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00

24. 오음경계와 마장 ③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의 미친 견해는 모두 행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는 까닭에 이러한 깨달음이 나타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해서, 이러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미혹을 견해로 삼고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노라 하면서 대망어를 지어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을 간직해서 내가 열반한 뒤 말법에 전하여, 중생들이 두루 이 뜻을 깨달아서 마음의 마가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지키고 보호하여 삿된 견해를 소멸케 하여라. 또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한 뜻을 열어 깨닫도록 가르쳐서 더없이 높은 도에 헷갈린 길을 만나지 않게 하고, 마음에 조금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 없게 하여, 부처님이 목적한 청정한 뜻을 이루도록 하여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매를 닦아서 행음이 다 사라지면, 모든 세간의 본질인 깊고 맑게 요동하는 공동의 생명 틀에서 문득 미세하게 잠긴 주요매듭이 허물어지고, 또 보특가라가 업을 갚는 깊은 맥에서 감응이 멀리 끊어지니, 열반의 하늘에 장차 크게 깨달음이 밝으려는 조짐은 마치 나중에 우는 닭소리를 듣고 동쪽을 돌아보면 이미 정교한 빛깔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에 여섯 감관이 비고 고요하여 더 이상 치달음이 없고 안과 밖이 고요히 밝아서 들어가도 들어갈 곳이 없는데 이르러, 시방의 12류 중생이 생명을 받는 근원과 유서를 깊이 사무쳐서 유서를 보고 근원을 잡으니, 온갖 종류가 생명을 불러들이지 못한 가운데, 시방의 유정 경계에 이미 동화하는 능력을 얻게 되며, 정교한 색이 잠기지 않고 그윽한 생명의 비밀이 열려 나타나느니라. 이를 식음의 보금자리라고 한다.

만일 여러 종류들이 생명을 불러들이는 곳에서 이미 동화하는 능력을 얻은 가운데, 여섯 문(六門; 六根)을 소멸하고 합쳐 여는 능력을 성취하면, 보고 듣는 작용이 가깝게 통해서 서로 융통한 작용이 청정하여, 시방세계와 몸과 마음이 폐유리와 같이 안과 밖이 밝게 사무친 상태를 식음이 다 사라진 경계라고 하며, 이 경계에 이른 사람은 능히 명탁을 초월하느니라. 그 식음에 가린 까닭을 살펴보면, 있는 듯 하나 없는 모양이 허무한 뒤바뀐 망상(罔象虛無顚倒妄想)이 근본이니라.

아난아, 잘 알아야 한다.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식음에서 근원을 돌이켜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니 자기 몸에 따로 막혀 작용하는 감관을 합쳐 열고, 시방의 온갖 종류와 통하여 깨달아서 깨달아 아는 작용이 꼭 맞게 뚫려야만, 원만한 근원으로 들어갈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만일 돌아갈 곳에 영원한 진리의 원인을 세우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원인을 세운 곳에 원인을 두는 집착에 떨어져서, 사비가라와 같이 명제로 돌아가 의지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여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첫 번째 소득이 있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간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외도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아난아,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을 자체로 보고 '온 허공세계의 12류 중생은 모두 나의 몸속에서 한 종류로 흘러나왔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할 수 없는 데서 할 수 있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마혜수라와 같이 한없는 몸을 나타내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두 번째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세우고 할 수 있는 일의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나는 두루 원만하다는 대만천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돌아갈 곳에 돌아가 의지할 곳이라 하여, 스스로 의심하기를 '몸과 마음은 저기에서 흘러나왔으며, 시방의 허공도 다 저기에서 생겨났다'고 하면, 곧 모두 일으켜 떨쳐 흐르는 자리를 영원히 머무는 진리의 몸으로 여겨 생멸이 없는 법으로 아느니라. 이것은 생멸 가운데 있으면서 미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니, 이미 생멸을 떠난 진리도 모를 뿐 아니라, 생멸 자체도 미혹한 것이니라. 이렇게 편안히 머물러 미혹에 잠겨 있으면서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자재천과 같이 생각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세 번째 의지하는 마음을 세우고 허망한 헤아림의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뒤바뀐 원만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아는 경계에서 아는 능력이 두루 원만한 까닭에 아는 능력을 따라 견해를 세우면, '시방의 풀과 나무들도 다 유정으로서 사람과 다름이 없으니, 풀과 나무들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다시 시방의 풀과 나무가 되는 일을 가리지 않고 두루 안다'고 하느니라.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져서 파타나 선니와 같이 일체를 깨달았다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네 번째 원만하게 아는 마음을 헤아려 허망하고 그릇된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뒤바뀐 지견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게 융통한 감관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서 이미 순조롭게 따르는 능력을 얻고는, 곧바로 '원만한 변화에서 일체가 발생한다'고 하여, 불의 요소에서 광명의 이치를 구하고, 물의 요소에서 맑은 이치를 즐기고, 바람의 요소에서 두루 흐르는 이치를 좋아하고, 흙의 요소에 성취하는 이치를 관찰하여, 각각 숭배하고 섬기면서, 이 여러 요소가 일으켜 짓는 근본원인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여기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생멸이 없는 법을 생긴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모든 가섭파와 바라문들과 같이 열심히 마음을 닦고 몸을 부려 불을 숭배하고 물을 섬기며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다섯 번째 숭배하고 섬기는 일을 생각해서 집착하고 마음을 미혹하여 물체를 따르면서 허망하게 구하는 원인을 세우고 허망하게 바라는 결과를 찾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뒤바뀐 변화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뚜렷이 밝은데서 밝음이 텅 비었음을 헤아려 온갖 변화를 완전히 멸(非滅; 絶滅)하여, 영멸의(永滅依; 外道의 涅槃)로써 돌아가 의지할 곳을 삼고,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는 데를 돌아가려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상천의 순야다(舜若多; 空性에 집착한 部類)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여섯 번째 원만하게 비어 없는 마음으로 공하여 없는 결과를 성취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단멸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는 자리에 몸을 굳혀 영원히 머물러서, 정밀한 원만함과 한 가지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탐하지 않아야 할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져서, 아사타들과 같이 긴 수명을 구하는 무리와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일곱 번째 생명의 근원을 집착하여 견고한 허망의 원인을 세우고 긴 수고로움의 결과로 향하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허망하게 수명을 늘리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생명이 서로 융통함을 관찰하고 문득 번뇌에 머물러서, 그것이 스러져 사라질까 염려하여, 곧 이 기회에 연화궁전에 앉아서 널리 일곱 가지 보배를 변화시키고, 보배로운 아가씨들을 많이 불려서, 마음껏 즐기려고 하며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집착에 떨어져서, 타기와 가라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여덟 번째 삿된 사유의 원인을 일으켜 진로번뇌를 치성케 하는 결과를 세운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천마의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생명이 밝은 가운데서 정밀과 거칢을 분별하여 진실과 허위를 결단하고, 인과를 서로 갚는다 하여, 오직 감응만을 구하면, 청정한 도를 등지느니라. 이른바 고를 보고 집을 끊으며, 멸을 증득하여 도를 닦아서, 멸에 머물러 이미 쉬어 버리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를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성문에 떨어져서 얻은 법 없이 얻었다고 교만을 부리는 무식한 비구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아홉 번째 정밀하게 응하는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열반으로 향하는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성을 등져서 공에 얽매인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이 공한 이치를 추궁하여 이미 생멸을 멸했으나, 적멸의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가 아직 원만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만일 원만 융통하고 청정한 깨달음이 밝은 데서, 깊고 묘함을 밝히고 연마하여 곧 열반이라 주장하고 더 이상 닦아나가지 않으면서, 훌륭한 경지로 알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에 떨어져서 연각과 독각들과 벗이 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미혹하고 지견을 잃게 되느니라. 
이를 '열 번째 깨달음의 융통한 마음을 원만히 갖춰서 고요한 밝은 결과를 성취하려는 자'라고 하며, 여기에 원만한 통달을 멀리 어기고 열반의 성을 등져서 깨달음을 원만하게 밝히려고 하나 원만하게 밝히지 못하는 종류로 태어나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를 닦다가 중도에 미치는 것은 미혹을 의지한 탓이며,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다 이 식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엇갈려 다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자리에 나지만, 중생들은 완고하게 미혹하여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각기 애착해온 이전 습기로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멈춰 쉬면서, 장차 최후에 돌아갈 편안한 자리로 여기고 스스로 말하기를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만족하게 성취했노라'고 하며 대망어를 짓느니라. 그러다가 외도와 사마는 받은 업이 끝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성문과 연각은 더 이상 향상하지 못하느니라.
너희들은 명심해서 여래의 도를 간직하여 이 법문을 가지고, 내가 열반한 뒤 말법에 전해서, 널리 중생들에게 이 뜻을 깨달아 알게 하여 견마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재앙을 짓지 않게 할 것이며, 잘 보호하여 가엾게 여겨 제도해서 삿된 인연을 소멸시키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에 들게 하고 처음부터 성취해서 갈림길을 만나지 않도록 하여라.
지난 세상 항사겁의 오랜세월 동안 셀수없이 많은 여래께서도 이 법문을 의지하여 마음을 열고 더없이 높은 도를 얻으셨느니라.
식음이 다 사라지면 현재 너의 모든 감관은 서로 융통하게 작용할것이며, 서로 융통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금강간혜에 들어가면, 뚜렷이 밝고 정밀한 마음이 그 속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보배의 달을 먹음은 듯 하리라. 이와 같이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回向)과 4가행심과 보살이 행할 금강십지를 뛰어넘어 등각이 원만하게 밝은 가운데, 여래의 묘장엄해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원만하게 성취하여 얻을 법이 없는 경지로 돌아가느니라.
이 법문은 바로 과거 부처님 세존께서 사마타의 위빠사나에서 깨달음의 밝은 지혜로 분석하신 미세한 마구니의 일이니, 마구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났을 때 네가 잘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음마는 소멸하고 천마는 꺾여 무너지고, 힘센 귀신은 넋을 잃고 달아나며, 이매망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라. 그러면 바로 보리로 나아가는데 모자란 일들이 없으니, 열등한 자(下劣; 二乘)들도 증진하여 대열반에 마음이 미혹하거나 답답하지 않으리라.
만일 말세에 우둔한 중생들이 참선도 모르고 설법할 줄도 모르면서 삼매를 즐겨 닦을 때, 네가 그들이 삿된 마와 함께 어울릴 것을 염려한다면, 나의 불정다라니주를 권하여 일심으로 지니게 하여라. 만일 외우지 못할 경우에는 선방에 써 붙이거나 몸에 지니기만 해도, 일체 온갖 마가 흔들 수 없느니라. 너는 마땅히 시방 여래께서 끝까지 닦아 나아가도록 최후에 내리신 모범을 존중해야 하느니라.”

다른 화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