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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중생들이 삼계에 태어나는 모습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두루 갖춰 짓는다면,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한량없는 겁을 지내느니라.
여섯 감관이 각기 따로 지어서, 저 짓는 업이 경계와 감관을 겸한다면, 이 사람은 8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몸과 입과 뜻의 셋으로 살생과 투도와 음욕을 짓는다면, 이 사람은 18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겸하지 않고 중간에 한번 살생을 범하거나 한번 투도를 범한다면, 이 사람은 36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여섯 감관 가운데) 보는 작용일 경우, 보는 작용의 한 감관만이 단독으로 한 업을 범한다면 이 사람은 108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이로 인하여 중생이 각기 따로 지을지라도, 세계 가운데서는 같은 몫의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망상으로 발생한 일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또 아난아, 이 중생들이 계율를 비방하여 파하거나 보살계를 범하거나 부처님의 열반을 훼방하거나 그 외 잡된 업을 지으면, 여러 겁에 걸쳐 불에 타는 고통을 당하다가, 죄 값을 다 치른 뒤에, 온갖 귀의 형체를 받느니라.
만일 본래 원인이 물건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물건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괴귀(怪鬼)라고 하며, 색욕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바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발귀(魃鬼)라고 하며, 유혹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축생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매귀(魅鬼)라고 하며, 한풀이를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충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고독귀(蠱毒鬼)라고 하며, 나쁜 기억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쇠퇴한 운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여귀(厲鬼)라고 하느니라.
오만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기를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아귀라고 하며, 거짓 꾸밈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어둠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염귀(魘鬼)라고 하며, 밝힘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정령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망양귀라고 하며, 일의 성취를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밝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역사귀(役使鬼)라고 하며, 무리지음을 탐내어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치른 뒤에 사람을 만나서 형체를 이루면 전송귀(傳送鬼)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 사람들은 다 순수한 정으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업의 불길이 다 타고 말라서 위로 벗어나 귀(鬼)가 되었으나, 이것들은 다 자기 망상의 업으로 불러들인 경계일 뿐이다. 만일 깨달음을 깨친다면 미묘하고 원만하게 밝아서 본래 아무것도 없느니라.
또 아난아, 귀의 업이 이미 다 없어져서 정과 생각의 둘이 다 함께 비어야만, 비로소 세상에서 원래 빚진 사람과 더불어 원한의 상대로 서로 만나서, 축생이 되어 그 묵은 빚을 갚게 되느니라.
물건에 붙은 괴귀가 물건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올빼미 종류가 되고, 바람에 붙은 발귀가 바람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흉조를 전하는 일체 이상한 종류가 되며, 축생에 붙은 매귀가 축생이 죽고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여우 종류가 되고, 충에 붙은 고독귀가 충이 멸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독을 품은 종류가 되며, 쇠퇴한 운에 붙은 여귀가 쇠퇴한 운이 다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회충의 종류가 되느니라.
기를 받은 아귀가 기가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먹히는 종류가 되며, 어둠에 붙은 염귀가 어둠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복종하는 종류가 되고, 정령과 어울린 망양귀가 어울림이 스러져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시절을 따르는 종류가 되며, 밝음에 붙은 신령한 역사귀가 밝음이 멸하여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흔히 길조를 전하는 일체 종류가 되고, 사람을 의지한 전송귀가 사람이 죽고 과보를 다 받고 나서 세상에 태어나면, 사람을 따르는 종류가 되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업의 불이 마르고 나서 그 묵은 빚을 갚느라고, 기어 다니는 축생이 된 것이다.
이 들도 또한 모두 자기의 허망한 업으로 불러들인 경계일 뿐이다. 만일 깨달음을 깨친다면 이 허망한 인연은 본래 아무것도 없느니라.

네가 말한 보련향 등이나, 유리왕이나 선성비구의 이러한 악업은 본래 자신이 밝혀서 일으킨 일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다. 자기 망상으로 불러들인 결과를 도로 자신이 받는 경계이며, 깨달음의 마음 가운데는 허망하게 떠서 엉겨 맺힌 망상이니라.


또 아난아, 축생으로 묵은 빚을 갚을 때, 만일 빚 갚는 중생이 갚을 몫보다 더 많이 갚았다면, 이들 중생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나머지 몫을 되돌려 받는다. 이때 만일 돌려줄 사람이 힘이 있고 복덕을 겸한다면,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버리기 전에 더 받은 노력을 되갚아 주겠지만, 만일 복이 없다면 다시 축생이 되어 나머지 몫을 갚게 되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령 돈과 재물을 빌려 쓰거나 그 힘을 부렸을 경우, 빚을 충분히 갚는다면 저절로 끝나겠으나, 만일 중간에 저 중생의 몸과 생명을 죽이거나 혹은 그 고기를 먹는다면, 이러한 상태는 미진겁이 지나가도 계속되어 서로 잡아먹고 서로 죽이기를 마치 바퀴가 서로 높낮이를 따라 구르듯 쉬지 않을 것이며, 사마타의 힘이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추지 않으리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올빼미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완고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흉조를 전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이상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여우의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용렬한 무리와 섞이느니라.
저 독을 품은 무리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사나운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회충의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미천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먹히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유약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복종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노역의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시절을 따르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글을 아는 무리와 섞이느니라.
저 길조를 전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총명한 무리와 어울려 섞이느니라.
저 순종하는 종류가 충분히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통달한 무리와 섞이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묵은 빚을 갚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모두 시작 없는 옛적부터 업에 얽혀 뒤바뀐 탓으로, 서로 태어나 서로 죽이면서, 여래도 만나지 못하고 바른 법도 듣지 못하여, 번뇌 가운데서 번뇌 그대로 굴러다니니 이런 무리들을 가련하다고 하느니라.


아난아, 또 사람에 속한 부류로서, 바른 깨달음을 의지하여 삼매를 닦지 않고, 따로 허망한 생각을 닦아서 생각을 보존하여 형상을 굳히고, 사람이 닿지 않는 산림의 깊숙한 곳에서 노니는 열 가지 신선(神仙)이 있느니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약 복용 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복용하는 도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지행선이라고 하며, 풀과 나무의 약물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약물의 도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비행선이라고 하며, 금석의 약물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은 가운데, 변화의 도를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유행선이라고 하며, 움직이고 멈추는 법을 견고하게 지켜서 기와 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공행선이라고 하며, 진액을 새롭게 하는 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윤택한 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천행선이라고 하느니라.
정색의 보존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순수한 정기의 흡수 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통행선이라고 하며, 주문 법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술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도행선이라고 하며, 일정한 사념을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생각하는 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조행선이라고 하며, 음양의 짝 맞추기를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감응의 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정행선이라고 하며, 변화의 이치를 굳게 지켜서 쉬지 않는 가운데, 깨달음을 원만하게 성취한 신선을 절행선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들은 다 사람들 가운데서 바른 깨달음을 닦지 않고, 별도로 마음을 단련하여 사는 이치를 깨달아서 천만 세의 수명을 누리는 가운데,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 속이나 큰 바다의 섬에 머물러 살고 있지만, 이들 역시 윤회하면서 허망한 생각으로 흘러 다닐 뿐이니, 삼매를 닦지 않으면, 과보가 다한 뒤에 다시 돌아와서 온갖 세상으로 흩어져 들어가느니라.

아난아, 모든 세상 사람이 영원한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아직은 처첩의 은혜와 사랑도 버리지 못했으나, 마음이 삿된 음행에 방탕하게 흐르지 않고 몸이 맑고 밝아서 광채가 나면, 죽은 뒤에 일월과 가까운 곳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4천왕천이라고 한다.

자신의 처방에서 음행을 즐기는 정은 엷고 미약하나, 청정하게 머무를 때 청정한 맛이 완전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뒤에 일월의 밝은 세상을 뛰어넘어 인간 세상의 최정상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도리천이라고 한다.

음욕의 경계를 만나면 잠시 어울렸다가 돌아서면 아무 생각이 없는 성품으로서, 인간 세상에 흔들림이 적고 고요함이 많은 사람은, 죽은 뒤에 허공세계에 밝게 안주하는데, 해와 달의 광명이 그 위까지 닿지 않으나, 이 사람들의 몸에는 저절로 광명이 비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수염마천이라고 한다.

언제나 조용히 지내다가 응해야할 접촉 상대가 왔을 때 어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 정밀하고 미묘한 세계에 올라가서 태어나는데, 아래의 인간과 하늘 세계들과 접하지 않고, 겁의 무너지는 시기에 이르러도 3재가 미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도솔타천이라고 한다.

나는 음행할 욕심이 없으나 너를 따라 관계한다는 심정으로, 뜻과 달리 관계를 맺으면서도 밀을 씹듯 맛을 모르는 사람은, 죽은 뒤에 뛰어넘어 변화의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낙변화천이라고 한다.

세상일에 마음이 없으나 세상일을 함께 행하고, 일을 행하며 어울리면서도 뚜렷이 초월한 사람은, 죽은 뒤에 변화의 세계와 변화가 없는 세계를 초월한 경계에 태어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타화자재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러한 여섯 하늘이 형체로는 비록 흔들림에서 벗어났으나, 마음의 자취는 아직도 어우러져 있으니, 이 하늘까지를 욕계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세상에서 마음을 닦는 사람들 중에 선나(禪那)에 의지하지 않아서 지혜는 없으나, 단지 몸을 잘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않고, 다닐 때나 앉을 때나 생각과 기억이 함께 없어져서, 애욕의 집착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욕계에 머물지 않고 뜻에 따라 몸이 범천의 백성이 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범중천이라고 한다.

음욕의 습기를 이미 없애고 음욕에서 벗어난 마음이 나타나서 모든 율의를 좋아하여 즐겁게 따라 행하는 사람은 즉시 범천의 덕을 행할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범보천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미묘하고 원만하여 위의에 모자람이 없고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면서 더욱 밝게 깨달아 나아가는 사람은 즉시 범천 대중을 잘 통솔하는 대범왕이 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대범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뛰어난 세 부류는 일체 고뇌의 핍박을 받지 않는다. 비록 바르게 진실한 삼매를 닦지 않았을지라도, 청정한 마음 가운데 온갖 번뇌가 동하지 않기 때문에 초선천(初禪天)이라고 한다.
아난아, 그 다음 범천은 범천 사람들을 도맡아 다스리며, 범행이 원만하고 맑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서, 고요한 맑음이 광명을 내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소광천이라고 한다.
광명과 광명이 서로 어울려 끝없이 빛나고 시방 경계를 비춰서 온 경계가 두루 수정유리로 변하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무량광천이라고 한다.
원만한 광명을 흡수하여 지녀서 교화의 바탕을 성취하고, 교화를 일으킴이 청정하여 적응하는 작용이 끝이 없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광음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뛰어난 세 부류는 일체 근심과 걱정의 핍박을 받지 않는다. 비록 바르게 진실한 삼매를 닦지 않았을지라도, 청정한 마음 가운데 거친 번뇌를 이미 눌렀기 때문에 이선천(二禪天)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러한 하늘 사람은 원만한 광명으로 소리를 성취하여, 소리를 펴서 묘한 이치를 드러내며 정교한 행을 일으키고 성취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통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소정천이라고 한다.
깨끗한 공이 앞에 나타나 이끌어 냄이 끝이 없어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성취한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무량정천이라고 한다.
세계와 몸과 마음이 일체 원만하게 깨끗하여 청정한 공덕을 성취하고, 훌륭한 의지처가 앞에 나타나서, 적멸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부류가 있는데,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변정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뛰어난 세 부류는 뛰어난 수순의 능력을 갖추고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가운데 한량없는 즐거움을 누리느니라. 비록 바르게 진실한 삼매를 닦지 않았을지라도, 안온한 마음 가운데 선정의 환희를 다 갖췄기 때문에 삼선천(三禪天)이라고 한다.
아난아, 다음 하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핍박을 받지 않아서, 괴로움의 원인이 이미 다 사라졌으나, 즐거움이 영원히 머물지 않고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지는 일이 있음으로, 괴롭고 즐거운 두 마음을 동시에 함께 버리니, 거칠고 무거운 모양이 사라져서 청정한 복의 성품이 생기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복생천이라고 한다.
고락을 떠난 평등한 마음이 원만 융통하여 뛰어난 견해가 청정하고 복이 막히지 않은 가운데, 묘한 수순의 능력을 얻어 미래를 다하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복애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하늘 가운데서 두 갈래 길이 있느니라. 한 갈래는 만일 이전 마음에 무량한 청정광명과 뚜렷이 밝은 복덕으로 닦고 증득하여 머물렀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광과천이라고 한다.
또 한 갈래는 만일 이전 마음에 고락을 함께 싫어하여 평등한 마음을 정밀하게 연마해서 끊임없이 계속하여 평등한 도를 원만하게 추궁하고, 몸과 마음이 함께 멸하여 마음의 생각을 재처럼 굳혀서 500겁을 지낸다면, 이 사람은 이미 원인이 생멸에 있기 때문에 생멸을 떠난 성품을 밝혀낼 수 없으니, 처음 반 겁 동안은 멸하고 뒤의 반 겁 동안은 생하느니라.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무상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네 뛰어난 부류는 일체 세간의 온갖 고락의 경계가 흔들 수 없으니, 비록 무위의 진실한 부동지는 아닐지라도, 닦아서 얻은 마음에 공덕작용이 순수하게 성숙되었기 때문에 사선천(四禪天)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이 가운데 또 오불환천이 있으니, 아래 세계에서 9품의 습기를 동시에 멸하여 없애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없어져서, 아래 세계에는 더 이상 머무를 데가 없으니, 고락을 떠난 마음으로 함께 한 공동체 가운데 안전하게 거처를 마련한 곳이니라.
아난아,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멸하여, 마음이 다투는 일과 어울리지 않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무번천이라고 한다.
기1와 괄2이 홀로 행하여 어울려 연마할 곳이 없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무열천이라고 하느니라.
시방세계를 보는 묘한 작용이 원만하게 맑아서 더 이상 티끌 경계의 형상과 일체 잠긴 때가 없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선견천이라고 한다.
정교한 보는 작용이 앞에 뚜렷이 나타나서 걸림 없이 도야(陶冶)하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선현천이라고 한다.
뭇 미세한 요소를 끝까지 추궁하여 색성의 본질을 다하고 경계가 없는데 들어가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색구경천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불환천은 저 모든 사선천의 네 천왕도 홀로 소문으로 듣기만 하고 부러워 할 뿐, 알지도 못하고 본 일도 없으니, 마치 지금 세상에 넓은 들과 깊은 산의 거룩한 도량에는 다 아라한들이 머물고 있으나, 세상의 거친 번뇌에 얽힌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이 열 여덟 하늘은 홀로 행하여 애욕의 어울림은 없으나, 아직 형체의 얽힘을 다 벗지 못했으니, 여기까지를 색계라고 하느니라.

또 아난아, 색구경천으로부터 그 사이에 또 두 갈래 길이 갈리느니라. 한 갈래는 만일 평등한 마음으로 지혜를 밝혀서 지혜의 광명이 원만하게 통하여 곧바로 번뇌의 세간을 벗어나서 아라한을 성취하고 보살 법에 들어갔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마음 돌린 대아라한이라고 하며, 또 한 갈래는 만일 평등한 마음에 있으면서 평등한 법도 싫어하여 벗어남을 성취하고 몸이 장애임을 깨달아서 장애를 소멸하여 공에 들어갔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공무변처라고 한다.
온갖 장애가 이미 소멸되고 장애가 없는 데서 그 없는 것마저 멸하여, 오직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미세한 세력 절반만이 남아있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한 부류의 곳을 식무변처라고 하느니라.
공과 색이 이미 없어지고 인식하는 마음도 모두 멸하여 시방이 고요한 가운데, 아득히 돌아갈 곳이 없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부류의 곳을 무소유처라고 한다.
식의 성품이 움직이지 않는 데서 멸법을 추궁하고 연마하여, 다함이 없는 가운데 다했다는 성품을 들춰 일으켜서, 있는 듯 하나 있지 않고 다한 듯 하나 다하지 않는 부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부류의 곳을 비상비비상처라고 하느니라. 이들은 공을 추궁하였으나 공의 이치를 다하지 못하고, 불환천에서 성인의 도만을 다한 부류인데,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라고 하며, 만일 무상의 모든 외도천에서 공을 추궁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번뇌에 미혹되어 들은 법이 없으면, 곧바로 윤회에 들어가느니라.

아난아, 이 모든 천상의 각각 천인들은 범부의 업보로 받은 결과이니, 그 과보가 끝나면 윤회에 들어가나, 저 하늘의 왕들은 곧 보살로서 삼매를 닦고, 점차 증진하여 성인들의 수행하는 길로 회향하느니라.
아난아, 이 사공천(四空天)은 몸과 마음을 멸하여 다하고 선정의 성품이 뚜렷이 나타나서, 업의 과보로 받는 색이 없으니, 이로부터 끝까지를 무색계라고 한다.
이것은 다 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망상을 쌓아 발생하는데서 허망하게 삼계(三界)가 있으니, 중간에 허망하게 일곱 갈래를 따라 빠지고 잠기는 중생들이 각기 그 종류를 따르는 것이니라.

또 아난아, 이 3계 가운데 네 종류의 아수라가 있느니라.
만일 귀신의 길에서 법을 지킨 힘으로 신통을 부려서 허공에 들어간다면, 이 아수라는 알로 태어나며 귀신의 갈래에 포함되느니라.
만일 하늘에서 복덕이 감하여 아래로 떨어져서 그 사는 곳이 일월과 가깝다면, 이 아수라는 태로 태어나며 사람의 갈래에 포함되느니라.
또 아수라의 왕이 세계를 붙들어 쥐고 힘이 넘쳐서 두려움이 없는 가운데, 범왕과 제석천과 사천왕과 패권을 다툰다면, 이 아수라는 변화로 태어나며 하늘 갈래에 포함되느니라.
아난아, 별도로 한 종류의 낮고 열등한 아수라가 있어서, 큰바다 한복판에 태어나서 물이 빠지는 곳에 잠겨 있는 가운데, 아침에는 허공에서 놀다가 저녁에는 물로 돌아와서 자는 경우가 있으니, 이 아수라는 습기로 태어나며 축생의 갈래에 포함되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사람과 신선과 하늘에서 아수라까지 일곱 갈래를 자세히 추궁해보면, 모두 다 어둠에 잠겨있는 온갖 인연변화의 모양으로서, 망상으로 태어나고 망상으로 업을 따르고 있으나, 미묘하고 원만하고 밝고 인연작용을 떠난 본마음에는 허공 꽃과 같이 원래 집착할 경계가 없으며 단지 한결같이 허망할 뿐, 더 이상 아무런 근거가 없느니라.
아난아, 이들 중생이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한 가운데, 생사에 굴러다니면서 한량없는 겁이 지나도록 청정한 진실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다 살생과 투도와 음욕을 따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살생과 투도와 음욕을 행하지 않으면, 살생과 훔침과 음욕이 없는 곳에 출생하리라. 살생과 투도와 음욕이 있는 곳은 귀신의 무리라고 하며, 살생과 투도와 음욕이 없는 곳은 하늘의 갈래라고 한다. 이렇게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번갈아 기울어져서 윤회의 근성이 일어나느니라.
만일 묘하게 삼매를 일으킬 수 있는 행자라면, 미묘하고 영원하고 고요하여, 있고 없는 둘이 없어지고, 둘이 없어진 자체도 사라져서, 오히려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 자체도 없을 텐데, 어찌 다시 살생하고 음행하고 훔치는 일을 따르겠느냐?
아난아, 세 가지 업을 끊지 못하는 것은 각 개인의 행위에 있으나, 각 개인의 행위로 인하여 여러 개인이 공동으로 받는 몫에는 일정한 곳이 없지 않느니라. 스스로 망상에서 발생하였으며 망상은 생긴 원인이 없으니, 추궁하여 찾을 길이 없느니라.
네가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미혹(迷惑)을 끊어야 한다. 세 가지 미혹을 다 끊지 않으면 비록 신통을 얻을지라도, 다 이 세간의 인연 따라 변하는 공덕작용일 뿐이다. 습기를 없애지 못하면 마구니의 길에 떨어지기 때문에, 망상을 없애려고 할지라도 허위만 배로 더할 뿐이니, 이 여래는 가련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허망하게 스스로 짓는 일이요, 깨달음의 허물이 아니니라.
이렇게 설해야 올바른 말이며, 이와 다른 설은 마왕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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