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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분 1)

이미 입의분(立義分)을 설했으니 다음은 해석분(解釋分)을 설하겠다.

해석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현시정의(顯示正義)요, 
둘째는 대치사집(對治邪執)이요, 
셋째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다.

 


현시정의(顯示正義)에는 한마음인 법에 의하여 두 가지 문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마음 그대로가 진여인 심진여문(心眞如門)이요, 
둘째는 마음 그대로가 생멸인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 두 문은 모두 제각기 일체법을 통틀어 포섭하니 이 이치는 어떠한가? 이 두 문이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진여(心眞如)라 함은 곧 한 법계를 크게 총괄한 모습인 법문의 바탕(一法界大總相法門體)이니, 이른바 심성(心性)은 생멸하지 않는 것이다. 일체 모든 법은 오직 망념(妄念)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나 만일 마음과 망념을 여의면 일체 경계의 모습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은 본래부터 언설의 모습(言說相)을 여의었으니 이름과 별명의 모습(名字相)을 여의었으며 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습(心緣相)을 여의었으니 끝내 평등하여 변함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것으로 오직 한마음(一心)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여(眞如)라 한다.
일체 언설(言說)은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이요, 진짜가 아니니 망념(妄念)을 따를뿐이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여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상(相)이 없으니, 이른바 언설의 극치일 뿐으로 말로 인해 말을 여의었지만 이 진여의 바탕(體)은 여윌 수가 없다. 일체법이 모두가 다 같이 진(眞)이기 때문이다. 또 세울 수도 없나니 일체법이 모두가 다 같이 여(如)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은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진여라 한다.

【문】
만일 이런 이치라면 모든 중생이 어떻게 수순(隨順)하여야 능히 깨달아 들어가는가?

【답】
만일 일체법을 비록 설하나 설할 길이 없고 비록 생각하나 생각할 길이 없는 줄 알면 이를 수순한다 하고, 만일 생각마저 여의면 깨달아 들어간다 한다.

 


다시 다음에 진여라 하는 것을 언설(言說)에 의해 분별하면 두 가지 이치(義)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여실히 공한 것(如實空)이니 끝까지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요, 둘째는 여실히 공하지 않은 것(如實不空)이니 자체에 무루(無漏)이며 본성적인 공덕이 구족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실공(如實空)이라 함은 본래부터 일체 물든 법(染法)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법의 차별된 모습을 여의어 허망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진여의 자성은 유상(有相)도 아니요, 무상(無相)도 아니요, 유상과 무상 모두가 아닌 것도 아니요, 유상과 무상 모두가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동일한 모습(一相)도 아니요, 차별된 모습(異相)도 아니요, 동일한 모습과 차별된 모습이 모두 아닌 것도 아니요, 동일한 모습과 차별된 모습이 모두 함께 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통틀어 말하자면, 일체 중생들인 망심(妄心)이 있으므로 생각마다 분별해서 모두가 서로 응하지 못하는 까닭에 공(空)이라 말하지만 만일 망심을 여의면 실로 공이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실불공(如實不空)이라 함은 법의 바탕(體)이 공하여 망(妄)이 없음을 이미 나타냈기 때문이다. 즉 진심(眞心)이 항상하고 변치 않아 맑은 법(淨法)을 만족하기 때문에 불공(不空)이라 한다. 또한 잡을 상(相)도 없나니, 그 까닭은 망념을 여읜 경계(境界)는 증득한 이라야 어울려 상응하기 때문이다.

심생멸(心生滅)이라 함은 여래장(如來藏)에 의한 까닭으로 생멸하는 마음이 있게 되니, 이른바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생멸하는 것과 화합해서 같지도 않고(非一) 다르지도 않은(非異) 것을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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