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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분 1)현시정의 -생멸인연

 

다시 다음에 생멸하는 인연(生滅因緣)이라 함은 이른바 중생이 마음에 의하여 의(意)와 의식(意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이치는 어떠한가?


아리야식(阿梨耶識)에 의하여 무명이 있어 모르는 결(不覺)에 일어나 능견(能見)이 되고 능현(能現)이 되며, 경계를 취해서 망념을 일으킴이 상속하기 때문에 의(意)라 한다.

이 의(意)에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業識)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무명의 힘에 의해 불각(不覺)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전식(轉識)이라 이름하니 움직이는 마음에 의해 능동적으로 사물을 분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나타난 모습인 현식(現識)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일체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치 밝은 거울에 사물의 상(像)이 나타나는 것같이 현식도 그러하여서 다섯 가지 티끌 경계가 마주해서 이르는 대로 즉시 나타나되 전후가 없으니 언제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항상 눈앞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식(智識)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더럽거나 맑은 법을 분별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상속식(相續識)이라 이름하니, 생각과 서로 응하여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량없는 세상의 선하거나 악한 업을 잘 유지하여 잃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현재와 미래의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를 성숙하게 하되 착오가 없기 때문이며, 현재에 이미 지난 일들을 갑자기 기억케 하거나 미래의 일을 모르는 사이에 허망하게 공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계가 헛되고 거짓되어서 오직 마음으로 지은 바라 하노니 마음을 여의면 육진(六塵)의 경계도 없다.

이 이치는 어떠한가? 일체법 모두가 마음에서 일어나고 망념에서 생긴 것이므로 모든 분별은 곧 자기의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으로는 마음을 볼 수 없기에 어떤 형상도 가히 얻을 수 없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간의 모든 경계는 모두가 중생의 무명과 망심에 의하여 지탱된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마치 거울 속의 상(像)과 같아서 어떤 실체도 얻을 수 없다. 다만 마음이 허망할 따름이니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기 때문이다.



다시 다음에 의식(意識)이라 함은 곧 상속식(相續識)이니 모든 범부가 집착함이 더욱 깊어져서 아(我)와 아소(我所)를 헤아려 갖가지로 허망하게 집착하여 사물을 따라 반연하여 육진을 분별하므로 의식이라 한다. 또 분리식(分離識)이라고도 하며, 또 분별사식(分別事識)이라고도 하니 이 식이 견번뇌(見煩惱)와 애번뇌(愛煩惱)에 의하여 자라나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일어나는 식(識)은 범부가 능히 알 바가 아니며 이승의 지혜로도 깨달을 바가 아니니, 이른바 보살이 처음 바른 믿음으로 발심하고 관찰하여 법신(法身)을 증득했더라도 적은 부분만을 알 뿐이요, 보살의 구경지(究竟地)에 이르더라도 다 알지는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이 끝까지 아신다. 무슨 까닭인가?

이 마음은 본래부터 제 성품이 청정하지만 무명이 있게 되어 무명에 물들고는 물든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물든 마음이 있다 해도 역시 항상 변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치는 부처님만이 능히 아신다. 이른 바 심성은 항상 망념이 없는 까닭에 변치 않는다 하고, 한 법계를 깨닫지 못하므로 마음과 서로 응하지 못하여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

물든 마음(染心)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집상응염(執相應染)이니, 이승의 해탈과 신상응지(信相應地)에 의하여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이니 신상응지에서 방편을 닦고 배운 힘에 의하여 차츰 버리다가 정심지(淨心地)를 얻고서야 끝까지 여의기 때문이요, 셋째는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이니 구계지(具戒地)에 의하여 차츰 여의다가 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에 이르러 끝까지 여의기 때문이요, 넷째는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이니 색자재지(色自在地)에 의해서 능히 여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이니 심자재지(心自在地)에 의하여 능히 여의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니 보살의 마지막 지위에 의하여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야 능히 여의기 때문이다.

한 법계를 깨닫지 못한다는 이치는 신상응지로부터 관찰하고 배우고 끊어서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서 분(分)에 따라 여의다가 여래의 지위에 이르러서야 능히 끝까지 여의기 때문이다. 서로 호응하는(相應) 이치는 이른바 마음(心)과 생각(念)과 법(法)의 다른 것이 물들고 깨끗함에 의하되 지혜의 모습(知相)과 반연의 모습(緣相)이 같기 때문이요, 서로 호응하지 않는 이치라 함은 마음 그대로가 불각인지라 항상 다름과 차이가 없으니 지혜의 모습과 반연의 모습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물든 마음인 염심의 이치(染心義)라 함은 번뇌애(煩惱礙)라 이름하니, 능히 진여의 근본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이요, 무명(無明)의 이치라 함은 지애(智礙)라 이름하니, 능히 세간의 자연업지(自然業智)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이 이치는 어떠한가? 물든 마음에 의하여 능히 보고 능히 나타나며 허망하게 경계를 취하면서 평등한 성품을 어기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모습이 없되 무명 때문에 깨닫지 못해서 망령되이 법과 어기기 때문에 세간의 일체 경계를 수순하면서 갖가지로 아는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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