쟁의 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고 있다. 현대 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독립된 한 부분으로서 자기 지위를 잃고, 공업과 농업과 상업에서 감시인이나 관리인 혹은 점원으로 대체될 시점이 임박하였음을 목도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이 농민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선 문필가들이 부르주아 체제를 비판할 때 농민과 소부르주아의  기준을 사용한 것이나, 이들 중간 계급들의 관점에서 노동계급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나선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시스몽디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러한 문헌의 우두머리이다.   
 이 사회주의 학파는 현대적 생산 관계의 여러 모순을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였으며, 경제학자들의 위선에 찬 변명들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그리고 기계 및 분업의 파괴적 작용,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중, 과잉 생산, 공황, 소부르주아와 소농민의 필연적 몰락,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 생산의 무정부성,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불균형, 국가 상호간의 피나는 경제전쟁, 낡은 도덕과 낡은 가족 관계 및 낡은 민족성의 와해를 반박할 여지없이 증명하였다.
 그러나 설사 그 긍정적인 목적에서 보더라도,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생산 및 교환의 낡은 수단을 복구시키길 열망하며, 더불어 낡은 소유관계와 낡은 사회를 복구시키길 바란다. 혹은, 생산과 교환의 현대적 수단들에 의하여 이미 파괴되어 버렸으며, 파괴될 수밖에 없는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으로 생산과 교환의 현대적 수단들을 또다시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한다. 어느 경우나 반동적인 동시에 공상적이다.
 제조업에서는 길드 동맹이, 농업에서는 가부장적 관계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가 내놓는 마지막 약속이다.
 사람을 도취시키는 자기 기만의 모든 효과들이 완고한 역사적 사실들 앞에서 무력해지자 결국 이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우울증의 비참한 발작으로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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